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공부를 하며 배운 것 중의 하나가 아파트에도 대학처럼 서열이 있다는 거였다. 성적 대신 가격으로 서열이 매겨진 이 아파트들은 서열이 높은 순대로 매매가가 오른다. 고로 그 지역에서 제일 서열이 높은 대장 아파트의 가격이 올라줘야 그다음 아파트들의 가격도 오른다. 이런 상황을 두고 사람들은 ‘상방이 열려야 한다.’라는 표현을 쓴다. 상방이 열려야 내 아파트의 가격도 오른다며 상방이 열리길 매의 눈으로 지켜본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아이들도 아이의 상방이 열려야 성적도 오르고, 레벨도 오르고, 내적 성장도 일어난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이의 상방은 무엇일까?
인간에게 상방은 크게 세 가지다. 부모, 친구 그리고 자기 자신. 나이가 어릴수록 우리는 부모라는 상방에 크게 영향을 받고 나이가 들수록 친구라는 상방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삶이 성숙해질수록 우리의 상방은 자기 자신이 된다.
아이가 어릴 때 아이는 엄마 아빠가 보여주는 세상을 보고, 엄마 아빠가 주는 걸 먹고, 엄마 아빠가 하는 말과 행동을 따라 한다. 그러던 아이가 초등 3~4학년 정도 되면 친구를 더 좋아한다. 엄마 아빠가 어디 가자고 하면 새우 눈을 하며 인상 쓰는 아이가 친구랑 놀러 갈 때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뛰쳐나간다. 엄마가 권해주는 학원 대신 친구가 다니는 학원에 간다. 그 아이가 성인이 되면 아이는 날마다 어제의 나를 넘어서려고 애쓰는 삶을 살게 된다.
결국 아이에게 부모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골든타임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고,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내 아이의 상방은 부모라는 말이 된다. 부모인 내가 레벨 업해줘야 내 아이도 레벨 업할 수 있다.
요즘 자녀의 의대 진학을 꿈꾸는 학부모님들이 많다. 그런데 자녀가 의대를 갈 만큼 공부를 잘하길 소망한다면 부모도 그만큼의 레벨이 되어야 한다. 의사 부모 아니면 아이 의대 진학 꿈꾸지 말라 그런 말이 절대 아니다.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길 바라는 만큼 부모도 공부든, 삶이든, 일이든 열심히 해서 아이의 동기를 자극하고, 아이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고, 노력할 힘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부모는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지 않으면서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해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부모가 비만이면 아이도 비만일 확률이 높다. 부모가 모두 비만일 경우 자녀가 비만이 될 확률은 80%, 한쪽 부모가 비만인 경우엔 40~50%, 부모 모두가 정상일 경우에는 7% 확률로 소아 비만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적으로 비슷한 체질을 물려받은 탓도 있지만 부모의 생활 양식과 식습관을 따르게 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아이는 부모를 뛰어넘는 성취를 달성하기도, 부모가 보는 세상 너머를 보기도 쉽지 않다. 보통 부모가 보는 세상만큼을 혹은 그 언저리를 볼 가능성이 크다. 부모가 굴지의 대기업 오너 혹은 나스닥 상장을 꿈꾸는 사업가라고 한다면 아이는 그 세상까지도 볼 수 있을 거다. 부모도 아이도 노력한다면 아이는 부모가 보는 세상 그 너머도 엿보며 부모라는 상방을 뛰어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의 가십거리만 보고 있는 부모라면 아이가 보고 있는 세상도 거기까지 일 가능성이 크다. 부의 대물림, 가난의 대물림, 직업의 대물림, 성적의 대물림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굴지의 대기업 경영권을 물려받는 재벌 2세, 3세들도 태어날 때는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라면서 그들이 보게 되는 세상은 사뭇 다르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이 하게 되는 사고, 품게 되는 꿈, 할 수 있는 일의 사이즈도 달라질 것이다.
물론 불우하기 그지없는 가정 환경에서 자라 세계 최고의 기업의 이룬, 부모라는 상방과 상관없이 성취를 이뤄내는 일론 머스크와 같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 아이가 나와 관계없이, 나를 뛰어넘는 월등한 인물이 되길 바라는 건 로또 당첨을 바라는 것만큼이나 확률이 낮다.
부모가 자신의 가치부터 올려야 한다. 엄마 아빠 본인부터 앞서 나가야 한다. 엄마인 내가 아이의 앞을 가로막고 있으면서 아이만 닦달해서는 안 된다. 부모는 책 한 자 보지 않고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 매여 있으면서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아이에게 책 좀 보라고 나무랄 수만은 없다.
엄마표가 중요하다고 하면 엄마들은 아이를 관리하고 공부시키는 것을 우선시한다. 하지만 엄마표에서 그보다 중요한 건 엄마가 아이의 상방을 열어주는 거다. 아이를 따라다니면서 감시를 할 게 아니라 엄마가 꿈을 품고, 공부하고, 자기 삶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하루하루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훨씬 더 값지다.
우리 반 아이 중에 장난꾸러기 남학생이 있었다. 수업 시간 매점에 들러 군것질하다 반성문을 쓰기도 한 그런 아이였는데 그 아이가 2학년이 끝날 무렵 도서관에서 책을 한가득 빌려다 틈날 때마다 읽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봤더니 꿈이 생겼단다.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 거라고 했다. 그런데 책은 갑자기 왜 이렇게 읽고 있냐고 했더니 뜬금없이 아버지 이야기를 늘어놨다.
아빠가 파일럿이셨단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파일럿이라는 직업이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셨단다. 좀 더 안정되고 정착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파일럿을 그만두고 다시 공부해서 공무원을 하셨단다. 그런 아빠가 책을 많이 읽으신다고.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실 때 책부터 읽으시더라고. 그런 아빠를 보고 배웠다고 했다.
아이는 평소 책을 즐겨 읽는 아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의 모습을 늘 지켜보고 있다가 자기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에 그 모습을 자연스럽게 따랐다. 아이는 정말로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란다. 아이는 부모가 나아가는 만큼 꿈을 꾸고 실행을 한다. 아이의 성적이든 성장이든 아이가 도달했으면 하는 레벨이 있다면 아이를 앞세워 뒤에서 닦달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엄마부터, 아빠부터 묵묵히 나아가 아이의 앞길을 터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