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려고 씻다 보니 어디서 부딪혔는지 대퇴부에 제법 넓게 검푸른 멍이 들어 있다. 부딪힌 기억도 없고, 통증도 딱히 없었다.
급한 마음과 같지 않게 몸의 반응은 갈수록 굼뜨기만 하다 보니 최근 들어 자주 무언가에 부딪히고는 한다. 어떤 때는 팔뚝, 또 어떤 때는 무릎 등 부딪히는 부위도 랜덤박스처럼 다양하다. 이번 멍처럼 통증 없이 모르고 지나칠 때도 있고, 계속 당기는 듯 뭔가 불편하다 싶어 보면 멍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살아가면서 멍이 들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보통은 멍이 들어 검푸르게 변하고서야 타격감의 경중을 알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야 그 상처 부위를 인지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외상은 이렇듯 쉽게 드러나기에 알 수 있는데 쉽게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사실상 알아보기가 힘들다. 상처부위가 곪을 대로 곪아도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알기 어렵다. 멍처럼 상처를 받았는지도 모르게 깊은 생채기가 나 있는 경우도 있다. 드러나지 않으니 치료시기를 놓치기도 쉽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앓고 있다는 현대병인 우울증도 같은 선상인 것 같다. 최근 서점가에 베스트셀러인 책들 중에는 우울증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린 책들이 제법 많다. 우울증이 과거에도 없지는 않았을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문명과 경제력이 발달하면 할수록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더욱 급증하고 있는 것 같다.
기계 문명의 발달로 예전에는 멀리 가지 못했던 말과 생활상들이 SNS등을 타고 전 세계 어디든 퍼지고 있다. 드러나지 않던 부와 빈곤이 적나라하게 또는 과장되게 드러나고 있다. 거짓이 또 다른 거짓을 불러오듯, 과장된 연출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연출로 포장하고 있다. 커다란 연출 속에서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지 알 수조차 없다. 그로 인한 상처와 상대적 박탈감은 결코 예전 것에 비할바가 못 되는 것 같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에서 유명 인플러언서인 한소라는 자신의 비참했던 과거를 덮기 위해 SNS에서 화려하게 포장된 삶에 집착한다.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가상의 삶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춘다. 당연히 틈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 틈을 메우기 위해 결국 살벌한 일까지 벌이게 되면서 영화는 극으로 치닫는다.
현실은 아프다. 그 아픈 현실을 마주하려면 어디선가 힘과 용기를 얻어야 하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없다. 그러면 결국 스스로 용기를 줄 수밖에 없다. 내상을 스스로 치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처를 들여다보면 스스로 무너질 것 같아서 도망치고만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6년 전, 능력밖의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민원들로 우울증이 온 적이 있었다. 병원도 방문하지 않고 스스로 내린 진단이다. 당시는 알지 못했고 지나고 나서야 그때의 증상들이 우울증임을 알았다. 아니 어쩌면 우울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직장에서는 내색하지 못하고 있다가 집에만 오면 이유 없이 흘러내리던 눈물들, 이유 없는 무기력, 이유 없는 짜증들, 이유 없는 원망들, 이유 없는 충동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다만 나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고, 나의 존재 가치를 잃고 싶지 않았을 뿐이고,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나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고,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내보이지 않고 태연하려 애썼다. 억지로 아픈 멍을 가렸다.
스스로에게 위로받지 못하는 날이면 상처 위에 딱지가 앉기도 전에 계속해서 마음에 또 상처를 냈다. 악순환이었다. 벗어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았다. 심연으로 끝없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러다 바닥까지 가라앉게 되면 숨을 못 쉴 것 같았다.
내가 나를 부서뜨리지 못하도록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식물 가꾸기, 음악, 독서 등을 찾아다니며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면 다음날 아침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삶이 버거웠다. 껍질을 버리고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고만 싶었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몸서리치면서도 어느 순간, 살려면 내 마음을 스스로 따뜻하고 부드럽게 위로하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외상을 치료할 때 우선 상처가 왜 났는지 살피듯이, 내 마음의 상처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찬찬히 살폈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이 외부로부터 온 것인지, 나 스스로 낸 상처인지.
복합적인 것도 있었겠지만 외부로부터 온 것은 내가 바꾼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일단 수긍하고 받아들이려 했다. 그리고 많은 부분들이 내가 스스로 자초해 일을 키운 것들도 있음을 알았다. 성격적인 부분도 한몫했다. 거절과 부탁을 잘하지 못해 뒤늦게 후회하고 끙끙대던, 나보다는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는지 전전긍긍하던, 불필요한 자존심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떠맡았던 나 자신.
현재, 긴 터널의 끝을 무사히 잘 지나왔다.
당시에는 터널 끝에 있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계속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끝은 반드시 존재한다. 영원 불변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아침해가 떠도 저녁이면 지게 되어 있다. 올해의 끝도 이미 다가오고 있다.
여전히 현실은 팍팍하고 힘들어 마음의 멍이 또 생길지도 모른다. 또다시 긴 터널을 만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끝에 서 있는 나를 생각할 것이다. 이 또한 멍자국이 옅어지듯 사라질 것이므로.
인생의 격변기에 정말 많이 힘이 되어준 친구 같은 노래가 있다.
머라이어 캐리의 'Hero'.
노랫말처럼 영웅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음을 기억하자.
과거의 나처럼 우울증으로 힘든 시기를 버텨내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심연으로 가라 앉으려 할 때, 한번 들어 보셨으면 한다.
노래: Mariah Carey
어쩌면
당신 마음 깊은 곳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작은 빛이 숨 쉬고 있어요.
힘겨운 날들이 찾아와도
그 빛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당신을 일으켜 세워 줄 거예요.
상처가 남아 아플 때도
두려움이 밀려올 때도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들여다보면
당신을 지켜줄 용기가 그 안에 있어요.
길이 보이지 않을 때조차
혼자가 아니라는 걸 잊지 마세요.
세상에 기댈 곳이 없어 보여도
당신 자신이 바로,
당신을 구해낼 가장 든든한 사람이에요.
그 사실을 믿게 되는 순간
세상 어떤 어둠도
당신의 걸음을 막지 못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