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요가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ㄱㄴ May 01. 2019

존재의 고통

 알고보니 공중부양을 하고 물구나무를 서는 수업 바로 전 단계의 수업, 전전 단계의 수업, 아주 기초적인 단계의 수업이 다른 시간들에 있었다. 수업명이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으로 되어 있지 않고 인도말로 쏼라쏼라 적혀있어서 완전히 다른 수업인 줄 알았던 거다. 내가 지난번에 문화충격에 빠졌던 수업은 하필 최고급 단계였다. 퇴근 시간에 맞춰 이시간 저시간 수업에 번갈아가며 들어가다 보니 중급 단계, 초급 단계도 듣게 되었고, 다행히 나를 제외한 이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실은 요가 고수였더라라는 비극적인 가설은 폐기될 수 있었다. 


 오늘은 초급단계를 들었다. 난이도가 낮다고 하더라도 요가 수업이 아니었더라면 살면서 절대 하지 않을 법한 자세를 종류별로 바꿔가면서 하기 때문에 수업을 듣다보면 어딘가 기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갑자기 다리를 든다. 그리고 팔로 다리를 감싸 안고 버틴다. 다음에는 한쪽 다리는 양반다리를 하고 다른 한 쪽 다리는 맞은편 손으로 발바닥을 잡아서 공중으로 올린다. 그 올라간 다리 안 쪽으로 남은 팔과 머리를 넣고 버틴다. 또 다음 동작은 이렇다. 왼쪽 다리는 양반다리를 하고 오른쪽 다리는 세운다. 세운다리를 오른쪽 등과 팔로, 그러니까 오른쪽 다리가 등 뒤쪽으로 갈 수있도록 바깥으로 감싸안고 등 뒤에서 양 손을 잡고 버틴다. 


 이런 동작을 하다보면, 다리를 안으로 꺾었다 밖으로 꺾었다 또 몸을 안았다 풀었다 허리를 뒤틀었다 접었다 하다보면, 내 몸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고통의 형태로 다가온다. 내 팔의 안쪽 근육이, 사타구니 근처가, 마디마디로 이루어진 척추 뼈들이 힘 주는 만큼 고통스러워진다. 내게 있는 줄도 몰랐던 부위가 아픈 경험은 꽤나 생소하다. 그 생생한 고통으로 인해 내 몸의 존재를 깨닫는다. 무언가를 알아가는 것이 자주 고통을 동반한다는 사실은 자라오며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깊이 알게 될 것 같은 순간에 도망쳐버리는 못된 버릇까지도 생겼지만, 그게 나의 육체에까지 물리적 고통으로 적용되는 진실인지는 요가를 통해서야 알게 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