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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Dec 02. 2020

코로나 시대에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자세

팬대믹에도 변하지 않는 것

코로나의 영향으로 도대체 시간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느새 12월이다. 이번 주 들어 날씨도 추워졌다. 정말 겨울인가 보다. 거리에 화려한 조명들이 하나둘 눈에 띄는 걸 보니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다가오는 걸 실감한다. 올해 추석 때 마침 한국에 있었다. 우리나라는 '고향에 가면 불효자'라는 캠페인도 대대적으로 하고 모임이 많이 위축되어 타격이 적었다. 여기는... 지금도 환자 수가 매일 몇천 명씩 쏟아져 나오는데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더 증폭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상황으로는 크리스마스라는 변수를 없는 경우에 내년 여름까지 지금의 세컨드 웨이브가 이어진다는 예측도 있었다. 대가족은 아니더라도 소규모 모임은 계속될 듯하다.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 - 암스테르담 야외 스케이트 장


우리 집은 친, 외가 모두 신정을 쇠기 때문에 한국에 있을 땐 크리스마스보다 새해가 더 큰 행사였다. 여기서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괜히 설렌다. 보통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남자 친구 집에 한번 가고, 자주 보는 친구들과도 차려 입고 만나고, 그리고 남자 친구의 친구들과 모임. 혼자 있으면 허전하기 딱 좋은 시기니, 일부러 평소보다 바쁘게 보냈다. 올해는 어떻게 보낼지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으로썬 정부 규제상 가정집에 외부 손님이 방문할 때는 3명까지 가능하다. 그러니 크리스마스도 간소화되고, 대가족 모임 대신 소규모 모임을 여러 번 가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다. 괜히 설레고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한 걸 보니 그 시기가 정말 오나보다. 


코로나로 앞으로도 변수가 많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다. 그리고 그 중에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어 위안을 준다. 네덜란드에서도 벌써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이다. 매일매일 흔들리고 불안한 세상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들도 있어 크리스마스를 느끼게 해준다. 


거리를 감싸는 화려한 조명, 축제의 분위기


델프트는 매년  리흐트아본드 (Lichtjesavond)라고 크리스마스 조명을 밝히는 축제가 있다. 축제날에는 라이브 음악, 성가대 공연, 크리스마스 마켓 볼거리가 많다. 특히 어두운 밤거리를 배경으로 조명이 켜져있는 야간 시장, 향긋한 버터 향, 그리고 따뜻한 글루와인이 반겨준다. 올해는 안타깝게도 온라인으로 점등식만를 한다고 하지만, 곧 화려한 장식과 낭만적인 분위기를 볼 생각을 하니 벌써 즐겁다. 


매년 하이라이트는 시내 광장에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조명을 켤 때다. 사진첩을 뒤져보니 사진을 참 못 찍었다. 올해는 축제는 즐기지 못하겠지만 차분하게 사진이라도 잘 찍어둬야겠다. 

광장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크리스마스 마켓
크리스마스의 시작 "신타 클래스"


스페인에서 오는 신타클래스 (사진 출처)

네덜란드에는 특별한 문화가 있다. 산타할아버지가 스페인에서 온다. 무려 말을 타고! 사실 산타 할아버지는 아니고, 신타 클래스는 성 니콜라우스라는 분의 축일로 어린아이를 매우 사랑하던 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타 클래스에서 유래한 것이 산타클로스로 영미 문화권에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크리스마스가 아닌 성 니콜라우스 

레터 초콜릿! 다 먹다 보면 크리스마스가 지나가 있다.

축일인 12월 6일에 행사를 하며, 신타 클래스는 착한 아이들 이름이 적힌 책을 가지고 다니며 선물을 준다. 말을 타고 오기 때문에, 네덜란드 아이들은 말에게 줄 건초나 당근을 준비한다. 보통 신타 클래스 이브인 5일 저녁에 가족, 친구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선물 교환을 하는데 이때 선물 받는 사람에 대한 시를 써서 주고받는다.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더 중요한 행사다. 나는 특별히 신타 클래스를 반기진 않지만 이니셜이 적힌 초콜릿을 주고받는 문화는 환영이다! 올해도 신타클라스는 조용히 지나가지만, 초콜렛을 선물받아 매일 조금씩 먹고 있다.


그리고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뜨거운 인종차별 논쟁도 있다. 신타 클래스 할아버지를 도와주는 블랙 피트 (Zwarte piet)가 논란의 주인공이다. 신타 클래스 행진에도 등장하여 과자를 나눠주는데... 굴뚝을 타고 다니며 선물을 나눠주기 때문에 그을음이 까맣게 묻었다고 한다. 그래서 피부를 온통 까맣게 칠하고 돌아다닌다. 

