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공유된 시간을 더 허락해 주세요
아버지.
아버지의 둘째 아들이자 막내로 살아온 지 벌써 48년의 시간이 지나갔네요. 시간 참 잘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토요일에 아버지도 그러셨지요, 인생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고요. 흔히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주마등(走馬燈)에 비유하곤 하지요. 달리는 말처럼 아버지와 저의 공유된 시간도 그렇게 빠르게 흘러갔나 봅니다.
2년 전부터 매주 화요일 변경연의 마음편지를 쓰기 시작한 이래 아버지는 저의 첫 번째 독자였습니다. 항상 화요일 아침이면 변화경영연구소 홈페이지에 들어가 제 글이 올라왔음을 그리고 조회수가 ‘0’임을 확인하고 좋아하셨지요. 그리고 자주 글에 대한 감상을 편지로 보내주기도 하셨고요. 하지만 결론은 항상 같았습니다. 기승전 무리하지 말고 건강 잘 챙기거라... 그 염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지난 추억을 돌이켜보면 가장 먼저 2가지 일이 떠올려집니다.
하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당시 11세)의 에피소드입니다. 가끔 근처의 치악산(1,288m)을 홀로 오르시던 아버지(당시 46세)가 한번은 저를 데리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처음으로 치악산을 오른 경험인 듯 싶은데요, 그때가 한 겨울이었다는 것, 기억하시죠? 사실 치악산은 중간의 ‘악(岳, 큰 산)’자가 말해주듯 산세가 거친 산이죠. 특히나 정상까지의 마지막 몇 백미터는 거의 45도 이상의 경사가 계속 이어져 있어 꽤나 오르기 힘든 코스로 알려져 있죠. 물론 당시에는 요즘과 같은 안전시설도 없었고요.
그렇게 11살 소년과 46세 중년의 부자는 겨울 치악산을 향했습니다. 당시 제가 그렇게 튼튼한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중년의 아버지보다 더 빠르고 재빨랐나 봅니다. 특히나 마지막 코스에서 아버지보다 더 빨리 정상에 도달했죠. 잘 아시겠지만 산 정상은 매우 춥습니다. 더군다나 강풍의 겨울 바람은 살을 에일 정도죠. 소년은 춥기도 하거니와 기다려도 오지 않는 아버지가 불안해졌습니다. 만약 여기서 아버지를 못 만나면 천애의 고아가 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닥쳤죠. 소년은 거꾸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내려가도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다시 올라왔습니다. 여기도 없었습니다. 두려움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울먹이며 다시 내려가던 중 극적으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리곤 엉엉 목 놓아 울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손발이 꽁꽁 언 채로 말이죠.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종종 술 드실 때마다 저를 보며, 혹은 친구분들에게 얘기하곤 했죠. 그토록 서럽게 울던 적이 없었다며...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으시죠?
두 번째 기억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허름하나마 처음으로 우리 집이란 이름을 붙여 보게 된 것이 바로 중2 때였습니다. 낡았지만 좋았습니다. 제 방까지 생겼으니까요. 이사한 지 얼마 안되어 아버지와 함께 자던 중이었습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몽롱했습니다. 누군가 저의 몸을 마구 흔들어 댔습니다. 뭐라 소리치는 것 같은데 제대로 들리지도, 눈도 떠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간신히 힘을 내어 기고 또 기어 마루로 나왔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마루에 널브러진 채 차가운 새벽공기를 맞으며 조금씩 정신을 차렸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연탄가스 중독이었습니다. 부자가 함께 세상을 떠날뻔한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겼던 순간이었죠. 아버지, 기억나시죠?
아, 한가지가 더 떠오르네요. 어린 마음에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 넉넉하지 못했던 형편이었지만, 아버지는 약속을 하셨고 어느 주말 마침내 저를 데리고 그 곳에 갔죠. 저는 물 만난 고기였습니다. 하지만 벤치에 앉아 저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죠. 생전 처음보는 놀이 기구에 온몸과 마음까지 다 뺏긴 상태였으니까요. 그렇게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아버지는 돌아오자마자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급성맹장이었죠. 가만 생각하니 그때 아버지께 제대로 사과했는 지도 기억에 없네요. 아마 했겠죠?^^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사과드릴께요. 아버지, 미안해요 그리고 많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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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이제는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파왔습니다. 폐를 포함한 기관지의 약화로 원할한 호흡을 위해 산소공급을 받고 계신 아버지. 당신의 온 몸은 거의 뼈 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로 앙상했습니다. 바로 전에 입원해 있었던 대학병원의 의사는 치료에 관해서는 더 이상 자신이 할 것이 없노라 말했습니다. 그래서 옮긴 요양병원의 의사는 더 충격적인 말을 뱉어냈습니다. 한달 안에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그야말로 참담했습니다.
아버지.
필요한 물품이 있어 잠깐 어머니와 함께 원주집에 갔을 때,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집이 얼마나 황량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불과 한달 새인데도 마당 정원은 이미 황폐화되어 가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이토록 가슴을 시리게 하는 지... 아버지의 마음을 저 또한 자식을 키우며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데, 아버지의 몸은 점점 자식들의 곁을 시나브로 떠나고 계시네요.
솔직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얼른 쾌차하셔서 원래의 자리로 건강하게 돌아오시길 바라고 또 바라지만, 그것이 가능성없는 기적만을 바라고 있는 것인지...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진 않습니다. 아직은요. 아니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는 순간까지는요. 아버지. 조금만 더 힘을 내 주세요. 그래서 아버지와 저, 우리의 공유된 시간을 조금 더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부탁입니다. 저는 아직 아버지를 보내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니, 아직은 그럴 마음조차 없어요. 그러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저와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이것이 아버지께 드리는 제 마지막 소원이자 부탁입니다. 막내의 청이니 꼭 들어주실거라 믿어도 되겠죠? 그렇죠, 아버지...
2016. 12. 5일
막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