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가슴의 아름다움은 구조나 대칭이나 밀도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모던 록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이자 베스트셀러 <보통의 존재>의 작가이기도 한 이석원씨의 최근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는 저자 자신과 한 여자에 대한 연애담이 등장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42세의 남자 그리고 32세의 여자, 두 사람은 우연한 소개팅을 통해 만나게 됩니다. 남자는 이혼남, 여자는 이혼 소송 중. 조심스럽게 그리고 신중히 배려하는 모습에 서로의 마음이 끌리기 시작하고, 여자의 소송이 끝난 후 두 사람은 운명처럼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이후 만남에서 본격적인 연애를 기대하던 남자에게 여자는 먼저 연락하지 말 것, 자신의 시간이 될 때만 볼 것, 절대 좋아한다고 말하거나 보고 싶다는 등의 감정 표현을 하지 말 것, 자신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말 것 등의 몇가지 조건들을 제시합니다. 남자는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 없이 승낙합니다. 이미 그녀에게 흠뻑 빠져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가지게 된 두 번째 밤, 남자는 여자의 가슴을 보고 ‘예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여자는 유난히 쑥쓰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지속적인 만남을 가집니다. 하지만 남자는 섹스보다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더 많은 만남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는데, 그렇게 하는 순간 여자는 떠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죠.
시간이 흐르며 남자는 자신이 섹스 파트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에 강한 불만을 품게 됩니다. 그녀가 과연 자신을 좋아하는 지에 대한 의문까지도 생기게 되죠. 그리고 마침내 강력히 항변합니다. 더 이상 이런 만남은 지속할 수 없다고요. 그 이후 큰 사건이 하나 벌어지고, 그로 인해 여자는 어쩔 수 없이 남자를 떠나게 됩니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서 남자는 우연히 그녀의 핸드폰을 줍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고, 또한 그녀의 친구를 통해 그 계기가 바로 그녀의 가슴을 ‘예쁘다’고 한 말이었음을 듣게 됩니다. 그녀의 전 남편은 폭력이 심했고, 특히나 그녀의 작고 빈약한 가슴을 보며 악담을 퍼붓곤 했기 때문에 그녀는 가슴 콤플렉스가 생기고 말았는데, 남자가 그 가슴을 소중히 만지며 해 준 ‘예쁘다’는 말에 그녀의 마음이 완전히 녹아내렸던 겁니다.
누군가는 대한민국을 성형 공화국이라 말합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가 위치한 신사역 근처는 몇 년 전부터 성형외과村이 되어 버렸습니다. 낮에 신사역 근처를 지나다보면, 거의 가면에 가까운 마스크를 쓴 젊은 여성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원정 수술을 온 듯한 중국 여성들도 꽤 눈에 띄는 편이고요. 얼굴뿐 아니라 알게 모르게 가슴 수술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요, 얼마전 힙합여가수 제시는 방송에서 눈, 코뿐 아니라 가슴 성형도 했다고 자신있게 밝혀 주목을 끌었죠.
성형, 더 이상 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스스로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내가 필요에 의해 한다는데 그걸 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합니까? 당연히 그럴 권리도 없는 거지요. 가수 제시가 이렇게 말했다죠. 부러우면 너도 하면 되지 않냐고요. 뭔 말이 더 필요할까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란 유교사상론은 여기서 꺼내지 않겠습니다. 시대가 너무나도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자,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어떤 가슴이 이쁜 가슴일까요? 답하기 어렵죠?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조건 커서 쳐지는 가슴보다는 싸이즈는 약간 작은듯하나 탄탄하고 탁 올려 붙은 동그란 가슴’이 바로 이쁜 가슴이라고요. 동의하시나요? 또 다른 사람은 ‘그릇을 엎어 놓은 듯 반추형으로 한 손에 잡히지 않는 크기와 탄력을 자랑하는 가슴’이라고도 하고요. 이것도 동의하시나요? 솔직히 여자분들은 잘 모르겠는데, 아마 남자분들은 적극 동의하실 겁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여자들의 젖가슴을 놓고, 누구의 가슴이 더 예쁘고 누구의 가슴이 덜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의 아름다움에 대한 우열의 비교가 지금 이처럼 거대한 자본주의적 성형산업을 일으켜놓은 것일 테지만, 몸은 본래 그렇게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들은 누구나 다 한 쌍의 젖가슴을 키워내고 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젖가슴은 더욱 보편적이고 소중한 일상의 보물이며, 민족적 생명과 에너지의 근본인 것이다. (중략) 젖가슴은 구조나 대칭이나 질량이나 밀도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현상과 자연현상에 대한 인식 없이 우리는 젖가슴의 본질을 논할 수가 없다. (중략) 당신들의 젖가슴은 단지 젖가슴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 <라면을 끓이며>(김훈 지음) 중에서 --
젊음은 우리 몸을 생기있게 유지시켜 줍니다. 특히 완전 성인이 되기 전인 20대 중반까지의 우리 몸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꾸미지 않아도 이쁘고 보기 좋다 해야 할까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우리의 몸은 서서히 노화를 맞이하기 시작합니다. 가슴 또한 마찬가지죠. 특히 여자의 경우 결혼한 후 아이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 가슴이 빈약해지고 처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입니다.
아이를 키워낸 중년 여인의 가슴은 미의 기준으로 보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더 이상 탄탄하게 탁 올려 붙은 동그란 가슴이 아니며, 그릇을 엎어 놓은 듯한 반추형의 아름다운 모양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이쁜 가슴이 아닌걸까요?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처지고 탄력을 잃은 가슴이 더 아름답고 소중한 가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식들을 제대로 키워낸, 생명의 보고가 바로 이 가슴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훈 작가의 말대로 여자의 젖가슴은 단지 젖가슴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게다가 내 소중한 아이들을 키워낸 아내의 젖가슴이라면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젖가슴이라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아내의 젖가슴이 좋습니다. 오히려 연애시절, 신혼시절보다도 더 소중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김훈 작가의 이야기를 잘 곱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젊음은 시간의 법칙에 따라 무심히 흘러가버리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가치와 소중함은 시간과 함께 더 깊어지는 법이니까요.
*표지사진 출처 : http://www.todaysparent.com/baby/breastfeeding/15-cool-f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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