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누가 이방인일까?

by 반디

5월 즈음이었던 것 같다.

사무실 창밖, 건물 외벽 난간 틈새로 멧비둘기 한 마리가 얇디얇은 잔가지들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도심이라 그런지 때로는 가지처럼 생긴 철사를 물어오기도 했다. 종종 '구구구...' 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들 업무로 분주하게 오가느라 당연스레 창밖으로 눈돌릴 틈은 없었다.

뭔가를 눈치채기 시작한 것은 잔가지와 나뭇잎이 쌓여 둥지의 형태를 제법 갖춰갈 때였다. 탕비실이 따로 없는 사무실이라 그 구석 한편에 창과 맞닿아 있는 개수대에서 인스턴트커피에 막 물을 부으려던 찰나였다. 무심코 열려 있던 창 밖을 보았는데 멧비둘기 한 마리가 이미 튼 둥지 위에 고상한 자세로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녀석도 계속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던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이 마주쳤다. 마치 눈싸움이라도 하듯 나와 녀석간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무실 동료들이 "어랏! 비둘기가 둥지를 틀었네? 언제 이랬데?", "짜식, 시원한 그늘이 있는 명당에 자리 잡았네." 등의 뒤늦은 반응을 나타내며 다가왔다. C는 "이거 이대로 두면 벌레 꼬이고 냄새날 텐데..."라며 걱정했다. 아닌 게 아니라 둥지 주변으로 이미 개미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때 아니게 비둘기 둥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벌어졌다. 대부분 알을 낳기 전에 둥지를 없애 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행동대장으로 일단 내가 나섰다.

"쉭쉭! 훠이 훠이!" 부러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녀석을 쫒았다. 일차는 나의 승리. 녀석이 한 발짝 물러났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빈 둥지였다. 그러나 잠시 허공으로 날았던 녀석은 이내 다시 둥지 위로 되돌아왔다. 쉬이 끝날 승부 같지 않았다.

이차는 좀 더 강력한 한방을 날리기로 했다. 싸리 빗자루로 불도저처럼 녀석의 둥지를 사정없이 밀어 버렸다. 녀석은 놀란 듯 푸드덕거리며 날아가 시야에서 이내 사라졌다. 미안하면서도 녀석이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숲 속 어딘가에 아늑한 전원주택을 짓고 살기를 바랐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여 자연스레 어제 녀석이 머물렀던 곳을 살폈다. 아뿔싸! 그런데 이게 웬걸. 밤사이 언제 물어 날랐는지 어제만큼은 아니지만 엉성하게나마 또 둥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끈질긴 녀석이다. 물러서지 않는 그 집념에 찬사를 보내고 싶지만 나도 더 이상 물러나지 않았다.

녀석과의 삼 차전, 어제의 전투 무기였던 싸리 빗자리로 재무장하고 다시 한번 녀석의 아지트를 쓸어 버렸다. 녀석의 육두문자가 들리는 듯했다. 멋들어지게 지은 집을 누군가 이유도 없이 두 번씩이나, 그것도 흔적 없이 허물어 버린다면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이런 인간들이 징글징글해서라도 이제 두 번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기어이 녀석은 같은 자리에 보란 듯이 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후 녀석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 한 며칠간은 정전 상태였다. 그러다 문득 진행상황이 궁금했다. 어느새 두 마리의 멧비둘기가 분주히 오고 가며 둥지를 지키고 있었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보니 알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얼마나 급했을까... 만삭의 임산부를 이유 없이 괴롭힌 꼴이었다. 이번에는 녀석이 승리했다. 더 이상 어느 누구도 둥지를 없애자는 말을 선뜻하지 않았다. 생명의 잉태란 이토록 인간들을 자비롭게 만드는 모양이다.

다음날,?? 둥지가 비어 있다.

우리가 건드리지 않았으니 무언가 벽을 타고 알을 가져간 듯했다. 하루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만큼이나 당황스러운 몸짓으로 녀석은 둥지 근처에서 불안하게 이리저리 오갔다. 온종일 둥지를 떠나지 못하던 녀석은 어느 순간 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쫓아내려고 했었던 녀석인데 막상 떠나고 난 빈 둥지를 보니 못내 미안하고 아쉬웠다. 주인 없는 집은 빨리 허물어진다고 했던가. 녀석의 둥지도 다르지 않았다.

무료한 일상에 던져준 어찌 보면 선물이었을 녀석에게 이 한마디는 해주고 싶다.

'둘기야, 분명 이 자연에는 네 영역, 내영역이 따로 없을 텐데 한 뼘의 둥지 틀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인간들을 맘껏 비웃어 주렴. 영역 싸움에 있어서는 그 존재가 무엇이 되었든 진심인 인간들이란다. 이방인이 원주민을 쫓아내듯 이 땅은 본디 너희들의 것일진대 무자비하게 쫓아 내서 미안하다. 그 응징의 대가는 다시 자연으로부터 받고 있으니 언젠가는 너희들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기다려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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