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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Dec 06. 2020

우린 특별한 존재야

흔들리는 날, 나를 알아주는 친구의 위로

난 늘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해왔다. 난 남다른 운명을 타고났고, 그렇기 때문에 난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평범한 선택은 하고 싶지 않았다. 현실에 안주하게 될까 겁이 났다. 평범하지 않은 길,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삶, 그것이 내가 갈 방향이다라고 생각했다.


문득 날 의심하게 되었다. 난 사실 특별하지 않은데. 그동안 착각 속에 살아온 것은 아닌지.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일부들이 내가 속해 있던 곳을 벗어나니 특별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주변 사람들의 풀이 더 넓어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보니, 나의 사고방식이나 취향 중 많은 부분이 내 배경 안에 포함됨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가 아주 유니크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바깥에서 바라보면 나는 한국인이라는 집단 안에 소속된 지극히 일반적인 모습들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인, 여자, 둘째, 공대생... 내가 거쳐온 배경들에서 만들어진 나는 글쎄, 그렇게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만 내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삶으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은 아닌가 싶었다.


@Carolina Grabowska

 

그런 와중에 한국에 두고 온 10년 지기 친구가 말해주었다.


"우린 특별해. 그렇게 생각해도 돼.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 자꾸 조바심을 내는 것도,
더 잘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도,
우린 특별하기 때문이야. 특별하니까 그래도 돼."


20대 초중반에 꼭 붙어 다닌 친구다. 함께 높은 꿈을 꾸었고, 나를 잘 아는 친구, 날 것의 나를 알아주는 친구다.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나를 알아주는 친구의 말에 나도 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낯선 나라에 와 살아오며 여기서의 삶에 물론 익숙해졌다. 알게 모르게 나라는 사람은 참 많이 변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취향부터 내 성격, 내 삶의 방향도 많이 바뀌었다. 새로운 경험도 차근차근 해왔고 덕분에 시야도 넓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내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게 되었다.


@ Joao Jejus

'한국의 나와 이 곳의 나는 같을까?' 내가 자라온 사회, 문화적 콘텍스트 속의 나는 편안하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익숙한 시스템에 내 자리를 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는 것들이 있다. 내가 파악할 수 있는 관계와 문화의 범위가 넓다. 한국에 갈때면 내가 두고온 자리에 꼭 맞는다.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이 좋다.


집단을 벗어난 나는 어떤 존재인가? 이 곳에는 왠지 모를 겉돌음이 있다. 굳이 내 삶의 터전을 떠나 이 곳에 와 살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와, 대학원과 직장을 거쳐왔지만 그것이 나의 정체성을 말해주지는 않는다고 느낀다. 그 안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모두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중에 나는 어떤 존재일까? 나는 여기서 어느 집단에든 적응해야 한다면, 부단히도 노력한다. 의식적으로 더 적극적이고 활발한 나를 꾸며내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연기한다. 그러다가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그 '특별함'이란 것이 다른 환경에선 '평범함'일 수 있다는 것, 내 특별함은 사실 내 환상이라는 것.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데... 나의 특별한 구석이라면 내가 믿는 가치를 위해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이루기 위해 손을 더 뻗친다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사람은 아닐 테지만. 99%의 나는 남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더라도 1%는 조금 튀는 구석이 있어 이렇게 발버둥치며 산다.

@ M. kilian


친구와의 통화로 생각지 못한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갈 곳 없이 떠돌던 내게 자리를 만들어준 느낌이다. 그 자리에 두 다리 쭉 뻗고 단단히 버티고 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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