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녘
<그림: 큰 아들님, 글: 큰 아들님 엄마>
한 동안 휴대폰 바탕화면으로 하고 다녔던 그림이다.
젊을 때는 동틀 녘을 좋아하고, 나이 들면 황혼 녘을 좋아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그런데 나의 경우 젊을 때부터 유독 황혼 녘이 되면 그렇게 기분이 편안하고 좋을 수 없다. 지금도 해가 질 때면 번잡스럽고 소란스러운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뿌듯함과 붉은 저녁놀이 안겨주는 아름다움이 마음을 물들이는 그 찰나가, 마음속 산사에서 평안의 풍경이 울리는 순간이다.
특히 여름날의 황혼 녘은 한낮의 살인적인 더위를 식혀주는 그늘 같은 시원함과 늦도록 밤낮이 혼재되어 있는, 특유의 황홀경을 안겨준다. 하얀 달이 시간이라는 염료를 입고 노란 달로 염색되어 가는 과정도 특별한 볼거리다.
황혼 녘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맞이하는가에 따라 느낌의 질감도 상당히 다르다.
가장 흔한 일상의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엉켜있던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가는 느낌이라면, 고향의 바다를 마주하고 있을 때는 무위자연에 이르기라도 한 듯, 마음 한가득 채우고 있던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 노스님이 읊조리는 저녁 예불과 풍경 소리가 더해진 산사에서는 태곳적 영혼으로 돌아가는 느낌이고, 별이 비처럼 쏟아질 것 같은 지리산 어느 골짝에서는 나라는 존재 자체도 잊게 만든다.
색의 화려함은 또 어떠한가.
어떤 색으로도 명명할 수 없는 황혼 녘 색의 향연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하루의 보상이 아닐까 싶다. 시시각각 변하는 색의 얼크러짐은 그 자체가 자연 스크린이요, 감동이 있는 한 편의 영화다. 잿빛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하늘과 하나둘씩 켜지는 거리의 불빛들도 왠지 모를 포근함을 더한다.
해오름달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바다로, 산으로 간다. 해오름달 일몰을 보기 위해 나는 고층 아파트 난간을 잡고 섰다. 올해, 삶이 떠오르는 태양처럼 빛나기보다 황혼 녘처럼 평온하고 여유롭기를 바라본다.
브런치 작가님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작가님들이 저마다 소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기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