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계신 분들께 보내는 응원

by 반디

미루고 미루던 건강 검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오늘, 결국 하고야 말았다.

몇 년 전 대장에서 용종이 발견된 적도 있고 해서 마음먹은 김에 내시경도 진행하기로 했다. 전날, 금식은 참을만한데 내시경을 위한 대장정결제는 몇 년만인데도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전날 저녁에 먹어야 하는 약물 분량을 먹고 나서 플라스틱 병만 쳐다봐도 구토가 치미는가 싶더니 급기야 피까지 토하고 말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사극에서 사약을 받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장면에서 내가 그 대역 죄인이 되어 있었다. 안내문에 심한 경우 그런 경우가 있다고는 적혀 있었지만 읽으면서도 이런 경우까지 있다고? 하며 반신반의했는데 참 인생이란...

새벽에 먹어야 할 약물 때문에 한 시간 단위로 잠을 설치며 깼다 자다를 반복했다. 거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정해진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앞서 일어나 약물통과 변기를 붙들고 시름했다. 문득 하루정도도 약물과 시름하는 게 이렇듯 힘든데 중병으로 입원하거나 투병 중인 사람들은 매일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숙연해졌다. 마치 내가 어린애가 되어 투정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 보면 투병 일지를 쓰시는 분들이 꽤 많으신 것 같다. 가족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풀어낼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전투의 흔적이 닮긴 생의 기록이 아닐까 싶다. 때로는 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말문이 막혀 먼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고통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내 몸을 꺾을지언정 내 의지는 절대 꺾을 수 없음을 매 페이지마다 글로 아로새겨 넣고 계신 듯하다. 몇 달 전 암으로 돌아가신 사촌오빠도 떠 올랐다. 마디 마디가 고통이실 친정어머니도 떠 올랐다.

누구나 생의 끝은 있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끝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건강하던 사람들도 갑작스러운 사고 등으로 끝을 맞을 수도 있고, 몇 개월 생존 암 선고를 받고도 수십 년씩 사시는 분들도 계시다. 직장에서도 어제까지 얘기 나누었던 분이 다음날 아침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받기도 했다. 정말 그 끝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수학에서 정해진 끝이 없는 것은 무한대다. 삶이란, 끝은 있으나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한대가 아닐까.

오늘 하루 24시간도 24년처럼 소중하게 쓰고 계실, 어딘가에서 힘겹게 사투하고 계실 투병 환우분들께 글로나마 응원을 보낸다. 가까운 미래가 될지, 먼 미래가 될지 모르지만 나에게 보내는 응원이기도 하다.

'네가 살고 있는 오늘은 내가 그렇게 살고 싶었던 내일이었다'는 문구처럼 내일이 아닌 오늘 남은 시각을 계산해 본다. 대략 다섯 시간 정도. 5년같이 쓸 일이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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