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어

by 반디

작년 겨울 어느 날, 점심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본 한 편의 연극, '라이어'.

등장인물은 여섯 명 남짓, 소박한 배우들 수만큼이나 저예산으로 만든 듯 소박함이 묻어나는 고정된 무대 세팅이 인상적인 연극이었다.

고가의 최첨단 시설을 이용한 화려한 연극도 여러 편 본 적이 있었지만 그런 연극은 끝나고 여운은 잠시, 화려했던 무대 환영만 오래도록 남는 경우가 많았다. 중반이 넘어가서야 비로소 다다르는 클라이맥스는 그때까지 관객들에게 억지로 인내심을 쥐어짜기도 한다. 뻔한 결말이 예측되어 끝나기도 전에 김이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번 연극은 달랐다. 다급한 외침으로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한 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조바심을 갖게 만들었다. 배우들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몰입되었다. 막판까지도 어떻게 끝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연극이 막상 끝나고 곱씹어 보니 스토리는 놀랍도록 단순했다. 이제는 죄책감조차 가지지 않는, 무감각의 영역이 되어버린 '거짓말'에 대한 경종이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매일같이 하고 있으나 감추고 싶어 하는 것들을 오히려 적나라하게 드러냈기에 관객들이 더욱 후련해하며 환호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가려운 부위를 긁어준 것처럼 말이다. 특별한 누군가만의 경험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고개 끄덕일만한 공감대가 연극에 더한 몰입감을 가져다준 게 아닌가 싶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이야 이미 신물이 날 정도지만 크건 작건, 자의든 타의든 우리도 거의 매일같이 거짓말을 쏟아내고 있다. 설령 그것이 농담일지라도. 이제와 생각해 보니 곧 말을 시작한 유아들도 혼날 것이 두려워 거짓말을 종종 하는 것을 보면 본능적인 생존 수단인가 싶기도 하다.

문제는 한 번의 거짓말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며, 그 거짓을 감추기 위해 그때부터는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끝없는 거짓의 덫에 스스로 걸려들고 만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거짓말을 함에 있어 마음의 동요를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의 크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결국 어느 순간에는 터지게 되어 있다. 거짓의 버블이 터지기 전까지 진실을 속일 수 있다고 대부분 생각하는 것 같다. 버블이 터지면 정작 버블을 불고 있는 자신에게 가장 많이 튄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듯이 말이다.

연극을 보며 끊임없이 거짓말을 해대는 주인공과 너무도 닮은 H가 떠 올랐다. H는 마치 거짓말에 특화된 사람 같았다. 거짓말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거의 반개월을 깜박 속았었다. 양파같이 어디까지가 거짓의 껍질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속을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H를 믿었고, 거짓의 일부를 알게 되었을 때도 믿고 싶었다. 부러 모른척하기도 했다.

H는 속아 넘어갔다는 생각에 더욱 대담하게 버블의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착잡한 마음이 들면서도 언제까지 묵인해 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결국은 별개의 다른 일로 H가 소환되면서 나에게 했던 거짓말의 버블도 함께 터졌다. 별로 미안한 기색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그저 진실을 말할 타이밍을 놓쳤을 뿐이라 했다.

H의 말을 믿고 진실을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었기에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진실이 드러난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H는 더 이상 어떤 거짓말도 할 수 없을 터였다. 이후로도 H의 또 다른 거짓말은 언제나처럼 계속되었다. 습관화된 거짓말을 쉬이 고치기는 힘들 것이다. 육체도 잘못된 습관이 부지불식간에 병을 만들듯이 거짓이 이미 H와 일체화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편할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라이어'다. 악의적인 라이어는 제외하더라도 말이든 감정이든 선의의 라이어가 되어야만 처세에 능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다만, 영원히 '라이어(liar)'로 살아갈 것인지, 이를 뒤집어 자신만의 삶의 궤도(rail)를 그리며 자유롭게 달릴 것인지는 각자 선택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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