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의 원유 카드를 쥐고 있는 미국이지 말입니다
최근 글로벌 경제 흐름을 살펴보면 아주 재밌습니다.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막장 드라마(?)’가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죠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상식선에서는 절대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이 여기저기에서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벌어지고 있는데요, 오늘은 경제공부도 할겸 이론 경제학으로는 절대 이해되지 않는 현실의 막장 경제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현재 글로벌 경기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 하나를 꼽으라하면 유가(油價), 즉 원유 가격인데요, 요게 아주 찰지게 재밌습니다. 오늘은 이 원유와 유가 그리고 이 유가가 어떻게 막장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무려 70여가지 종류의 원유가 사용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3가지 원유가 가장 많이 거래되며 유가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브렌트유(Brent Oil), WTI유(West Texas Intermediate Oil) 그리고 두바이유(Dubai Oil)가 그것이죠. 브렌트유는 영국의 북해에서 생산되는 원유로써 가장 광범위한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지만 주로 유럽에서 거래되고 있죠. WTI유는 미국 서부 텍사스에서 생산되는 중질(중간 품질)유로써 대부분 미국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바이유는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로, 주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죠. 중동산 원유의 기준이라 보시면 됩니다.
이왕 얘기한 김에 조금만 더 원유에 대해 알아볼까요? 매장량 기준으로 세계 1위는 어디일까요? 미국? 캐나다? 아니면 중동의 한 나라? 아래 그림으로 확인해보시죠.
(출처 : SK 이노베이션)
경제기사를 관심있게 보신 분들은 원유에 관한 한 베네수엘라가 매장량 1위라는 것은 이미 알고 계셨을겁니다. 중동의 경우는 2위 사우디 아라비아, 4위 이란 그리고 5위가 이라크로써 역시나 ‘중동’임을 실감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캐나다가 넓은 영토를 기반으로 세계 3위의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고요. 캐나다를 제외한 이들 나라들은 국가경제에 원유 의존도가 매우 크기 때문에 최근 저유가로 인해 무척이나 힘들어하고 있죠.
이번에는 생산량 순위를 알아볼까요? 2014년 기준으로 미국이 1위, 사우디 아라비아가 2위 그리고 러시아, 캐나다, 중국 순입니다. 소비량 순위도 살펴보면, 미국이 경제 1위 국가답게 생산량에 이어 소비량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위는 13억명의 인구수를 자랑하는 중국, 3위는 ‘아직 나 안 죽었어~!’를 외치는 일본입니다. 4위는 인도 그리고 5위가 브라질입니다. 대체적으로 인구수가 많을수록 소비량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참고로 한국은 8위인데요,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데 비해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유가에 아주 민감한 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금융)
위의 그래프는 두바이유의 5년간 가격 추이인데요, 2012년 3월에 배럴당 123달러로 최고치를 찍었고, 얼마전인 올해 1월에는 25달러로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왔다리갔다리 하는 수준입니다. 이번에는 달러가 아닌 원화로 살펴볼까요? 1달러를 환율 1,150원으로 계산하고, 1배럴은 158.9리터니까 리터당 원화로 환산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23.51 달러/배럴 = 894원/리터
25.56 달러/배럴 = 185원/리터
차이가 어마어마하죠? 185원이면 한창 가격의 1/5 밖에 안되는 수준입니다. 2008년에는 140.7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를 환산하면 1,018원이니 당시와 비교하면 18% 수준 밖에 되지 않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죠. 유가는 왜 이렇게 곤두박질쳤을까요?
몇 년 전부터 유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용어가 바로 ‘셰일혁명’입니다. 지상으로부터 2~4Km 아래 위치한 셰일층에서 추출해 낸 원료가 바로 셰일가스(오일)인데요, 이 셰일가스로 인해 유가가 요동치기 시작했죠. 사실 셰일가스는 200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추출되기 시작했는데, 당시는 채굴 기술이 발전되지 못해 원가가 무척 높을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대량생산은 불가능했었습니다.
하지만 2014년 중반까지도 100달러를 넘는 유가의 고공행진이 계속되자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업체들은 새로운 기술개발과 채굴에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셰일가스의 대량공급이 가능해지게 됩니다. 그러자 사우디 아라비아를 필두로 한 OPEC(석유수출국기구)에서는 원유증량을 통해 의도적으로 유가를 떨어뜨림으로써 셰일가스를 견제하게 되죠. 하지만 밟아도 밟아도 살아나는 질경이처럼, 셰일가스 업체들은 엄청난 능력을 발휘, 기술을 개발하고 원가를 줄임으로써 악착같이 버팁니다. 물론 그 한파로 여러 셰일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게 되죠. 이러한 극한환경에서 살아남은 업체들은 대단한 경쟁력을 보유하게 됩니다. 그 결과 유가가 20달러대의 사상최저치를 기록할 때조차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겁니다. 바로 이러한 셰일가스와 기존 원유와의 한판 전쟁이 현재 유가가 바닥을 찍고 있는 배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셰일가스가 개발되어 대량생산되기 전까지 원유는 세계 경제의 절대적인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태양광, 풍력, 수력, 화학 에너지 등 여러 다양한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고 있었지만, 전적으로 원유를 대체하긴 힘들었죠. 그래서 그동안 중동 산유국들의 연합체인 OPEC이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거고요. 또한 원유는 매장량에 한계가 있는 한정적 자원이기 때문에, 소비하면 할수록 공급이 줄어들 수 밖에 없어 유가는 계속해서 고공행진을 했던겁니다. 하지만 셰일가스의 대량생산, 소위 셰일혁명으로 인해 더 이상 유가는 독점력을 상실하고,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죠.