신타 클래스와 논란의 블랙피트 (사진 출처)

하지만 흑인을 연상하지 않으래야 안 할 수가 없다. 나는 각 나라의 풍습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네덜란드의 식민통치 시기에 생겨났다고 하니 정이 가진 않는다. 온건파들은 그을음은 그을음 정도로 묻히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몇 년째 겪는 크리스마스지만 매년 뜨거운 감자다. 이즈음 저녁 식사의 좋은 대화 소재기도 하니, 올해도 슬슬 꺼내볼 때가 되었다. 

 



겨울,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음식들


포프레지엔 버터를 듬뿍 발라 먹는다

평소에는 네덜란드에서 길거리 음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 시기가 오면 고소한 버터 향을 풍기며 올리 볼른 (Oliebollen), 포프레지(Poffertjes)가 나타난다. 올리 볼른은 찹쌀 도넛 같기도 한데, 엄청 맛있진 않다. 하지만 추운 날 바깥에서 따뜻한 올리 볼른을 사서 안고 들어와 슈가 파우더를 찍어 먹으면 이제 정말 겨울이구나 싶다. 갓 구운 따뜻한 올리 볼른의 향이 정말 좋다. 포프레지는 조그만 팬케익인데... 별거 아니지만 나름 별미다. 버터를 듬뿍 발라 먹으면 죄책감은 좀 들지만 고소하다. 멀리서부터 버터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바깥에 잘 나가진 않지만, 날이 추워진 어느날 올리볼른 트럭이 벌써 시내에 자리를 잡은 것을 보았다. 크리스마스 카운트 다운이다!


동네마다 나타나는 올리 볼른 트럭 (사진 출처)



크리스마스 디너 메뉴 선정


홈메이드 오꼬노미야끼 

크리스마스에 매년 특별한 메뉴를 준비한다. 무난한 메뉴도 준비하지만 남자 친구와 함께 평소에 안먹는 새로운 메뉴를 매년 시도해본다. 같이 먹을 사람들 모두에게 신선한 메뉴를 선정해야하는데 어렵다... 작년엔 오꼬나미야끼를 만들었다! 오꼬나미야끼를 먹으며 가시 오부 시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며 여유로운 저녁을 보냈다. 올해도 새롭고, 특별한 메뉴를 준비하려고 크리스마스 3주 전부터 고심하고 있다. 올해는 한식으로 하려고 하는데 메뉴 선정이 너무 어렵다. 새롭긴 새로운데 실패할 확률이 낮고, 비건이어야 한다! 조건이 많이 붙어서 고민이 많다... 한국에서 여름에 먹고 온 튀김 덮밥 (텐동)도 생각했는데 소스 만들기와 튀기기가 벌써 부담이다. 어서 정해야하는데 싶으면서도 메뉴를 생각해보고 주변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다.

하루 저녁 메뉴인데 몇주전부터 호들갑인가 싶기도 하지만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도 고조되고 그날을 오롯히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다.


크리스마스 장식
크리스마스 트리 대신 꾸민 화분 

우리나라보다는 네덜란드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에 더 공을 들이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 조명, 캔들만 켜도 벌써 아늑한 분위기인데... 지나가다보면 집집마다 예쁘게 꾸며놓고 조명도 밝혀두었다. 예쁜 조명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집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다는 것은 코로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으니 좋다. 올해는 크리스마스 느낌이 나는 아이템으로 집을 더 꾸며볼 생각이다. 사실 나는 크리스마스트리도 없고 특별한 장식품도 없는데, 올해는 집이라도 꾸미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










크리스마스를 여유 있게 해주는 "세컨드 크리스마스 데이"


네덜란드에서 크리스마스를 더 기다리게 되는 건, 다른 휴일과는 다르게 크리스마스는 이틀이어서다. (우리나라 추석, 설날처럼 공휴일 전후로 하루씩 더 쉬면 좋으련만)  '세컨드 크리스마스 데이'는 보너스 같은 느낌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보통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보내고 친구, 지인들과는 뉴 이어를 크게 즐긴다. 그래서 가족들과 25, 26일 이틀간 시간을 보내기 참 좋다. 26일은 공식적으로는 성 스티븐스 축일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크리스마스와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 이런 방식은 매우 실용적이라 더치 문화에 잘어울린다 싶었다. 보통 친가, 외가 두쪽 가족과 모임을 하게 되므로 이틀에 나누어 크리스마스 방문을 하면 어느 한쪽이 서운해지지 않게 계획할 수 있다. 우리 집도 늘 친가부터 방문하고 외가에는 명절 당일 저녁에야 가곤 했는데, 이렇게 하면 모두가 행복한 방법이라 좋다. 

이렇게 꾸미고 싶지만, 이상은 저멀리 있다. 




크리스마스가 3주 남았다니, 정말 충격이다. 그리고 밖에도 잘 못 나가고 매일이 비슷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올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들, 나만의 의식들로 12월을 가득 채워보려 한다. 크리스마스 당일보다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날들이 더 즐겁고 설렌다. 이렇게 올해의 마지막을 충만하게 마무리하는 날들이 되었으면. 


향초만 켜도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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