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초능력을 가진 자신을 상상을 할 때가 있다.
어릴 때는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거나, 투명인간이 되어 짓궂은 장난을 쳐보거나, 헐크처럼 무거운 것을 번쩍번쩍 들어 올려보고 싶었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들이 푹 빠져서 보던 도라에몽을 반강제로 수십 번씩 같이 돌려 보면서 꼭 갖고 싶었던 게 있다. 바로 '어디로든 문'이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주말부부로 지내며 시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돌봐 주셨던지라 주말이면 아이들도, 나도 눈물 한 바가지씩 쏟아내며 돌아와야만 했다. 그러니 '어디로든 문'에 꽂힐 수밖에. 지금도 아이들을 보면 가끔씩 후회와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일고는 한다.
인생 중반에 접어든 요즘에는 독심술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살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해 괜한 오해가 쌓여 뜻하지 않게 인간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 사람과 쌓아 왔던 믿음이 한순간에 불신으로 바뀔 때도 있다. 위하는 마음에 전했던 진심이 오히려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말하는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마음을 보여줄 수 없어 답답할 때도 있다.
이심전심이라고 하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을 표현하는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대화의 기술을 쏟아내는 책들이 많지만 읽을 때뿐이다. '겉바속촉'으로 아무리 속이 촉촉하고 따뜻하더라도 바삭한 겉모습으로 그 사람을 결정지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본인들로서는 속상할 수밖에 없다.
가끔 채널을 돌리다 우연찮게 이혼숙려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 대부분 불화의 원인이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말로 표현하는 것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게다. 때로는 속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워 아예 입을 닫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때면 더욱 마음을 헤아리기 힘들고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다.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내 마음을 읽기도 어려운데 상대의 마음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을 전하고,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늘 보면 일방의 잘못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밉더라도 마음의 문을 꼭 닫지는 말자. 살짝 벌어진 틈만으로도 어느 순간이 되면 활짝 열릴 수 있다고 믿는다.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공감'하는데서 시작되는게 아닌가 싶다. 공감은 꼭 말로 전달되지 않더라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고, 오해가 쌓였더라도 나의 진심을 끊임없이 전달하다 보면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사람들 속에는 모두 끊임없이 마음의 파동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파도가 살짝살짝 닿기만 해도 모난 바위가 부드러운 몽돌이 되듯이 나의 마음에, 상대의 마음에 계속해서 닿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독심술이라는 엄청난 초능력을 얻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