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시간 우리 반 한 소녀가 밖에서 저녁을 먹고 오겠단다. 워낙 참하고 모범생인지라 그래라 하고 보냈는데 야간 자율 학습이 시작할 시간에도 돌아오질 않는다. 전화를 아무리 걸어봐도 받지를 않는다. 점점 불안해져서 친한 아이들을 다 불러다 놓고 어디를 갔느냐 왜 갔느냐를 취조하기 시작한다. 식사를 하러 간 게 아니라 다른 학교 친구가 찾아와 급하게 나갔단다. 혹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학교 주변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분식집도 가보고, 빵집도 가보고, 슈퍼도 가보고, 식당도 가보고..
한 3~40분 지났을까. 전화가 왔다.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핸드폰을 찾느라 늦었단다. 학교로 오자마자 교무실로 오라고 하고는 교무실로 온 소녀에게 온갖 선생님인 척을 다했다. 가는 곳을 미리 알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걱정하지 않느냐, 왜 거짓말을 하고 굳이 밖에 나갔느냐 하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소녀를 보면서도 내 긴장한 마음을 보상받고 싶기라도 한 듯이 조곤조곤 내 할 말을 다했다.
약 한 시간 뒤, 소녀의 어머니가 학교로 왔다.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아 헤맸을 딸이, 선생님께 혼나 많이 놀랬을 딸이 걱정되어 왔다며 울먹이셨다. 그런 어머니를 소녀가 달래고 있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교무실로 어머니와 소녀를 데리고 들어왔다. 어머니의 행동이 조금 어색하다 생각했는데 스스로 장애가 있으시다고 말씀을 하신다. '아. 네.'라고 말했다. 어떤 대답을 해 드려야 할지 순간 막막했다. 교무실에 친구들이 들어오고 선생님이 많이 계셔서 혹 소녀가 불편하진 않을까 도리어 내가 불편해졌다. 그러나 이런 나와 달리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머니를 다독이고 어머니를 챙기고 어머니 손을 꼭 잡고 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네가 어른인데 내가 나이 좀 많다고 거들먹거렸구나.
내가 어른인 척 내뱉었던 말들이 부끄러워져 온다.
오늘도 아이에게 하나 배우고 간다.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