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또렷하게 생각하는 것
내가 신천지 성경 스터디에 참여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참여했던 성경 스터디가 신천지라는 것을 알고 보니 나는 이 스터디 모임이 처음이 아니었다. 바로 전역을 한 이후에도 한차례 경험한 적이 있었다.
전역을 하고 군대 후임에게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 친구도 내가 전역하고 한 달 후에 전역을 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친구는 아니고 나보다 두 살 정도 더 나이가 많은 형이었다. 일요일마다 군 교회에서 함께 활동을 했고 크리스마스 시즌이나 교회 행사가 있는 시즌에는 함께 성가곡을 연습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후임이었다. 원래 나의 성격상 사람을 만나는 것에는 별로 흥미가 없지만 나름대로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한 번 정도 만나기로 했다.
그 후임과 나는 둘 다 기독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특히 그냥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만났을 때 신앙적인 부분을 많이 이야기했다. 군대에서와는 다르게 사회에 나와서 어떻게 신앙 생황을 하고 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군대에서 보다 좀 더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려워하는 나에게 그 후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전도사님을 소개해 주고 싶다고 했다. 자기도 그분에게 신앙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다음에는 함께 만나기로 했다.
전도사님이라는 분을 만나서 한차례 이야기를 나누고 성경 스터디를 시작되었다. 이때도 나와 함께 교육을 듣는 친구는 나랑 같은 입장이 아닌 나를 설득하는 것을 돕는 역할을 했다. 그 친구는 스터디 이후에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사실 그 당시에는 나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냥 내 상황을 좀 더 알고 신천지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었다.
당시에는 신천지인지 몰랐지만 더 이상 스터디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만둔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군대 후임은 내 동내까지 찾아와서 더 해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설득했지만 나는 그 설득에 넘어가지 않았다.
신천지는 여러 면에서 참 신기하고 대단했다. 한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 그들끼리의 소통이 빠르고 섬세했다. 그리고 적극적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믿지 않을 이야기를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갖고 믿을 수 있을까? 2번 신천지를 직접 경험하니까 더 흥미가 생겼다.
기독교에서는 공식적으로 이단으로 분류하는 단체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신천지다. 이단을 한자로 보면 다를 '이', 끝 '단'을 사용한다. 즉, 이단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풀이하면 끝이 다르다는 뜻이다. 신천지는 성경에 나와 있는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풀이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들이 교주가 곧 절대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성경 스터디에서 배운 내용들은 사실 잘못된 내용은 별로 없었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기존 교회에서 하는 이야기보다 논리적인듯한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이 논리의 끝에는 신천지가 주장하는 절대적인 존재에 집중된다.
그 절대적인 존재에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신천지가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신념이 더 큰 문제다. 성경에 144,000명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적혀있다. 일반적 기독교에서는 상징적인 숫자로 144,000이라는 단어를 해석하지만 신천지에서는 실제로 144,000명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신천지 교인은 144,000명이 넘었다. 그래서 그들은 신천지로 더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온 사람만이 144,000명에 속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었다. 이것이 그들이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고 있는 신념이다.
이 신천지가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신념이 한 사람이라도 더 신천지에 데리고 오려는 이유이다. 죽음의 신념 때문에 한 사람을 위해서 여러 명이 모여 의논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며 거짓 마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목표를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신천지가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신념은 144,000에 속해야 한다는 무한 경쟁을 만든다. 그리고 144,000에 속해야 한다는 목표가 과정을 합리화 시킨다.
나는 신천지를 경험하면서 그들이 전략적인 모습에 감탄했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신념이었다. 비록 잘못된 신념이지만 그 분명한 신념이 그들을 그렇게 전략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었다.
나는 죽음에 대한 신념을 올바르게 갖고 있는 것이 내게 주어진 삶을 잘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인생이 무력하고 힘들다면 어쩌면 죽음에 대한 나의 신념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죽음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뚜렷한 신념이 있다면 아마도 더 전략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