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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Feb 10. 2020

스몰토크

그 참을 수 있는 가벼움

실용성을 중요시하고 진솔한 화법을 구사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에 대한 농담이 있다. How are you?라고 일상적인 인사를 건네었을 때 반응이다.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은 I am fine, and you? 라며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영어 표현의 정석대로 대답을 한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상황이 좋든 나쁘든 예의상 괜찮다고 말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안부를 물음으로써 대답을 한다. 하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은 ‘아, 그게 말이야 썩 좋지 않은데. 오늘 아침에 이런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어쩌고 저쩌고...’ 하며 진지하게 답을 한다는 것이다. 혹은 그저 지나가는 인사치레라는 생각에  '나한테 왜 그런 걸 물어봐? 네가 왜?' 하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가벼운 일회성 대화보다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더 좋아하는 나는 사실 네덜란드스러운 반응이 더 반갑다.


한국에서부터도 생각했는데 난 가볍고 사소한 스몰 토크가 참 어렵다. 나는 내가 가보지도 않은 식당에 무슨 메뉴가 맛있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 요즘 뭐가 화제가 되며 유행어가 나오는 대화에 기여할 만큼 트렌드도 잘 모른다. 또 낯도 가려서 막상 그런 순간들이 오면 무슨 얘기를 할지 막막하다. 그래서 스몰토크에 대해 거부감을 막연히 가지고 있었다. 진솔하지 못한, 무의미한 대화라 치부하면서. 그런데 여기 와서, 또 나이를 먹으며 깨달은 것은 내 성향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이 어려움이 사실 대화의 기술 부족이라는 것이다. 솔직하고 겉치레를 싫어하는 이곳 사람들이 스몰토크는 또 아주 적당히 잘한다. 이건 내성적이라던가 낯가림과 같은 성향과도 별개다. 어떻게 보면 그 상황과 상대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처세술  중 하나 같다. 그리고 약간의 관심과 노력을 한다면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일 뿐이다. 그리고 스몰토크는 참을만한 가치가 있다. 이럴 때에.


가벼운 대화로 적정거리를 유지한다.


별로 관계가 깊지 않고, 앞으로도 그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알맞은 가벼운 대화가 필요하다. 너무 과하게 다가가서 상대에게 부담을 주거나, 너무 덜어낸 관심으로 불필요한 긴장감을 만들지 않는다. 그렇게 가볍게 그 순간을 넘긴다. 대화 주제가 나나 상대방에게 별로 관심 없는 주제가 아니어도 괜찮다. 서로 관심사 중의 일반적인 주제를 가볍게 던지고 가볍게 받는다. 그 이상의 노력과 의미가 필요하지 않다. 적당한 예의와 호감을 주고받는 그런 느낌이다.


대화의 깊이로 관계의 깊이를 선택한다


그리고 스몰토크는 가볍고 무의미하지만은 않다. 스몰토크가 윤활유가 되어서 그다음 단계로 더 친밀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만약 관계가 더 발전한다면, 개인적인 정보나 감정을 섞어 공유하며 대화를 더 깊이 있게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더 나아가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은지, 지금이 적절한지, 아니면 그조차도 필요 없는 관계인지 조절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판가름하여 행동할 수 있는 주도권은 바로 나한테 있다. 매 순간 이런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무의식 중에 내가 그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음에 그 의미가 있다.


감정 소모 없는 아무 말 대잔치


그리고 머릿속이 너무 복잡할 때, 내가 처한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오히려 가벼운 대화가 반가웠다. 아무런 감정의 소모 없이 아무 말이나 늘어놓는 정말, 아무 말 대잔치. 일 년 365일 심각한 얘기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비슷하게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도 굳이 그 문제에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극히 일상적인, 가벼운 대화를 던지며 내 관심과 애정을 표현한다.


어설프고 진지해도 그게 나인걸

가끔은 대화에 덧붙여낼 얘깃거리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뭐 이런저런 이유로 내 스스로 어설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가벼운 대화에 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소통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별 기대도 없고 대단한 얘기를 주고 받아야겠가는 욕심도 전혀 없다. 갑자기 아주 뜬금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 이상. 뭐 이런 류의 대화를 아주 잘하거나 못한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그런 걱정일랑 하지 않고 적당히 리액션만 잘해도 괜찮다고 내 기대치를 낮춘다. 또 내가 그런 대화를 선호하지 않아 진지함으로 다가가고 싶다면 그것도 내 선택이다. 진지하면 어때, 내가 원래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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