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시킬 수 없는 것
나는 대학교 졸업식이 있기도 전에 수학강사 일을 시작했다. 수능을 볼 때 자신 있었던 과목은 수학이었다. 사실 국어, 영어와 비교해서 수학을 잘한 편이지 수학 하나만 놓고 보면 그렇게 우수한 성적도 아니었다. 참고로 생물은 잘했다. 여하튼 강사 일을 선택했을 때 수업할 과목으로 수학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수능 이후로 수학을 공부한 적이 없었다. 즉 강사 일을 위해서 대략 7년 만에 다시 공부하는 것이다. 그 당시 중등 수학을 가르칠 예정이었기 때문에 정확히는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준비하는 것이었다.
12월 연말부터 학원을 가서 훈련을 시작했다. 개념 공부와 문제풀이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먼저 칠판에 쓰면서 설명하는 판서 연습을 해야 했다. 글씨는 원래 못쓰는 편에 속했지만 학생들이 알아볼 정도의 글씨를 쓰기 위해서 노력했다. 학원 원장님께 피드백도 받았다. 일단 목소리와 어디에 서서 설명을 해야 하는지 등을 피드백 받았다. 그렇게 12월 연말을 보냈다.
1월부터는 첫 강의를 시작했다. 첫 수업은 간단히 자기소개하는 시간과 진도를 조금 진행했다. 내 기준에서는 만족스러운 수업이었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다른 선생님들의 수준에 비교하면 부족한 수업이었다. 그래도 1년 동안 강의를 하면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수업을 1년 정도 하면서 느낀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내가 어떻게 가르치든지 잘 하는 친구는 잘하고 못하는 친구는 못한다. 즉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학생들의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내가 개념 설명이나 문제풀이 대해서 틀린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이상 학생들의 성적에는 다른 요소들이 더 많이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 숙제를 꼼꼼하게 공부한다거나 강의 때 어려웠던 문제를 스스로 다시 풀어본다거나 하는 등의 노력이 성적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또는 선생님과 관계성이 좋아서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공부에 집중하는 요인도 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공부에 대해서 동기부여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피드백을 받는 친구들이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 결론은 내가 잘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두 번째, 아무리 학부모와 선생님이 공부를 시켜도 학생이 거부한다면 소용이 없다. 내가 강사를 했던 곳은 학구열이 높은 일산 지역이었다. 중학교 친구들이 고등과정을 미리 나가는 것은 당연했고 초등학교 친구들 중에서 레벨이 높은 친구들은 이미 중학교 과정이 끝나고 고등 과정을 나가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예비 중1 친구들 즉, 아직은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중간 레벨 보다 높은 레벨에 속한 그 친구들은 미리 선행학습을 나가고 있었다.
그 반 친구 중 한 명인 예비 중1 친구는 방학 동안 2주 정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해외여행 출발 전 어머님이 특별히 전화를 해서 학생이 진도가 뒤쳐지면 안 되니 2주 과정에 대한 숙제를 미리 내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나는 어머님의 부탁대로 학생에게 2주 동안의 숙제를 미리 내주었다.
2주 후 수업에 돌아온 학생은 자신이 비행기 안에서 숙제를 했다며 나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그 친구는 어머님이 직접 나에게 전화를 해서 숙제를 부탁할 걸 모르는 상태였다. 그 친구는 제법 수학적인 머리가 있어서 아마도 숙제를 하는 것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이 비행기 안에서 숙제를 했다는 이야기는 나를 안타깝게 했다. 그리고 이렇게 억지로 공부를 해서 뭐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과 동시에 내가 가르치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떠올랐다.
그 친구도 수학적인 머리가 좋은 친구였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점점 수학 점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태도였다. 수업 시간에 전혀 집중하지 않고 문제 풀이도 숙제도 대충대충 했다. 부모와 다른 선생님들은 그 학생의 태도가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며 사춘기라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그 친구의 마음은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고등학교 과정은 이미 중학교 때 지겹도록 공부했다. 그리고 나는 예전부터 수학적인 머리가 좋았다. 즉 풀이를 대충 쓰고 머릿속에서 계산만 해도 잘 풀리고 정답을 맞힐 수 있었다. 그렇게 수업에는 집중하지 않았고 숙제도 대충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수학 과정은 어렵다. 머리가 좋아도 노력이 필요하고 꼼꼼하게 공부해야 한다.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고 숙제도 대충 해오던 그 친구는 단원 테스트를 볼 때마다 점수가 부족해 재시험을 보았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니 선생님과 학부모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수학 머리는 좋은데 수업 태도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 이 말은 오히려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친구는 잘 하려고 해도 잘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만약 내가 수업도 열심히 듣고 숙제도 최선을 다해서 해 왔는데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머리가 나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즉 그 친구에게는 오히려 태도가 좋지 않아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이 위로가 되는 샘이다.
예비 중학교 1학년 학생에게 진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여행을 가서도 공부를 시키는 학구열. 나는 그 중학교 1학년 친구가 고등학생이 되어도 지치지 않고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렇게 억지로 시킨다면 하고 싶었던 것도 하기 싫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학생이 공부하기를 거부한다면 억지로 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더군다나 억지로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