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일기 06.(꼬물이 봄)

by 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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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큰아들님]


괴기 영화의 유령 도시처럼 비구름이 비죽 솟은 아파트 단지 틈새로 흐른다.

겨울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유독 꼬물거리는 봄이다.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목련과 동백이 새초롬하게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봄의 꼬물거림이 끝나면 언제라도 팝콘처럼 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산수유는 노란색 붓으로 살짝 덧칠한 듯 은은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는 날씨다. 으스스한 기운이 몰려온다. 목에 두른 스카프를 벗지 못하는 모양새가 꼭 꼬물거리는 봄 같다. 와중에 발코니 식물들은 새 순을 밀어 올리느라 연일 바쁘다. 겨우내 가지만 앙상하던 벤자민도, 일말의 미동도 없던 뱅갈 고무나무도, 여리디 여린 트리안도, 만리까지 가지도 못하고 갇혀 있는 만리향도. 어찌 이리 한치의 거스름도 없는지 봄의 전령사들답다. 어둠을 먹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식물들이 사람들에게 주는 위안이라니.

비 오는 날이면 무시로 쏟아지던 젊은 날의 추억들이, 사람에게 향하던 두근거림이, 이제는 자연으로 향한다. 색색깔로 피어나는 천연의 색 앞에 흐렸던 시야도 맑아진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하지만 이 봄, 자연이 꽃비로 나를 때린다면 기꺼이 온몸으로 맞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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