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딧 Feb 17. 2020

어른이라 할 수 없는 것들

나는 이제 한 사람 몫을 온전히 해내야 하는 어른이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 원서를 쓸 때였는데 나는 마감일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가, 나, 다 군의 학교들 중에 상향, 하향 지원을 전략적으로 잘 정해서 원서를 써야 하는데 내 딴에는 그게 참 어려웠다. 안정권으로 넣을 곳을 마감 1시간 전에서야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상향지원이거나 논술/면접의 변수가 있는 곳이어서 더욱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마음을 정하고 이제 원서를 최종 접수하려고 하는데 결제 시스템에 오류가 났다. 어머니는 외출 중이었고 집에 어차피 컴퓨터가 한대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우왕좌왕하다가 삼십 분이 지나갔고,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일을 하던 중에 전화를 받아 곧 회사 컴퓨터로도 한번 해보겠다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보내달라고 하셨다. 아버지께 문자를 보내고 계속 시도를 해보았지만, 계속해서 결제는 되지 않았다. 결제창이 아예 뜨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지만 전화량이 많아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손까지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는데 마감 시간이 임박해져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느려진 상태라 아버지는 로그인을 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고객센터에 전화해 시스템이 다운됐다고 얘기하려고 다시 통화를 시도했다. 계속 새로 고침을 누르는 중에 마감시간인 5시가 지나버렸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랄까. 지금껏 결정을 못하며 질질 끌어온 나 스스로의 잘못이라는 생각에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그 짧은 순간에 너무나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5시 4분쯤 아빠가 전화를 걸어왔다. 우느라고 아무 말도 못 했는데, 아빠가 몇 번 시도 끝에 5시 전에 결제에 성공했다고 말씀을 하셨다. 혹시 몰라 원서와 영수증을 출력하는 중이라고. 그때 그 말을 들으며 내가 느낀 그 안도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아마 접수를 하지 못했어도,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 일들 중에 하나였을 수 있다. 하지만 그때 느낀 감정을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다. 내 일을 자기 일처럼 그렇게 최선을 다해해 줄 수 있는 존재, 내가 어떤 치명적인 잘못을 하더라도 감싸줄 수 있는 존재, 함께 해결해주려 애써주는 그런 존재가 내 옆에 있다는 데서 온 안정감과 안도감인 것 같다.


대학생 때도 그랬다. 과제를 프린트해서 제출해야 되는데 공용 프린터를 기다릴 시간이 없어 아빠가 급하게 프린트를 해서 수업하는 건물 앞에 갖다 주신 적도 있다. 기숙사에 살아 아침을 못 먹고 다닌다고 엄마는 아침 식사로 먹을만한 떡이며 빵을 하루치씩 포장해서 갖다 주셨다. 기숙사에서 세탁하기 어려울까 봐 매주 빨래도 해주셨다. 가까이 살 때는 몰랐는데 떨어져 살다 보니 그 부재가 참 크게 느껴진다.


19살부터는 법적으로는 성인이다. 고등학교 졸업, 대학교 입학. 주민등록증도 받고 운전면허도 따고.. 처음으로 술도 마셔보고.. 성인이 된다는 통과의례들이 있다. 이들을 하나씩 거쳐왔지만, 나는 성인이 되기까지 한참 더 뜸을 들여온 것 같다. 대학시절도 부모님과 가까이 살기에 부모님 품 안에 있었다. 그러다가 외국에 나와 살다 보니 반강제적으로 급 어른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내가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하는 역할들이 참 많다. 가끔은 이런 게 어른의 삶인가 하는 순간들이 있다. 내게 기댈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그렇지만 어떻게든 내가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래서 묵묵히 당장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갈 때. 그리고 지나고 나면 결국 별 일이 아니었을 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순간들이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자전거를 어딘가에 세워두고 버스를 타고 가고 싶은데, 그렇게 가버리면... 어차피 자전거를 다시 가지러 와야 하고. 며칠 새에 자전거를 누가 가져갈 수도 있고. 현실적인 걱정이 앞선다. 나 대신해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도 없다. 뒤처리를 하느니 지금 내 몸이 힘든 게 났다 싶다. 지금 힘든 것도, 나중에 힘든 것도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쏟아지는 비를 맞고 흠뻑 젖어 집에 도착했는데. 나 자신이 너무 대견한데. 알아주는 사람이 없네. 몸이 너무 피곤하고 귀찮아서 라면이나 끓여먹고 싶다. 하지만 내 건강은 내가 챙기는 건데, 그리고 어차피 내일 점심도 챙겨야 하는데. 그래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본다. 그냥 밥 한 끼 해먹은 것뿐인데 나 자신이 뿌듯하다. 잘했다고 다독여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뿌듯해하고 다독여주는 것도 온전히 나의 몫이다.


어른이 되니 그렇다. 내 입맛에 맞는 사람만 만날 순 없을 때도 하나씩 배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옆에 둘 순 없어, 포기하기도 하고 그러려니 하며 무관심하게 할 때가 많지만. 싫은 사람을 대하기는 아직도 힘들다. 단점들만 눈에 띈다. 뭘 해도 마음에 안 든다. 불만스럽지만 대놓고 드러낼 순 없다. 어릴 때처럼 누군가에게 조르르 달려가 이르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 난 어른이니까. 이런 게 사회생활이니까. 참는다, 참는 내가 대견하다. 그리고 누굴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그래서 신경 쓰고 내 감정을 소모하는 것도 내 선택과 책임임을 배워간다. 전에 어떤 스님께서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생공부라고 생각하라는 말을 하셨었는데 그 말이 참 실감이 난다.  


최근에 밤 10시쯤에 친구를 배웅 나갔다가 열쇠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적이 있다. 외투도 없이 편한 옷차림으로 핸드폰만 가지고 집 바깥에 갇혀버렸다. 열쇠공을 불렀는데 오는데 1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20만 원이 넘는 출장비와 수리비가 나왔다. 전에는 이런 일이 닥치면 억울하고 걱정이 되고. 출장비에 충격을 받았을 텐데. 막상 추운 걸 빼고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 실수니 어쩔 수 없는데, 돈으로나마 이렇게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이라니. 불행 중 다행이네. 집에 들어와 몸을 녹이면서도, 차라리 이런 거라면 났다. 내 컨트롤 안의 일이라면, 그래, 이 정도면 할 만 해.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냥 나중에 웃어넘길 만한 에피소드 중 하나겠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런 게 어른스러운 반응인 건가?


그래도 가끔 원서접수를 하던 그 날 그 순간을 떠오르게 하는 날들이 있다. 그런 안도감을 느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절실하게 필요한 날들이 있다. 보다 어른이 되어 나잇값을 해야 하는데 아직 한참 부족하다. 부모님과 내 가족들, 친구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서 도와줄 순 없겠지만. 나 잘했지? 나 잘하고 있지? 하고 어리광을 부릴 수 있으니 그건 정말 감사할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몰토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