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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May 24. 2020

중간에 끼인 상태에 놓였다

- 어떻게 빠져나올지 생각만 많은 요즘 -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바쁘다는 것은 핑계고 내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였다. 내 마음이 정갈하지 않을 때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나의 상태는 그렇다. 이도 저도 아닌 중간에 끼인 상태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무언가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나중에 후회를 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앞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전에는 내가 이런 상황에 놓이면, 내 지식과 경험의 한계가 느껴져 결정을 미루곤 했다. 내가 미처 모르는,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더 현명한 답이 있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나보다 경험이 많은 부모님, 학교 선배, 교수님, 상사 등등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러 다녔다. 그렇게 내가 내린 결정과 선택들로 현재의 내가 있다. 시간이 어느새 흘러, 나는 지금 20대와 30대를 가르는 분기점에 서있다. 현재의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내가 기대한 만큼 많은 연륜을 쌓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내리는 어떤 결정이 삶에 미치는 영향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는 알게 되었다. 인생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에서 내가 고른 답에 따른 그 의미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들까지 일일이 영향을 미쳐왔다. 무엇보다 나를 이루고 있는 내 가치관과 내가 쌓아가는 경험, 만나는 사람들 등등에 모두 변수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내 가까운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주었다. 

요즘따라 그 무거움이 더 절실히 느껴진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어떤 결정도 섣불리 내리지 못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은 날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간다. 내 삶은 계속 진행 중이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에 타인들의 삶도 마찬가지로 흘러가는 중이다. 그래서 문득 나만 멈춰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든다. 디자인을 한다는 직업병인지 모르겠다. 문제를 자꾸만 파고드려 한다. 내게 주어진 상황을 끊임없이 분석한다. 그렇게 생각도 많이 하고, 주변에 의견도 구하고, 책과 인터넷에서 닥치는 대로 정보를 수집한다. 그렇게 문제를 파악하고 정의해보려고 하지만 인생에 주어진 문제라는 것이 그렇다.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 어렵다. 아직 이 상황에 대한 이해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다시 정보 수집을 시작 한한다.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나 자신이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목표의식은 희미해지고 회의감이 절로 든다. 

나의 최종 목표는 문제를 완벽하게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솔루션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내 직업병이라고 생각해보니 그렇다. 디자인 프로세스에 비추어보면, 문제 파악은 그저 첫 단계에 불과하다. 전체 과정의 지극히 일부다. 내 상황을 디자인적으로 접근하다고 생각하면, 문제 파악의 다음 단계는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다. 나의 최종 목표는 문제를 완벽하게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솔루션을 찾는 것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내 상황을 바라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어차피 무언가 결정을 해야 한다면, 빨리 해버리는 것이 났겠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의 선택이 오답일까 봐 그래서 실패할까 봐인데.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옵션 1을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서둘러 옵션 2로 넘어가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실패해도 괜찮아! 해보면 되지! 하는 무한 긍정의 다짐은 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나 자신을 괜찮다고 다독거려주기에는 내 그릇의 크기가 너무 작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내 삶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받아들인다. 또 옵션1이 잘 안되면 그냥 포기해도 된다는 것도 안다. 물론 우리 정서에 영 맞지 않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 자신을 의지박약에 끈기 없음이라고 몰아붙이겠지. 스트레스를 대차게 받고 병이 날 때까지 매어 있어보고, 그래도 아, 이건 진짜 아니구나 싶어야 끝이 나겠지. 뭐, 그것도 내 방식이면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마음이라도 가볍게 먹어본다. 이건 테스트에 불과하니 다른 옵션도 얼른 테스트해보자.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래,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결정을 미뤄본다.

주변에 조언을 구하러 다니는 것도 좋다. 누가 해주는 조언 그 자체보다도, 내 상황과 고민을 펼쳐 얘기하는 와중에 스스로 답을 깨치는 때도 많다. 너무나 답정너 같지만, 정말 그렇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래,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결정을 미뤄본다. 물론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괴로운 상황... 그렇지만 또 미루다 보면, 이쯤이면 됐다며 내 마음이 어느새 정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 나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이도 저도 아닌 중간에서 버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좀 내성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전보다는 덜 괴롭고 꽤 버틸만하다. 그래도 오늘은 직업정신을 발휘해 선택지를 정리해보았다. 그랬더니 좀 마음이 정리된 상태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반쯤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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