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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Jun 30. 2015

자본주의 시대에 잘 산다는 것

#3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는 밥을 먹어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하며 잠을 잘 공간을 확보해야만 합니다. 또한 사회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은 물론이고, 때로는 자신과 가족들이 좋아하는 기호품, 사치품까지 가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돈을 필요로 하죠. 이것이 자본주의 시대의 논리이자 숙명이라 할 것입니다.

     


'잘 산다는 것'이란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대개 ‘돈 잘 버는 사람’을 ‘잘 사는 사람’이라 말합니다. 즉 ‘돈 잘 버는 것’과 ‘잘 사는 것’은 거의 같은 의미라 생각하는거죠. 그렇다면 과연 ‘잘 산다’라는 것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까요? 사실 ‘잘 산다’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주관적, 상대적이자 관념적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일정한 기준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비교가 가능한 것을 기준으로 하여 ‘잘 산다’는 것을 가늠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돈을 포함한 소유한 것의 규모겠죠. 일단 돈의 규모를 가지고 생각해 볼까요?

     

사람들은 대개 돈 많은 사람인 부자를 꿈꿉니다. 자신에게 돈이 많다면 직장인으로써의 굴레를 던져 버리고, 평생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삶을 즐길 수 있으리라 믿죠. 즉 완전한 자유를 꿈꾸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져야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20~30억 정도면 부자일까요? 저금리 시대이니 50억 정도는 있어야 할까요? 아니면 통 크게 세자리수는 되어야 부자인걸까요? 하지만 돈이 없더라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부자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죠. 또한 최근과 같은 구조조정의 시대에 명예퇴직 당하지 않고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다행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겐 현재 일 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니, 그들에게 부자란 현실과는 관련이 없는 사전 속 단어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겠죠.

     


'못 산다는 것'이란


위와 같이 볼 때 ‘잘 산다’는 개념을 돈의 규모만 가지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번에는 반대 개념인 ‘못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죠. ‘못 산다’하면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일단 드라마 속에서 본 가난이 먼저 그려지지 않나요? 먹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돈이 없어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그리고 제대로 된 집도 없어 좁디좁은 반지하 쪽방을 전전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나요? 소위 생활고(生活苦)로 인해 고통받거나 힘겨워하는 모습이 바로 ‘못 산다’는 첫 번째 이미지로 떠오를 겁니다.

     

두 번째로 생각나는 것은 무엇인가요? 직장도 있고, 차도 있고 경제적으로 크게 쪼들리진 않지만, 어느 순간 누군가와 특히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나아 보이는 누군가와 비교되었을 때 초라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그 순간 우리는 ‘잘 산다’보다는 ‘못 산다’란 생각이 먼저 떠오르게 될 겁니다. 이는 생활고의 차원이 아닌 그 보다 한단계 높은 비교의 차원에서의 ‘못 산다’는 문제가 됩니다. 즉 생활하는데 별 문제는 없지만, 상대적 비교에서 느껴지는 박탈감은 계속 머릿 속에 남게 되는거죠. 정리하자면, ‘못 산다’는 것은 생활고로 인한 진짜 가난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로 크고 작은 문제가 없을 지라도 상대적 비교에 의해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잘 산다'는 개념에 대한 두가지 측면 


자, 처음으로 돌아와 ‘잘 산다’는 개념에 대해 두가지 측면에서 정리해보록 하죠. 그 첫 번째는 최소한의 경제적 기준의 측면입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잘 산다’는 개념은 소유의 규모 혹은 돈의 보유액수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지만, ‘못 산다’는 개념에서 본 것처럼 최소한 생활고로 인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부등식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못 산다  <  최소한의 경제적 기준


부등식에서 보는 것처럼 최소한의 경제적 기준을 충족한다는 것은 ‘못 산다’란 영역을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잘 산다’는 개념의 영역까지 도달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활고가 해결되었다 해서 ‘잘 산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죠. 오히려 ‘잘 산다’란 표현보다는 ‘못 살지 않는다’란 표현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즉 ‘잘 산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가난에서 벗어난 것은 명백하며, 한두 가지 혹은 몇가지 조건의 추가 충족여부에 따라 ‘잘 산다’는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볼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 상대적 비교의 측면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합니다. 비교에 의해 상대보다 낫거나 많거나 좋다면 기뻐하죠. 하지만 반대로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의 처지에 대해 슬퍼하거나 분개합니다. 상대에 비해 자신이 ‘못 산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못 산다  <  최소한의 경제적 기준  <  [못 산다 ≦  잘 산다](잘 사는 영역)/상대적 기준


위의 부등식을 살펴보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더 이상 생활고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잘 산다’라고 주장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못 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했습니다. ‘못 살지 않는다’는 것은 ‘못 산다’는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즉 평균과 그 이상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일반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과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만 가지고 있다면, 이는 못 사는 것이 아니라 평균 이상이란 이야기며, 여기서부터는 특정 기준이 아닌 상대적이며 심리적인 기준에 의해 ‘잘 산다’와 ‘못 산다’가 나누어지게 된다는겁니다. 즉, 가장 기초적인 경제적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못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잘 사는’ 영역에 살고 있다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상대적 비교에 의한 심리적인 부분만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면 저를 포함한 여러분은 충분히 ‘잘 살고’ 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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