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읽고
미국대학위원회 선정 SAT 추천 도서, <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BBC 선정 꼭 읽어야 할 책, 퓰리처 상 수상작, 서울대학교 선정 꼭 읽어야 할 고전명작 등등.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향한 찬사는 대단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아주 드물다. 제목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지만, 내용은 잘 모르는 그런 명작. 우연히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을 조사하면서 『분노의 포도』가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왜 제목이 『분노의 포도』일까? 포도가 분노한다? 그럴 수도. 분명 이유가 있다.
도로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살인이라도 저지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기업들, 은행들도 스스로 파멸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농사는 잘되었지만 굶주린 사람들은 도로로 나섰다. 곡식 창고는 가득 차 있었어도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구루병에 걸렸고 펠라그라병 때문에 옆구리에서는 종기가 솟아올랐다. 대기업들은 굶주림과 분노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어쩌면 품삯으로 지불할 수도 있었을 돈으로 독가스와 총을 사들이는 데, 공작원과 첩자를 고용하는 데,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사람들을 훈련하는 데 썼다. 고속도로에서 사람들은 개미처럼 움직이며 일자리와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흉작과 배고픔에, 평생 경작해 오던 땅을 빼앗긴 미국 동부의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곳에만 가면 얼마든지 일자리가 있고,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그들은 목숨을 건 모험을 시작한다. 살기 위해서. 죽음의 여정 끝에 만난 캘리포니아의 자태는 감탄이 터져 나올 만큼 너무나 아름다웠다.
뒤쪽에서 해가 떠오르더니 갑자기 아래쪽에 거대한 계곡이 나타났다. (중략) 포도원, 과수원, 크고 평평하며 초록색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계곡, 줄지어 서 있는 나무들, 농가들. (중략) 멀리 보이는 도시들, 과수원 지대의 작은 마을들, 계곡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아침 햇살.
“과실수들이 꽃을 피우는 계곡은 향기로운 분홍색을 띠고, 수심이 얕은 바다에는 하얀 물이 흐”르는 풍요롭게 보였던 땅은 지배 계층과 그들과 연계를 맺고 있는 상인들의 농간 때문에 더 이상 풍요로운 곳이 아니었다. 먹음직스럽게 영근 포도를 비롯한 온갖 과실들은 이들의 분노만을 일으키는 포도일 뿐이었다.
- <작품해설>(조철원) 중에서 -
이 책의 배경은 1930년대 미국이며, 땅을 평생의 친구이자 동반자, 가족이자 생명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던 은인으로 여기며 살아가던 순박한 농민들의 삶을 담고 있다. 하지만 평화롭던 이들의 일상에 가뭄과 홍수가 들이치고(이 또한 인재라 할 수 있다), 이어 산업자본주의의 파도가 때리면서 농부들의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부정을 넘어 최악의 수준으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앉아 굶어 죽든가, 아니면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도 치든가. 결국 이들은 몸부림을 선택한다. 서부로의 죽음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
『분노의 포도』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산업자본주의의 위력이 발휘되던 시기의 미국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일정 계층의 소수 미국인들은 전후 엄청난 부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지만, 자본이나 기술이 부족한 중산층 이하 도시민이나 농민들은 빈곤 속에서 허덕이며 암울한 하루하루의 삶을 연명해 가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미국 전역에 몰아친 대공황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황을 더욱더 악화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의 실업자가 천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20세기 초 미국의 화려함 뒤에 혜택 받지 못한 가난한 자들의 좌절과 분노가 상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1933년부터 3년여에 걸쳐 미국 중부에 밀어닥친 한 발과 모래 폭풍은 그러지 않아도 생존을 위해 피 말리는 고통을 감내해 오던 수천만 농민들을 더욱더 좌절감 속에 빠져들게 했다. 은행을 통해 비싼 이자로 농사 자금을 빌려 순간을 모면하려 했지만 지속되는 가뭄으로 농사는 흉작이었고 따라서 빌린 돈을 제때에 갚을 수 없었다. 담보로 맡긴 그들의 농지는 트랙터로 즉시 정리되었고,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은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분노의 포도』는 이러한 농민들의 모습을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로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주해야만 했던 무기력한 조드 가족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 <작품해설>(조철원) 중에서 -
두껍다. 게다가 2권(민음사 기준)이다. 거의 1,0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다. 그래서 완독 하기는 쉽지 않다. 1권은 조드 가족의 소개와 함께 산업자본주의의 폐해로 인해 고향을 등지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렵사리 가족들은 일자리를 찾아 풍요로운 미래가 펼쳐질 캘리포니아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넓은 땅덩어리인 만큼 가는 여정도 만만치 않다. 이 와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죽음을 맞이한다.
2권은 여유로운 삶이 펼쳐지리라 기대했던 캘리포니아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했던가? 아니다. 최소한 이 책에서는 실망을 넘어 망연자실 그리고 좌절감에 이어 화가 치솟는 분노까지 이어진다. 기대가 컸던 것도 아니다. 그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편하게 누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정도. 그게 다였다. 하지만 삶은 그들을 절망의 수렁텅이로 밀어 떨어뜨려 버린다.
이 책에 대한 논란이 제법 있는 편이다. 인문고전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당시 상황을 고발하는 르포나 다큐멘터리로 볼 것인지에 따라서. 후자의 시각으로 보게 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가난한 자들이 힘을 합쳐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 단합된 힘으로 소위 자본가들, 은행, 기업들에 맞서 싸워 승리하는 것을 은연중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그 내용을 제대로 담지 않는다. 톰 조드가 짐 케이시란 과거 목사의 사상을 쫓아 불합리한 권력과 투쟁할 것을 결심하지만, 실제 행동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홍수로 인한 사람들의 목숨 건 안간힘, 로저샨의 출산 등이 엉키며 예기치 못한 결말로 치닫게 된다. 그러면서 작가 존 스타인벡은 인간의 숨겨진 힘이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할 것이라는 메시지만을 던진다. 소설에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며 분노가 치솟는 그대로이다.
마지막 후반부는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흡입력이 있다. 조마조마. 과연 이들의 삶은 어떻게 치닫게 될 것인지. 조금이라도 나은 상황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오히려 더 안 좋아지는 것은 아닐지. 불행은 끝이 없다. 오히려 고생하다 죽었습니다, 하면 끝일 수 있다. 하지만 불행은 겹겹이 벗겨내도 끊어내도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해피 엔딩이면 마음이 좀 편해지련만 저자는 희망의 끈만 살짝 풀어놓으며 마무리를 해 버린다. 밉다. 하지만 여운이 깊게 남는다. 예상치 못한 여백의 힘이랄까.
책을 읽으며 공산주의를 설계한 칼 마르크스를 떠올릴 수도 있다. 노조와 투쟁이 등장하고, 부르주아대 프롤레타리아의 2분법 구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소설의 조미료로 가미될 뿐 중심이 되진 않는다. 작가가 바라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타인 벡은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한다. 인간의 힘을 어디까지 믿는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괴로우며 고통스러운 상황이 펼쳐질지라도 인간의 힘이 이것들을 극복해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가. 어머니와 로저샨의 과감한 행동에 그 답이 있다. 삶이 초라하고 쭉정이가 될지라도 그 힘에 믿음을 걸고 싶다. 그것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자 메시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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