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아홉마리 암소>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 볼 소중한 나의 가치
『생각이 나를 바꾼다』, 『생각이 부자를 만든다』, 『그림으로 읽는 성공의 법칙』의 저자이자 창의력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박종하님이 쓴 2007년작 『아프리카에서 온 아홉 마리 암소』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다소 길긴 하지만 같이 나누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인용해 본다.
한 의사가 아프리카의 어느 외진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었다. 이 마을은 워낙 외진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교통도 통신도 매우 불편한 곳이었다. 목축과 농사를 주로 하는 이 마을에서 의사는 마을 사람과 친하게 지냈으며, 특히 외국에서 공부를 했음에도 이 마을로 귀향한 젊은 청년 한 사람과는 친형제처럼 매우 가깝게 지냈다. 이 청년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배워온 선진 영농기법과 축산기술을 활용하여 이 마을에서도 가장 부유한 축에 끼일 수 있었으며, 장차 이 마을 그리고 이 나라에 커다란 기업을 세워 빈곤에 허덕이는 이 나라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큰 포부와 높은 비전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러나 아직 미혼이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과연 이 청년이 어떤 처녀에게 구혼을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는 결혼을 원하는 남자가 가축을 끌고 처녀의 집으로 찾아 가서 장래 장인이 될 사람에게 가지고 간 가축을 건넨 후 청혼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정말 훌륭한 신부감에겐 최소 살찐 암소 세 마리를 건네야 하는데, 이 암소 세 마리는 마을이 생겨난 이후로 단 2사람뿐 일 정도로 드물었다고 한다. 대개는 암소 한 마리 정도면 좋은 신부감을 얻을 수 있었으며, 그 암소가 살찐 암소인지, 늙은 암소인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청년의 '사모하는 정도'에 달렸다고 한다.
어느 날 의사가 하루의 바쁜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하기 위해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밖이 시끌벅적 해지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었다. 모여든 사람들이 노래하고 축복의 말을 소리 높여 외치는 가운데 의사와 친하게 지내던 그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날은 바로 젊은 청년이 구혼을 하기 위해 처녀의 집을 방문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 청년의 구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과연 어떤 처녀에게 구혼을 할 것인지 그리고 예물로는 얼마나 준비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하고자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청년이 준비한 가축을 보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청년이 준비한 암소가 세 마리도 아닌 무려 아홉 마리였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포동포동 살찐 암소로만. 이 마을에서 살찐 암소 아홉 마리 정도면 당장이라도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청년은 마을 촌장 집을 지나치고 바나나 농장 유지의 집도 지나쳤으며, 마을 학교 여선생님의 집도 지나쳐서 흙먼지 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마을 사람들의 호기심은 점점 커갔으며, 청년의 선택을 확인하기 싶어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행진하는 것처럼 청년의 뒤를 계속해서 쫓아갔다.
그렇게 걷던 중 마침내 청년은 어느 허름한 집 앞에 멈춰섰고, 그 집 기둥에 조용히 아홉 마리 암소의 고삐를 매었다. 뒤를 쫓아온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집은 마을에서도 가장 못 사는 축에 드는 집이었으며, 늙고 가난한 노인과 그의 딸, 단 둘 만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도 가장 초라한 축에 드는 그런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딸은 말라깽이에다가 보잘 것 없는 외모, 병약한데다가 마음까지 심약하여 늘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암소가 아니라 염소 두어마리 정도면 예물로 충분한 그런 정도의 처녀였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청년이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느라 제 정신이 아닌지 아니면 그 처녀가 마법으로 청년을 홀린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 까지 했다.
어찌되었든 청년은 그 처녀와 결혼을 했고, 의사는 갑작스런 일로 인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본국으로 돌아가서도 의사는 청년이 왜 그 처녀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지곤 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덧 중년이 된 의사가 휴가차 그 마을로 가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찾은 마을에서 그 청년은 어엿한 기업가로 자리잡고 있었다. 의사는 그 청년과 반갑게 해후하였고, 그 동안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를 마친 후 의사는 청년에게 그렇게도 궁금해 하던 질문을 건넸다. 그 청년은 빙긋 웃을 뿐 속 시원한 답변을 들려주지 않았다. 그때 차를 가지고 한 여인이 들어왔다. 의사는 지금까지 수 많은 여인들을 보아 왔지만 그토록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을 본 적이 없었다. 격조있는 자태와 유창한 영어 그리고 사람 맘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미소까지... 의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 청년이 그때의 보잘 것 없던 말라깽이 처녀와 헤어지고 또 다른 아내를 맞이했구나. 역시 이 청년에겐 저 정도 수준의 여자여야 잘 어울리지.’
여인이 차를 내려놓고 나간 후 그 청년은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 당시에 보셨던 그 처녀입니다.”
