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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쓸채은 Jul 05. 2015

이상과 현실 사이

고3의 꿈과 취업 그 사이 어디쯤...

  올해 6년 차 고등학교 교사. 어쩌다 밀리고 밀리고 보니 고3 담임을 3번이나 했다. 고3 담임을 하면 몸과 마음이 점점 시든다. 아이들의 입시 스트레스가 교사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 아닐까. 그러나 고3 담임이 힘든 진짜 이유는 입시 지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대학이 한 아이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한 방향을 설정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  부끄럽게도 이 아이가 훗날 시간이  흘러 하게 될 선택에 대한 후회의 책임이 오롯이 아이에게만 전가되길 바라는 마음에 때때로 아이의 선택에서 나는 한 발짝 물러서기도 한다.


  입시 지도 앞에서 펼쳐지는 고민은 저기 드넓은 바다만큼 막막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이상과 현실의 갭(?)이다. 쉽게 말하면 꿈과 취업 사이의 갈등이다. 교사로서 아이의 진정한 꿈을 찾아줘야 하는지 아니면 이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뛰어들 취업 전선에서 살아남게 해줘야 할지. 고민을 해도 해도, 할  때마다 답이 안 나온다.


  내가 첫 고3 담임을 맡은 학교는 부산의 한 여고였다. 교직 경력이 2년 밖에 안 된 터라 나의 입시 지도는 교사의 지도라기 보다는 사실 친구, 언니의 조언과 격려 수준이었다. 입시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퉁퉁 부어 있는 소녀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며 소녀들이 가고 싶다는 대로 혹은 소녀가 쌓아 온 점수대로 추천해 줬다. 사실 이 소녀가 몇 년 뒤 겪게 될 '취업난' 그런 건 생각도 못하고 소녀가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과 관계된 학과와 직업을 추천했다. 

  꿈과 취업 사이에서 갈등하는 소녀들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꿈을 찾아 가라고 말했다. "대학이 인생을 결정하지 않는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대학 가서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 말하면서책에서, TV에서, 혹은 친구들에게서 들은 꿈을 찾아 성공한 극적인 취업 사례들을 늘어 놓으며 꿈을 찾아 학과를 선택하기를 지지했다. 혹 자신이 쌓아 온 점수보다 높은 대학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울음을 터트리는 소녀들에게는 괜찮다고 다독이며 대학이 귀한 너의 인생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위로했다.


  한 판의 입시 전쟁을 치르고 그 소녀들은 대학교 신입생이 되었다. 그 스무 살 아가씨들은 나를 찾아와 하나같이 말했다.


  "대학 입학 원서 쓸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동아대나 동의대나 가고 나면 다 똑같은데 뭐 그리 중요하다고 더 높은 점수 대학 가보려고 애를 쓰고 울고 불고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대학  상관없이 하고 싶은 거 하니까 재밌고 좋아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내 말이 맞아. 요즘 세상에 대학 서열화 그거 아무 쓸모도 없다.' 하면서 그동안의 내 입시 지도가 틀리지 않았다며 나를 위로하기도,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녀들의 말에 힘 입어 그 다음 입시 지도를 할 때는 더욱더 자신 있게 "더 높은 대학 가려고 애쓰지 말고, 대학 서열화 이런 거 하지 말고, 너희의 꿈을 찾아서 학과를 보고 가면 된다. 너무 연연하지 말자. 들어가서 열심히 하면 다 똑같다." 라면서 또 한 번 갈등하는 소녀들에게 이상을 심어 주기도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그 첫 졸업생들이 대학 3학년이 되었고, 전문 대학을 갔던 소녀들은 이미 취업 전선에 뛰어 들기도 했다. 그  스물세 살 아가씨들이 조금 더 성숙된 모습으로 얼마 전 내게 말했다.

  "선생님, 2학년  담임하시죠? 애들한테 공부 열심히 하라고 그래요. 그때 전문대 가지 말 걸 그랬어요. 취업은 둘째 치고 원서 넣을 기회조차 달라요. 학과 상관없이 더 이름 있는 대학 갈 걸 그랬어요. 꿈이고 뭐고 취업이 우선이에요. "

  그녀들의 말을 듣고 부쩍 씁쓸해졌다. 그동안 학교에 앉아 책만 들여다 보며 현실은 모르고 이상만 키워 왔구나. 나의 이 이상주의 때문에 그녀들이 취업 전선에서 더 애를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앞으로 더  힘들어하지는 않을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요즘 부쩍 고2 소녀들을 데리고도 성적을 강조하는 나를 발견한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인 것 마냥 가르치는 나를 발견한다. 진로 희망을 적어 낸 소녀들에게 "잘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지 않고 "가서 뭘 할 건데?"라고 말하며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는 나를 발견한다.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


  내년에 또 고3 담임을 하게 되어 꿈을 좇는 소녀 혹은 소년들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선택하라고 말해줘야 할까? 이상과 현실 그 어디쯤을 가리키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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