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있어도 그리운 사람

by 반디

요즘 같은 추운 겨울날, 인적 드문 밤거리를 혼자 걷다 보면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무서울 때가 있다.

다 늙어가는 아줌마를 누군가 따라올 리 만무하건만 빨간 망토 소녀가 된 것처럼 연신 두리번거리게 된다. 뒤따라 오거나 마주 보고 걸어오는 낯 모르는 이들이라도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며 적당한 간격을 애써 유지하게 된다.

그 옛날에는 어려서 그랬겠지만 밤거리에서 가장 반가운 게 사람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 모습만 보여도 안심이 되면서 뛰다시피 하던 걸음을 부러 늦추기도 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원한 관계도 없던 무관한 사람들을 백주 대낮에 묻지도 않고 살인을 하는 기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매스컴을 장식하고부터였던 것 같다. 일본에서 빈번하던 묻지 마 살인이 전염병처럼 우리나라로 퍼지는가 싶더니 요즘은 마치 전 세계적인 사회 현상처럼 된 것 같다.

이외에도 왜 이런 충격적인 일들이 예전에 비해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가끔씩 의문을 가져 본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고 있었으나 회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어디서고 마주 보고 앉아 있어도, 바로 옆에 앉아 있어도 SNS로 소통한다. 서로의 눈에 담긴 진정성이 차가운 인스턴트 메시지로 대체되어 오고 간다. 따뜻한 말과 위로 대신 딱딱한 메시지 속에서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두 번, 세 번 곱씹게 되고, 의도치 않게 왜곡된 해석으로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기도 한다.

신입사원들이 입사 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전화를 받는 일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오죽하면 '콜포비아'라는 신조어까지 생겨 났겠는가. 어려서부터 SNS로 소통하는 게 일반화된 젊은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회 문제들을 획일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계 문명을 통한 관계와 소통이 확대될수록 뭔지 모를 마음의 병들과 폭력, 고립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들여다 보고 싶은 세상만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조금의 기다림도 참기 어려워졌으며, 행간의 여백을 읽어 내던 과거의 여유는 보이지 않고, 나의 고민과 힘듦을 알아달라는 절규는 분노로 변해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만 같다.

가상 공간에서의 관계망은 더욱 촘촘해졌지만 현실에서의 외로움과 은둔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는 듯 하다. 요즘 아이들이 유독 단체 활동을 힘들어하고 회피하는 원인 중 하나인 것도 같다.

영화 '오징어게임'에 나왔던 살구놀이, 비석차기, 달고나 뽑기, 고무줄 뛰기, 오징어 게임들을 하면서 어스름하게 날이 저물고 밥 짓는 냄새가 동네 가득 풍길 때서야 집으로 돌아갔던 그때가 왠지 그리워진다. 오영일이 되돌아가고 싶었던 어릴 적 향수는 어쩌면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모습일지도.

지금, 옆에 있어도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잠시 스마트폰과 컴퓨터 액정 화면을 닫아 보자. 그리고 그 사람의 눈을 지그시 한번 바라보자. 그리고... 기계로는 전할 수 없는 따뜻한 체온과 말을 건네 보자.

"네가 옆에 있어 참 좋아. 사랑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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