“예? 정말로요?” 의사가 화들짝 놀라면서 반문했다.
놀라움에 가득 찬 얼굴을 한 의사에게 청년은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 사람을 사랑했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던 긴 세월 속에서도 저 사람의 맑고 고운 눈동자를 한시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당연히 저 사람과의 결혼을 꿈꿔왔죠. 하지만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마을에선 청혼의 관습 때문에 몇 마리의 암소를 받았느냐가 여자들 사이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저는 그 관습을 무시하고 싶었습니다만 마을의 전통이기 때문에 청혼을 하기 위해서 가축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의사는 청년의 눈을 응시하며 그 청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실 사람들이 보기에 제 아내는 암소 한 마리, 아니 염소 몇 마리 정도면 충분히 결혼 승낙을 얻을 수 있을 정도의 처녀였죠. 하지만 문제는 그 청혼의 순간에 몇 마리의 암소를 받았느냐에 따라 평생의 자신의 가치를 결정할 수도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진실로 지금의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아내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한, 두 마리의 암소 값으로 한정시키고 평생을 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제가 만약 암소 세 마리를 선물하면 그 옛날 똑같이 암소 세 마리를 선물 받았던 훌륭한 여인들과 비교될 것이고, 비교를 받게 되면 아내는 그 부담감 때문에 현실에서 더욱 움츠려 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제 아내의 가치를 훨씬 더 높여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제 아내가 그 정도의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청년의 눈은 의사를 응시하고 있지 않았다. 조용히 말을 하고 있는 그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처음에 아내는 아홉 마리의 암소 때문에 무척이나 놀라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흐르고 제 사랑의 진정함을 느끼자 스스로 암소 아홉 마리의 가치가 과연 자신에게 있는 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어느 날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저는 아직 너무도 부족하긴 하지만 이제야 당신이 몰고 온 아홉 마리 암소의 의미를 조금씩 알 것 같아요’라고요. 아내는 그 후로 자신의 가치를 암소 아홉 마리에 걸맞게 하려는 노력을 시작했어요. 아니 그것은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노력이었지요. 저는 그런 아내에게 단지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자신을 사랑하라고 이야기 해 주었지요. 아내는 그 이후 점점 더 아름다워져 갔습니다. 저는 아내의 예전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 모두 다 똑같이 사랑하지만, 아내는 지금의 자신 모습을 더욱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지금 기쁘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저 또한 만족스럽고 행복합니다.”
청년은 목이 마른 듯 차 한모금으로 목을 축이더니 계속하여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아홉 마리의 암소를 몰고 간 것은 결코 아홉 마리의 가치를 주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아홉 마리의 암소라는 숫자 또한 사회가 보는 하나의 틀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가치 부여의 틀을 뛰어 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아내를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는 마음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청혼을 하러 아내를 찾아 가던 그 날, 뒤에서 수군거리며 비웃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제 아내의 밝은 미소를 보며 즐거워 합니다. 아내의 사려깊은 생각과 행동들을 보며 아내처럼 되고 싶어 합니다. 언젠가 이 청혼의 풍습은 사라질 겁니다. 하지만 이 암소 아홉 마리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면 최고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부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스스로 가진 최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아내에게 암소 아홉 마리를 건넨 이유입니다.”
의젓한 사업가가 된 청년의 긴 이야기가 끝난 후 의사는 아무 말없이 사업가의 손을 잡았다고 한다.
소심한 사람들의 가장 큰 약점은 어쩌면 자신감도, 사회적 관계 상에 필요한 다양한 스킬 부족도 아니며 높은 수준의 재능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수 많은 상황과 사건, 사고에 억눌려 진실된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부정적 소심에 짓눌린 채 사회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자본적 논리의 법칙을 따라 쫓아가기에도 버거워 한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힘에 겨워 주저 앉거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인생의 중턱에서 절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홉 마리의 암소>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은 명쾌하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이 세상의 법칙에 따라 순종하며 그것에만 맞추어 살아가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각자 아홉 마리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하며 그 가치에 맞추어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소명이자, 천복이다. 자신의 외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쓰레기와 같은 낡은 포장지를 과감히 벗겨보라. 그리고 내면 안에 고히 잠들고 있는 나의 가치를 발견해 보라. 그리고 그 가치에 맞추어 삶을 다시 리스트럭쳐링(restructuring) 해보자. 단언컨대 당신과 나는 분명 아홉 마리 암소의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며, 우리는 그 가치에 맞추어 세상에 쫓겨 사는 것이 아닌 세상을 즐기며 살 이유가 충만한 사람들이다. 어떤 누가 딴죽을 건다해도 말이다.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uryuni.tistory.com/category/thinking?pag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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