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꿈 꾸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30대에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가져보는 것. 그것은 진정 꿈이었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뜨거운 남태평양 작은 섬의 아름다운 한 해변가에서, 태어나 처음 맛보는 통렬한 자유를 맛보는 것에 비견되는 그런 아련한 꿈이었습니다. 책을 낸다는 것은 넓고 푸르른 창공을 맘껏 활공할 수 있는 날개를 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통해 인생이 바뀌어지길 바랬습니다. 제 꿈은 원대했습니다. 단지 한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왕 낼 책이라면 죽는 날까지 총 16권의 저서를 가져보겠다는, 웅대하지만 한편으로는 황망스러워 보이는 꿈이기도 했습니다.
꿈은 대부분의 경우 글자 그대로 '꿈'으로 그치고 맙니다. 왜일까요? 한마디로 구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이죠. 가장 화려하며 멋있어 보이는 결과만 상상하기 때문이고, 그를 뒷받침 하기위한 절대적 실천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 속 한구석에, 꿈은 그저 꿈일뿐, 실현되면 좋겠지만 안되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 하는 부정적, 소극적 마음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 시간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어려움, 고민, 번민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가 포함되어야 하며 그에 따른 상처가 상처 위에 아물고 다시 생기길 반복하며 마치 흉터처럼 남아야만 합니다. 마침내 그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 흉(凶)터는 길(吉)터, 혹은 영광의 잊을 수 없는 상처로 그 의미가 변하게 되지만 말이죠.
제가 30대에 꾼 꿈은 그저 밤에 꾼 꿈에 불과했습니다. 신기루처럼 머리 속을 뱅뱅 맴돌기만 했을 뿐, 그것이 몸을 움직이도록 만들진 못했으니까요. 사실 스스로를 독려하고 채찍질하기 위한 필연성과 절실함이 부족했습니다. 어쩌면 그저 그런 꿈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작은 만족감을 부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밤에 꾼 꿈은 낮이 되면 깨끗이 사라지거나 남더라도 제대로 된 형태조차 없는 아스라함으로만 남게 됩니다. 하지만 밤이 아닌, 그 꿈을 온전히 낮에 꿀 수 있다면 이야기는 확연히 달라지게 됩니다.
낮에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내 나이 마흔이 되어서부터 였습니다. 마흔의 조급함, 당황스러움 그리고 절절한 안타까움이 나의 온 마음과 몸을 한꺼번에 움직이도록 만들었죠. 아니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급박한 위기감이 나를 궁지로 몰아댔습니다. 꿈이 현실이 되어야만 했으며,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현실의 꿈으로 제조되고, 재생되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숨을 쉬며 이 땅에 온전히 발을 디딘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게 있어 책이란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스위치 혹은 다른 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년의 재수 끝에 어렵사리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이 될 수 있었고, 2년의 과정에 제 모든 시간과 땀을 바쳤습니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해서 쉽사리 책은 만들어 지지 않았습니다. 고민과 번민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주제도 바뀌었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써 놓은 글들이 제법 쌓이고, 어렵사리 출간 기획안을 만들어 여러 출판사에 보내 보았지만, 피드백 한줄 받지 못했습니다. 좌절감과 수치심 그리고 내가 이것 밖에 되지 않나 하는 자괴감에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왜 포기할 수 없을까? 답은 하나였습니다. 어렵게 걸어온 길, 절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등을 돌린다는 것은 내 인생을 더 이상,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손에 맡긴다는 것과도 같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형, 포기하지 말고 될 때까지 뿌려요."
그래서 쉬지 않고 읽고 써야만 했습니다. 내가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일, 마흔이 넘어 찾게 된 유일한 장점이 바로 이것 밖에 없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거의 매일 아침, A4 1장의 분량을 채웠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장수를 늘려갔고, 마침내 1년 만에 <소심야구>의 초고를 끝낼 수 있었죠. 하지만 여전히 출판사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어렵사리 연구원 선배를 통해 편집장 한 분을 소개받았고, 그 분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신파조'의 평범한 스토리라 하더군요. 충격... 먹진 않았습니다. 마음을 단디 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소심야구>는 묻혀지나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기회는 우연하게 찾아오더군요. 1년 뒤인 2012년 여름, 전자북 출판사를 시작하신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제 원고를 읽고는 전자북 출간 제안을 하시더군요. 그렇게 2012년 11월 <소심야구>는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다음 책쓰기에 착수했습니다. 개인 경제에 관련된 글을 회사내 게시판에 연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글들을 모아 정리, 보완하기 시작했습니다. 5월경 초고를 끝내고, 출판사 컨택을 시작했습니다. 역시나 반응이 없더군요. 그때 연구원 후배 하나가 제게 정신이 바짝 들만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형, 포기하지 말고 될 때까지 뿌려요. 반드시 형과 궁합이 맞는 출판사가 있을테니까요."
