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한 사유

by 반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어바웃 타임', '인터스텔라',...

전 세계적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유독 타임슬립을 다룬 내용들이 많다. 그만큼 유한한 우리네 삶에서 시간은 절대 빠질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억겁의 시간과 찰나의 삶, 그 찰나의 삶 속에서도 시간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리 흐른다. 누군가에게는 영원처럼 느리게, 생사를 오가는 누군가에게는 간절함만큼이나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간 역시 아무 의미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 하루 24시.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은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이다.

무슨 이유인지 어느 순간부터 유독 시간에 쫓기는 꿈을 자주 꾼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시험실을 찾지 못해 온 시험장을 찾아 헤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은 범벅이 되고, 초조함은 극에 달한다. 시험지를 붙잡고 덩그러니 비워진 여백과 실랑이하며 머리가 하얘지기도 한다. 심장을 쥐어짜는 압박감에 고통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문득 왜 이렇게까지 시간에 대한 강박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생각해 보았다.

학창 시절 때만 해도 가족들은 나무늘보 같이 느려터진 나를 많이 답답해했다. 웬만해서는 타박하지 않으셨던 어머니께서도 사회생활이나 제대로 할지 걱정하실 정도였다. 생각이 많았던 건지 천성이 그리 타고난 건지 아무튼 지금 생각해 봐도 과거의 나는 '느으림' 자체였던 것 같다.

그러다 어찌어찌 직장인이 되고 보니 무조건 제시간에 처리해야 하는 일들 뿐이었고, 동료들과 같이 퇴근 시간이라도 맞추려면 온 정신을 집중해서 기계적으로 일을 쳐내는 수밖에 없었다. 온종일 고개도 들지 않고 일하다 보면 어느덧 퇴근시간이고 출퇴근 거리가 꽤 멀었던지라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이런 도돌이표 같은 생활에서 조금의 여유라도 찾으려면 절대적으로 일의 속도를 더 높이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느려터진 나를 잔인할 정도로 몰아붙여야만 했다. 무조건 빨리빨리,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곧 찌르렁거리며 알람이 요란하게 울어댈 것만 같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때부터였지 싶다. 시간을 지배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는 삶의 여유와 질이 달랐고, 그게 부러워 결국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시간의 굴레로 나를 욱여넣었다.

직장생활이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지금도 시간에 대한 강박은 여전하다. 휴대폰이 있어도 바로바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아날로그시계를 루틴처럼 매일같이 차고 다닌다. 시계 배터리가 다 되어 시간이 틀어진 날이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이다. 아들 녀석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거나하면 다른 때보다 더 크게 꾸짖곤 한다. 아직도 내 시간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시간에 대한 글을 쓰면서 기억 속에 묻혀있던 동화 같은 소설 '모모'가 생각났다. 어릴 적 읽을 당시에도 주인공인 모모보다 사람들의 시간을 훔치는 회색 정장을 입은 도둑들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아주 오래도록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다. 시간에 쫓길 때마다 시간 도둑들이 진짜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나의 시간을 도둑맞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리도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단 말인가.

시간저축은행이 복리로 이자를 준다면 나는, 당신은 시간을 맡길 것인가?

그리고 만약 가장 소중한 것을 담보로 시간을 빌리거나 양도받을 수 있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망상이기는 하지만 정말 가능하게 된다면 아름다운 미담도 존재하겠지만 왠지 상상 이상의 무서운 일들이 벌어질 것만 같다. 다행히 시간은 영원하기에 소유할 수 없으며, 누구에게나 공평하기에 일말의 불만도 가질 수 없다. 그렇기에 시간의 조각보를 어떻게 기워내는지에 따라 인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오늘도 시간은 흐른다. 불금이니 삐뚤하게 바삐 기워내기보다는 오늘만큼은 천천히, 아름답게 시간의 조각보를 기워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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