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녀석이 모처럼 집으로 오는 날, 원하는 메뉴를 물으니 대게와 새우가 먹고 싶단다.
간 큰 녀석... 물은 나를 탓해야 할지, 대답한 녀석을 탓해야 할지. 대답한 이상 무를 수가 없어 큰맘 먹고 식당을 예약했다. 가격이 부담스러웠는지 남편이 폭풍 검색 후 수산물 시장에 직접 사러 가자는 제안을 했다. 구입 후에는 즉석 해서 쪄 주기도 하고 가리비나 새우도 덤으로 조금 내준다는 것이다. 식당과 가격차이가 꽤 났는지라 조금이라도 아끼고 바람도 쐴 겸 해서 남편과 수산 시장을 찾았다.
집에서는 30분 이상 걸리는 제법 먼 거리였다. 초입부터 꽉 막힌 차들로 주차하는데만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주말이라 그런지 초저녁의 수산 시장은 활기 그 자체였다. 발 디딜 틈 없이 넘쳐나는 사람들을 모로 피하며 다녀야 했다. 호객 행위로 손님들을 붙잡으려는, 여기저기서 들리는 상인들의 호쾌하고 시원한 목소리는 무료한 일상에 오랜만에 청량감마저 들게 했다. 바깥의 번잡함과는 상반되게 수조 안에서는 각종 해산물들이 세상 평화롭게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인간들에게 곧 잡아 먹힐지언정 마치 숙명을 받아들인 듯 초연해 보였다.
삶이 힘들 때면 새벽 시장을 가보라는 말이 있다. 다들 잠들어 있을 시각에도 누군가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치고 있으며, 그게 삶이라고 얘기해 주는 곳이다. 지난한 삶들이 손때처럼 묻어 있는 곳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삶에 대해 절로 숙연해지는 곳이다. 삶이란 먹고사는 문제를 필연적으로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곳이다. 여기, 수산 시장에서도 생명의 태동과 같은 비릿한 냄새가 싫지 않다.
질퍽한 바닥을 헤집고 인상 좋아 보이는 사장님 가게 입구에 섰다. 어느 집이고 가격은 비슷할 터, 서비스를 조금이라도 더 주실 것 같은 가게로 공략했다. 몰려드는 주문에 주인이고 종업원이고 모두 정신없이 분주해 보였다. 진한 해산물향을 품은 증기들이 쉴 새 없이 찜기 사이로 뿜어지고 있었다.
입구에 서자마자 나이 지긋한 남자분이 다가오시며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으신다.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붙잡으려는 사장님의 열변과 진정성에 멈춰 섰다. 시세는 대충 알아보고 온지라 양과 종류가 고민이었다. 집에 장정이 세명이나 되니 적은 양으로는 입맛만 버려 안 사느니만 못할 것 같았다.
얽히고설켜있는 박달 대게와 킹크랩들이 제법 살들이 올라 튼실해 보였다. 킹크랩에 비하면 박달 대게는 체구에서부터 비쩍 말라 보여 자연스레 킹크랩으로 자꾸 시선이 갔다. 문제는 무게와 돈이 비례한다는 것, 결국 킹크랩 큰 놈으로 한 마리를 사고, 부족해서 껄떡거릴 녀석들을 생각하며 제철인 전어와 갑오징어 한 접시씩을 추가로 구입했다.
집으로 돌아와 한 상 펼쳐 놓으니 마음까지 푸짐하다. 남편은 옆에서 연신 가위질로 시름하는 사이 두 녀석은 말 그대로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다. 그러면서 둘째 녀석은 한 점이 도대체 얼마냐며 음미하는 듯 너스레를 떤다. 녀석들의 식성에 나와 남편은 젓가락질 한번 할 세가 없다.
게 껍질로 난장판이 된 식탁, 게장 볶음밥까지 먹어 치우고서야 꺽꺽거리며 배부르다고 양보하는 척 손사래를 치는 두 녀석. 남편과 나는 게다리 끝에 겨우 붙어 있던 살만 쪽쪽 거리며 빨고 있다. 그래도 행복했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부모는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부모가 되어서야 알 수 있는 고통과 행복들, 아이들이 커가면서 늘어나는 무게만큼 삶의 무게도 무거워지지만 그 아이들이 있어 행복의 무게도 무거워진다는 것을 안다. 삶의 무게와 행복의 무게는 개인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다. 비례, 또는 반비례로 양분화시키기에 인생은 너무 복잡하다. 하지만 삶의 무게든, 행복의 무게든 나의 '느낌과 생각'일테면 비례한다고, 비례할 것이라고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저울의 무게는 나의 느낌과 생각이 얹어져 그 방향으로 결국 기울어질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