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쎄시봉>의 늦은 감상문
‘트윈 폴리오’란 듀오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때인 1980년대 초반으로 기억된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형--나와 8살 차이가 나는--이 가지고 있던 ‘워크맨’을 통해 처음 그들의 주옥같은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듀오의 멤버가 송창식, 윤형주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노래를 들으며 바로였는지, 아니면 한참 후였는지는 기억이 다소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각자의 이름만으로도 이 대단한 가수 두사람이 뭉쳐 활동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꽤나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트윈 폴리오로 그들이 가수 데뷔를 했다는 것은 영화 <쎄시봉>을 통해 비로소 알게된 사실이다.
처음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노래는 <하얀 손수건>이었다. 윤형주의 맑고 투명한 목소리, 송창식의 구수하고 탁 틔여진 목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려짐과 동시에 거기에 얹혀진 절묘한 화음까지. 게다가 노래에 담겨져 있는 감정이입은 어떠한가! 그냥 좋았고, 마냥 좋았다.듣고 또 들었던 것 같다. 아마 중학교 사춘기 시절이라 더욱 좋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웨딩케익>이란 노래도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아~ 그 가사는 어떠했는가.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잠못 이루고 깨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사람은 간 곳이 없고 외로이 남아있는 저 웨딩케익
그누가 두고 갔나 나는 아네 서글픈 나의 사랑이여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원치 않는 사람에게로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가네 그대 아닌 사람에게로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사랑치않는 사람에게로
마지막 단 한번만 그대 모습 보게 하여 주오 사랑아
아픈 내 마음도 모르는 채 멀리서 들려오는 무정한 새벽 종소리
행여나 아쉬움에 그리움에 그대 모습 보일까 창밖을 내어다 봐도
이미 사라져버린 그 모습 어디서나 찾을 수 없어
남겨진 웨딩케익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네
남겨진 웨딩케익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네
<웨딩케익>의 원곡은 Connie Francis란 미국 가수가 1969년 발표한 곡으로, 결혼은 웨딩케익과 함께 시작되며, 그 안에 삶의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다는, 약간의 성찰적이나 아내의 남편에 대한 배려가 들어가 있는 꽤 괜찮은 가사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트윈 폴리오가 부른 <웨딩케익>은 원곡과는 많이 다른 편으로, 그 멜로디는 원곡보다 조금 더 가볍고 경쾌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번안가사를 주의깊게 들어보면 멜로디와는 전혀 다르게 슬픔과 애잔함, 먹먹함이 담겨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노래에는 경쾌함과 슬픔의 복합적 감정을 일으키게 만드는 묘함이 존재한다. 트윈 폴리오의 원곡에 대한 재해석이, <웨딩케익>이란 노래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줬다고 볼 수 있을 듯 싶다.
영화 <쎄시봉>은 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트윈 폴리오의 실제 인물인 윤형주, 송창식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우리가 모르고 있던 제3의 인물인 오근태(정우 분, 실제로는 이익균)와 허구의 인물인 민자영(한효주 분)에 대한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거기에 1960년대 후반의 사회 분위기, 예를 들면 미니스커트 길이 단속, 12시 통금제한, 쎄시봉이라는 음악 감상실, 대마초 사건 등과 어울려 향수를 불러일으키도록 만든다. 소위 아날로그 감성을 돋구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영화를 보며, 쏠쏠한 재미를 주었던 몇가지 포인트.
트윈 폴리오의 첫 앨범은 모두 번안곡으로 채워지는데, 영화에서의 설정은 쎄시봉 사장인 김춘식(권해효 분)이 번안가사를 쓰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번안가사를 쓰기 위해 몇날 몇일 작업을 하다 깜빡 잠이 드는데, 이때 결혼을 앞둔 민자영이 우연히 쎄시봉을 방문해 그 모습을 보게 된다. 타자기 위의 빈 종이 위에는 <웨딩케익>이란 노래제목만 덩그러이 쓰여져 있고, 민자영은 자신의 처지와 심경을 담아 노래가사를 남겨놓고 떠난다. 그렇게 <웨딩케익>의 번안가사는 탄생한다. 영화니까 가능한 설정이지만, 재치가 담긴 재밌는 아이디어였다.
