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경험 + 경험 = 변화와 치유
소심인으로 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에 대해 앞에서 몇가지를 언급하였다. 먼저 무엇보다도 소신을 가져야만 하고, 세상의 또 다른 나를 만나야 하며 또한 세상에 나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부정적 소심이라는 구덩이 속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하며 스스로의 무한한 가치에 대해 발견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 이러한 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적극적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행동이 몸을 움직여야만 하는 물리적 행동이든, 굳게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여는 심리적 행동이든 이러한 일들을 해내기 위해서는 일단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행동,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실천’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동이나 실천은 왜 중요할까. 그것은 행동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동이 없는 머리 속 상상 만으로는 우리의 삶을 바꾸기 어렵다. 빈틈없는 계획과 성공의 가능성이 충만한 로드맵을 머리 속에 보유하고 있더라도 행동이 뒤따라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주공산에 그칠 뿐이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드넓은 사막 위에서 주저 앉아 시원한 샘이 솟아 넘치는 오아시스만 떠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일 뿐이다. 상상만 하고 결심만 하는 사람들은 결국 현실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공상주의자 내지 이상주의자로 머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현실을 떠나서 살 수 없다. 사회적 동물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 사회에 자신의 발을 디딘채 비틀거리고 쓰러지더라도 살아나갈 수 밖에 없다. 우리 안에 깊이 박혀져 있는 사회적 유전자가 우리들을 이 사회 안에 머물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동은 좋고 나쁨을 떠나 명확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단 한번이라도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 얻어진 결과는 시간이라는 자연적 요소와 결합되어 우리 몸 속에 ‘경험’이란 이름으로 축적되는데, 이러한 경험들은 뇌 속에 있는 저장장치에 코드화되어 기록되어 질 뿐만 아니라 온 몸 구석구석에 새겨지게 된다. 그리고 이 경험들은 이와 유사한 사건, 일, 상황을 맞게 되었을 때 기억이란 이름으로 떠올려지며 어떠한 행동을 선택해야 함에 있어 실행의 가부를 결정시켜주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경험 + 경험 = 변화와 치유
행동을 통한 경험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 나쁜 경험은 우리를 각성시키고 반성시킴과 동시에 앞으로의 발생할 일에 대해 스스로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다. 또한 좋은 경험은 우리를 즐거운 감정상태로 이끌어 주며,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선순환적 행동을 유발하도록 만들어 준다. 경험은 또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활용된다. 스스로에게 새겨진 강력하고 강렬한 경험은 이전의 사고, 관념, 행동방식,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대니얼 길버트는 그의 저서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Stumbling on Happiness>에서 이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종교에 귀의한 사람, 이혼한 사람, 또는 심장마비를 이겨낸 사람이 그런 경험 후 인생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본다. 이들은 그런 커다란 사건을 겪은 후 생각해보니 이전의 삶은 진정으로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엄청난 삶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의 고백을 전적으로 믿어야 할까? 일단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고 나면, 다시는 그 경험을 하기 이전처럼 세상을 볼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는 그 순간부터 그 경험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는 렌즈의 일부가 되어 우리가 보는 것들을 조성하고 바꾸어 놓는다.
한번 겪은 경험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어떠한 실마리, 키워드, 상황, 사건 등에 의해 언제든 되살려 진다. 즉 ‘경험 - 경험 = 0’이라는 수학적 공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악순환의 고리에 걸린 채 주춤거리거나 비틀거리며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경험은 또 다른 경험에 의해 변화와 치유가 가능해진다. 소위 경험 위에 경험이라는 덧씌우기가 가능하며 이를 통해 과거의 경험은 최소로 축소되거나 새로운 경험에 의해 잊혀지게 된다. 즉 ‘경험 + 경험 = 변화와 치유’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대니얼 길버트 교수의 말을 유심히 살펴보면 소심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소심이란 후천적으로 발생되어진 어떠한 사건, 일, 에피소드 등에 의해 깊이 각성되어 진 것으로, 결국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단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긍정적인 요인보단 부정적 요인이 훨씬 더 부각되어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소심은 소심한 사람들의 발목을 움켜잡은 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자신의 본질을 흐려놓음은 물론 결코 본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과도 같다.
이 부정적 소심을 떼어 버리기 위해서는 무언가 다른 강렬한 경험이 필요하다. 과거 소심이라고 하는 경험 위에 새로운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경험으로써 제압하는 것이다. 대니얼 길버트 교수가 말한 것처럼 이전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그러한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이미 자신의 온 몸에 퍼진 소심은 마치 자신의 근육과도 같은 것이다. 백지에 연필로 그려놓은 낙서를 지우개로 지우듯이 깨끗하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래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심 위에 새로움을 쌓아 올려야만 한다. 이미 새겨진 근육 위에 또 다른 근육을 새겨 넣어 새로운 체질로 바꾸어 나가야만 한다. 이것이 소심인의 변화이며, 진화이다.
단 한번의 경험이라 할 지라도 우리는 다시는 경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좋은 경험은 온 정신과 육체에 깊숙이 새겨져 언제든 떠올려질 수 있으며, 그 경험을 토대로 우리는 아무리 힘든 삶이라 할지라도 다시 힘차게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한 번의 경험이 또 다른 경험을 낳는다. 경험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깊어질수록 우리의 소심하기만 했던 삶도 점차 소심인의 삶으로 진화가 가능해진다. 경험의 힘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작은 발걸음으로부터 시작하라. 경험이 진정으로 바라고 원하는 나 자신을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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