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의 음악연재[音樂連載] - 기록

밤[Night]의 세 번째 곡.

by 하노

잠이 오지 않는다. 술이라도 잘하면 혼자 소주 한 잔 하고 싶은 밤이지만, 그럴 수 없는 체질이라 종이와 펜을 꺼낸다. 조심스럽게 적은 한 줄은 옛 기억이다. 과거에 얽매여 살아가는 요즘, 옛 기억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유쾌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과 힘들기만 했던 20대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적다 보니 어느새 페이지를 채웠다. 채워진 페이지처럼 나의 시간들은 불행으로만 채웠으려나? 사실 그렇지 않은데, 지난 시간의 아픔에서 헤어나질 못해 현재의 시간마저 불행하게 사는 듯하다.


가끔 이렇게 찾아오는 이 시간은 특정 기억을 선명하게 만든다. 코 끝을 맴돌던 저녁 공기, 코트에 배어 있는 향수와 섞인 담배 냄새, 추위에 떨던 그 시간들. 왜 행복했던 시간보다 불안하고 초조했던 시간들이 더 선명할까?

그 시간들을 기록해 보았다. 한 단어, 한 단어 심리 치료를 하듯 나를 돌아보는 시간. 지난날들을 적은 기록은 남기기 위함이 아닌 비우기 위함이었다. 외장 하드에 남긴 백업처럼 기록해 놓고 머릿속 기억들은 이제 지우기 위해. 가끔 떠올리고 싶은 순간이 오면 꺼내볼 수 있게.


오늘의 나의 기록은 어린 시절의 아픔이다. 나는 내 아이를 보며 부러울 때가 많다. 아이에게서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보이면서 그 시절 나의 결핍들이 떠오른다. 어린 나이에 식당에서 접시를 닦던 내 손은 주부습진이 떠나질 않았다. 갈라지다 못해 피가 나던 내 손은 유독 겨울이 힘들었다. 창고를 가득 메우던 담배 연기는 항상 절어 있던 기름 냄새와 함께 내 몸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남들보다 더 추운 10대를 보냈다. 그날의 기억들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다. 늦은 저녁,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그 골목은 어린 나이에 참 많이 무서웠다. 미군 부대 근처 유흥가를 지날 때면 특히 더 무서웠다. 술에 취한 사람들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벗어나던 그 골목은 아직도 공기의 냄새마저 선명하다. 20년도 더 지난 일인데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더 커졌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이해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오히려 더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무책임했을까 싶어 화도 많이 났었다. 그 마음이 너무 힘들어 받은 정신 상담에서는 비우고 지우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야지만 현재를 살아갈 수 있기에. 그래서 나의 기록은 비우기 위함이다. 나의 부모를 용서하고 다시 사랑하기 위한. 그래야 나의 아이에게 더욱 질 좋은 사랑을 줄 수 있기에.


‘기록’은 유난히 밤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래이다. 내가 만든 노래이지만 나를 위한 노래. 아픈 기억들을 달래기 위한 나의 기록.




하루를 노래하는 하노는 2023년 음악연재[音樂連載]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하노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간다.


https://youtu.be/97ogpEySXiI?si=JvF-tUJ6VFmWtyf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