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야경 2

연결된 도시인의 삶

by 반디

한 낮의 반짝이던 햇살이 지고 어느새 어스름이 몰려온다.

이 맘 때가 되면 몸은 지칠 대로 지치지만 마음만은 시원하고 후련하다. 또 하루를 살아냈다는 뿌듯함과 온기 가득한 나만의 둥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 그만큼 퇴근을 준비하는 손과 발걸음은 빨라진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와 지하철은 여전히 만원이지만 출근 시간 때보다 여유롭다. 하나둘씩 켜지는 불빛들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가족들과 함께하는 풍성한 저녁을 기대하는 이도 있고, 오늘 하루 고생한 나를 위해 포장 음식이지만 보너스처럼 한 손 가득 들고 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어느 노포에서 소주 한잔 기울일 테고, 삼겹살 가게에서 삼삼오오 모여 왁자하게 상사들을 질겅질겅 씹어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삶의 진솔한 풍경들이다.

현관문을 열면 철문 하나 사이로 냄새부터가 다르다. 차갑거나 뜨거운 바깥 열기와는 다른, 나만의 공기가 느껴진다. 어느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신발을 던져 놓아도, 옷을 아무렇게나 늘어놓아도, 속옷 하나만 달랑 걸치고 있어도 가족들의 잔소리가 있을지언정 또 다른 나만의 삶이 펼쳐진다.

콘크리트 속,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나만의 철옹성에서.

휴식을 취하며 칸칸이 새어 나오는 불빛들을 먼발치에서 보고 있으면 가끔씩 이웃들의 삶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사람 사는 게 그렇고 그렇겠지만 유독 새벽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집이 있으면 이런저런 상상을 하기도 한다. 아무리 이웃에 무관심한 요즘 세상이라지만 한 발 거리 안에 있는 이웃들이니 절로 관심이 가게 된다. 사람마다 움직이는 시간대와 패턴이 있다 보니 거의 매일같이 마주치는 이웃이라도 있으면 서로 민망해서라도 눈인사 정도는 하게 된다.

반면에 때로는 듣고 싶지 않아도 삶의 얘기들이 화장실 배관을 타고 올라올 때가 있다. 이로 인해 몇 시간 안 되는 달콤한 휴식이 방해받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층간 소음은 나만의 철옹성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콘크리트 도심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부실한 공사와 세대 간의 간격이 벌집처럼 촘촘하다 보니 일상 소음이 없을 수는 없다. 적당한 이웃 간의 소음은 당연스레 참아낼 수 있지만 나의 삶이 심각하게 방해받을 정도면 다른 문제다.

타인으로 인해 평온한 삶의 균형이 깨진 앙금이 쌓여 칼부림까지도 나는 살벌한 세상이다. 소음이 그만큼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반증이다. 나의 집이기도 하지만 '공용 주택'이기도 하다. 내로남불식으로 나는 되고 남은 안된다는 사고는 위험하다.

지금은 이사를 갔지만 몇 년 전, 새벽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싸움을 하는 위층집이 있었다. 자정만 넘어가면 고성과 함께 온갖 짐들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 설 잠을 깬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에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저러다 사람 죽겠다 싶어 몇 번이나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하나 망설일 때도 있었다. 싸움의 끝은 거의가 남편이 집을 나가는 것을 알리는 거친 문소리와 아내의 흐느끼는 소리였다. 남인 우리도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스트레스를 받는데 광경을 목격한 아이들은 어떨까 싶어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다 사이가 좋으면 좋은 대로 또 새벽까지 침대가 쿵쿵대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당시 한창 사춘기였던 아이들이 들을세라 또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친정집을 방문했는데 어머니께서 아랫집 사람들 얘기를 하신 적이 있다. 아랫집으로 이사 왔을 때부터 유독 어머니께 친절하고, 명절마다 선물 꾸러미를 들고 와 홀로 계신 어머니를 챙겨주시던 살가운 분들이셨다. 이십 년 넘게 한 이웃이라 웬만한 가족관계는 알만한 사이였다.

한 날은 귀도 어두워 잘 들리지도 않는데 누군가 계속 벨을 눌러 나가 보셨단다. 아랫집 아주머니셨다. 어머니께서 반가이 맞으시며 웬일이냐고 물으니 근래 들어 어머니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 걱정이 되어 찾아왔다는 것이다. 혹시 홀로 계시고 연로하신지라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확인차 올라와 보셨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요즘 세상에 이런 이웃도 있구나 싶어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멀리 사는 딸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층간 소음도 삶의 흔적이다. 공중 부양해서 다닐 수 없는 이상 발소리가 들리고, 가족 간의 대화 소리가 문 밖까지 퍼져 나갈 수 있다. 다 같이 살아가야 하는 공간이니 따지고 들면 한정 없고 서로 최대한 배려하는 마음으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모든 삶들이 똑같을 수 없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들로 인해 힘들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있어 또 행복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작가의 이전글마음을 읽는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