유가가 낮아지면 글로벌 경제는 어떻게 될까요?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낮은 유가는 제조업을 비롯한 소위 굴뚝 산업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겁니다. 또한 한국처럼 원유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경제에도 많은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한쪽 면만 보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데요, 지난 1월, 중국이 그동안 불문율처럼 지켜왔던 바오치(7% 성장률)가 무너지고, 앞으로도 중국 경제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직후 글로벌 경제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흔들렸죠. 전 세계 주가가 폭락하고, 특히나 중국증시(상해종합, 홍콩H지수)는 반토막이 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유가 또한 20달러 대까지 떨어졌는데, 중국이 세계 2위의 원유 소비국이란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죠.
다행히 2월과 3월로 들어서며 서서히 글로벌 경제는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는데요, 재밌는건 유가가 급등하면 글로벌 증시 또한 같이 급등하고 있다는 겁니다. 낮은 유가는 오히려 글로벌 경제에 심리적 불안감뿐 아니라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거죠. 그 결과 OPEC에서 원유 생산량을 줄인다거나, 어느 나라에서 원유 소비가 늘었다는 소식이 나오면 유가는 급등하고, 그에 따라 글로벌 증시 또한 같이 급등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유하면 어떨까요? 조그만 동네에 석유파는 가게가 딱 하나 있는데 석유가격이 너무 떨어지자, 그 가게 주인은 장사를 접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자 동네 주민들 또한 걱정에 빠지죠. 그 가게가 없어지면 저 멀리 다른 동네까지 가서 석유를 사와야 하거든요. 그러면서 석유시세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죠. 석유값이 올라가면 조금 더 부담은 해야되지만, 그래도 가게는 없어지지 않을테니 안심이 되는거고요. 반대로 더 떨어지면 걱정은 더 커질테고요.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죠.
저유가로 인해 현재 중동 국가들은 국가재정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유가를 올리기 위해서는 생산량을 줄여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알량한 수입이 더 줄게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거죠. OPEC 회의석상에서는 감산을 해서라도 유가를 올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막상 국가차원의 결단은 내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지 않아도 힘든 판에 국가의 수입이 줄게되면 국민들에게 돌 맞을 수도 있을테니까요. 중동의 이러한 재정적 어려움은 그동안 활발히 진행되던 각종 개발사업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고, 중동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업권을 가장 많이 따냈던 한국의 건설, 중공업 업체들에 그대로 직격탄을 날리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습니다. 경제에 플러스 요인으로만 작용할 것이라 생각했던 저유가가 한국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는거죠.
앞으로 저유가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큰데요, 여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글로벌 경기 불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인데요,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상 원유 소비는 늘지 않을 것이고, 그럴 경우 유가는 계속 낮은 상태에서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현재 미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도 경기 활성화는 요원해 보이기 때문에 급반전을 보이지 않는 이상 경기회복에 의한 유가상승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원유 정책에 기인하는데요, 현재 미국은 원유에 관한 한 두 개의 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원유와 셰일가스죠. 원유뿐 아니라 셰일가스에서도 미국은 세계 1위의 생산국입니다. 이들은 2개의 카드를 적절히 활용, 언제든 유가를 자신들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한마디로 원유에 관한 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 할 수 있죠. 하지만 아직 완전치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동의 산유국들이 대항마로 완강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죠. 이들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부릴(?) 수 있게 만들기위해 미국은 저유가를 계속해서 유지하며, 중동뿐 아니라 베네수엘라 그리고 러시아 등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원유를 자국 내에서만 소비하던 미국이, 법까지 개정함으로써 생산량을 늘리고 해외수출까지 나서는 데는 국가재정의 확충뿐 아니라 저유가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드는건 과연 저만의 착각에 불과할까요? 아무튼 현재 미국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여러 산유국들이 두 손, 두 발을 들고 미국이란 나라에 구원을 요청할 때까지는 최소한 계속해서 저유가를 강제로 유지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백기투항을 하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유가를 올려가지 않을까 보여지는데요, 이렇게 되면 비로소 미국은 원유와 셰일가스라는 2개의 카드를 본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세계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자원을 한 나라가 독점하게 되는거죠. 이렇게 본다면 미국, 참 무시무시한 나라 아닌가요?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복잡하고 어지러운 글로벌 경제까지 신경쓰며 살고 싶지 않은데, 그저 조용히 평범하게 지내고 싶은데, 이런 소박한 마음 조차도 가만히 놔두지 않는 요즘이네요. 참 어지럽고 시끄러운 시절이자 시대입니다.
(표지 이미지는 본 칼럼 내용과 무관합니다. 미드 프렌즈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오해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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