아뿔싸. 그 동안 제 실수는 대형 출판사 혹은 이름이 알려진 출판사에만 원고를 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심기일전 원고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보내기 시작한 지 고작(?) 일주일 만에 2곳(나중에 2곳에서 더 연락받았습니다)에서 답변이 왔습니다. 관심이 있다고요. 그 중 한군데와 계약하고 2013년 8월에 제 두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종이책인 <불황을 이기는 월급의 경제학>을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냈을 때 대부분 회사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책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용케도 해냈다는 의미였죠. 한편으로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습니다. 분명 일보다 책 쓰는데 더 시간을 쏟은 것 아니냐는 의심반 질타반의 눈빛이 나를 흘겨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습니다. 나는 낮의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실현한 것이니까요. 그에 대해 구구절절히 설명을 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책이 나오기까지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 설명한다면, 그것은 유치한 자랑 비슷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그런 사소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저 이렇게만 얘기했죠. ‘그저 사내게시판에 조금씩 글을 올렸었고, 계속 쓰다보니 책으로 만들어졌다’고.
현재 제게는 한 권의 전자북과 한 권의 종이책이 쥐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낮에 꾼 꿈의 결과물입니다. 고작 2권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내 40대 중반까지, 약 5년의 시간이 녹아져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고민의 파편들과 시행착오들, 그리고 포기와 실망의 파노라마 같은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저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처럼 대학을 들어갔고 졸업하여 운 좋게 취직한 후 용케도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평범한 중년 직장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낮에 꾸는 꿈이었습니다. 책을 쓰기 위해 매일 글을 쓰다시피 했고, 그 글을 쓰기 위해 더 많은 시간들을 고민했습니다. 책은 저절로 쓰여지지 않습니다. 단편적 생각을 담은 글들은 약간의 시간과 고민을 투자하면 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은 다릅니다. 수많은 생각과 시간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글들이 한가지 주제를 관통할 수 있어야만 책으로 엮어질 수 있습니다. 제 손에 쥔 2권의 책은 지난 5년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진 간절함과 몸부림의 결과물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우리는 꿈꾸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불가능한 꿈을 꿀수록, 매일 그 불가능을 믿는 훈련을 통해 우리의 정신 근육은 단련된다. 불가능한 일을 믿을 수 없다고?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가 만들어낸 위대한 일 가운데 어느 하나도 한때 불가능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누군가가 꿈을 꾸고 목표를 정하는 순간 그것은 현실의 세계로 이끌려 왔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자. 매일 꿈꾸는 연습을 하자. 아침밥을 먹기 전 불가능한 일 하나씩을 믿어보자. 그때 우리는 염소에서 호랑이로 전환하게 된다. --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구본형 지음, 중에서 --
저는 계속 낮에 꿈을 꿀 것입니다. 책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어갈 것이며, 제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 3권, 4권 차례대로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16권의 저서를, 과연 죽을 때까지 다 쓸 수 있을 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는 한,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고민을 계속할 수 있는 한, 힘이 다하지 않는 한 나는 매일 조금씩 글을 쓸 것이며 그것들이 책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선 보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책에 의해 나의 삶도 조금씩 변화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이어갈지 모르지만 50대, 60대의 삶은 지금보다 더 풍요롭고 풍부한 삶을 누릴 것이며 나의 사고(思考) 또한 더욱 깊어지리라 믿습니다. 내 삶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만들어 갑니다. 긴 호흡과 오랜 시간이 투자되어야 하는 책을 썼듯, 나의 삶 또한 내가 목차를 짜고, 그 안의 튼실한 내용들을 담아 한 권의 책처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책을 쓰기위해 삶을 사는 것처럼, 나중에는 책이 곧 나의 삶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난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여름에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에도, 쉬지않고 쓰고 또 쓸 것입니다. 책이 곧 내 삶이 되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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