“근태야, 충무김밥 참 맛있다...”
민자영이 이별을 결심하고 충무로 오근태를 만나러 간 날 밤. 여관에서 오근태는 잠이 들고, 옆에서 꼬박 밤을 새우는 민자영은 녹음기에 말을 남긴다.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며 “미안해”라는 말을 녹음하지만, 곧 테이프를 되돌려 “근태야, 충무김밥 참 맛있다...”란 말로 바꿔 녹음하게 된다. 영화가 아니라면 평생 당사자 만의 비밀로 남겨질 에피소드이겠지만, 웬지 모를 애잔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 또한 현실이라면 별 것 아닌 것으로 스쳐지나갈 작은 부분에 불과했겠지만, 영화가 주는 임팩트에 의해 장면이 살아났다.
“나 너희 친구 아니야.”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된 오근태는 회사일로 LA를 방문하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절친이었던 이장희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되고, 그를 방문하게 된다. 술잔을 기울이다 다음날 방송까지 출연하게 되고, 두 사람은 의기투합, 기타를 잡고 <웨딩케익>을 부른다. 방송을 마친 후 헤어지려는 순간, 이장희는 과거 대마초 사건의 루머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오근태가 쎄시봉 친구들을 대마초 사건의 주범으로 불었다는 그 소문이 결코 진실이 아님을 자신은 믿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오근태는 정색하며 말한다. 그 소문이 사실이며, 자신은 너희들의 친구가 아니라고. 당황해하는 이장희를 남겨두고 그는 그렇게 떠난다. 영화의 숨겨진 반전의 순간이었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재미의 끈을 놓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영화 <쎄시봉>은 사실 내 세대의 이야기는 아니다. 동갑내기인 윤형주, 송창식이 1947년생(현재 나이로 70세다...)이므로, 부모님보다는 큰 삼촌 세대의 이야기라 보는게 적당할 듯 싶다. 영화의 배경도 내가 태어난 해인 1968년로부터 시작하니 말이다.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이들 세대의 활약(?)은 거의 끝났다해도 무방할 것이다. 70세의 나이이니 이제는 노년의 시기라 부르는 것이 맞을테니까.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면, 젊음은 다 똑같음을 알게 된다. 살아왔던 시기가 조금 다를지라도, 그 시기에 따라 누렸던 혹은 겪어야만 했던 사회적 기준과 상황이 달랐다 할지라도, 그에 따라 가질 수 있던 생각이 달랐을지라도, 젊음은 다 똑같다. 풋풋하고, 설레고, 가슴 속 타오르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언가 꿈을 꾸고, 어딘지 모르게 달려야만 했고, 폭주하려 했던 그 젊음, 바로 그 젊음은 다 똑같다.
내 나이 올해로 49세. 가끔 흠칫흠칫 놀란다.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거울 속 비춰진 내 모습 또한 과거의 젊음을 찾기는 어렵다. 고로 나이로보나, 외모로보나 난 중년이다. 중년이기 때문에 회사에서의 위치, 직급, 사회적 상황 등 더 이상 난 철부지처럼 행동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나이먹은 만큼 나잇값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청년은 육체뿐 아니라 그 마음도 푸르기 때문에 청년이라 부른다. 하지만 난 마음이 푸르다면 누구나 다 청년이라 불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음은 육체만을 칭하지 않는다. 마음이 젊다면 누구나 다 청년이라 할 수 있다. 중년이라 할지라도, 마음이 젊다면 청년이다.광고쟁이 박웅현씨의 CF 카피처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고, 사고가 얼마나 젊느냐 하는 것이다. 난 청년으로 살고자 한다. 육체적 젊음은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것이며, 과거의 시간 또한 되돌릴 길 없다만, 그래도 마음이, 생각이, 사고의 틀이 젊다면 오래동안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게 맞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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