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먹는 닭이 질병 가득 품은(?) 닭이라고?
작년 11월중순부터 시작된 AI(조류독감, Avian Influenza)의 기세가 아직도 한반도를 휩쓸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다소 소강상태라고는 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시 그 태풍이 시작될지 모두 숨 죽이고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 기간동안 AI로 인한 피해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지경입니다. 발생 농가 334곳에서 살처분된 가금류의 숫자가 무려 3,271만 마리! 세부적으로는 닭이 2,730만 마리(전체 사육대비 17.6%)로 제일 많고, 오리가 245만 마리(28%), 메추리 등 기타 가금류가 296만 마리(19.7%)로, 대한민국 전체 사육수의 20%에 달할 정도로 피해규모가 엄청납니다. 이 수치는 옆나라 일본과 비교해보면 더 대단하다 할 수 있는데, 일본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살처분된 가금류가 고작(?) 114만 마리(게다가 일본은 닭 사육수가 한국의 2배라고 하네요)로 한국의 3.5%(일본의 28배)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이러한 수치를 들여다보면 한국과 일본의 AI 상황이 어떠한지, 그리고 어떻게 대응을 하고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겠습니다.
대체 문제가 뭘까요? 방역 시스템 자체적 문제 때문일까요? 혹은 방역 당국의 늦장 대응? 그게 아니라면 우리나라 양계농가 환경의 열악함 때문? 그마저도 아니라면 살처분으로 인한 피해 때문에 빨리 신고하지 않는 농장주의 윤리의식 때문인 걸까요? 아마도 한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지금의 피해가 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이런 표면적 이유 외에 우리 소비자들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해보죠.
혹시 ‘빨딱병’이란 병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나요? 이 병은 주로 가금류, 그 중에서도 닭에게서만 관찰된다고 하는데요, 여기에 걸린 닭은 일반 닭의 성장속도보다 무려 3배 가량이나 빠르게 성장함으로써 심장에 과부하는 물론, 스스로의 체중을 이기지 못해 쓰러진다고 합니다. 한번 쓰러지면 거의 대부분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요. 특이한 점은 이 병의 이름에서도 유추되듯이, 전세계 국가 중 거의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특이병이란 겁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왜 한국에서만 유독 그런걸까요?
지난 2014년말, 전주 MBC에서 기획 다큐로 <육식의 반란 – 팝콘 치킨의 고백>을 방송했는데요, 이 다큐는 빨딱병이 왜 한국에서만 발견되는지에 대한 이유뿐 아니라, 한국 닭고기 산업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 문제 중 먼저 한국 닭의 크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죠. 외국인의 시각으로 보면 한국 치킨은 ‘팝콘 치킨’이라 불릴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가 외국의 치킨과 비교할 때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기 때문이라 합니다. 미국 닭은 2.5Kg, 일본 닭은 2.8Kg의 무게로 유통되는데 반해, 한국 닭은 고작 1.5Kg 밖에 되지 않죠.
대형마트 닭고기 코너에서 팔고 있는 봉지로 포장된 닭의 중량 또한 대부분 800g 혹은 500g으로 채 1Kg도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닭의 크기가 작다는 겁니다. 이뿐 만이 아닙니다. 집에서 종종 주문해 먹는 치킨의 양을 한번 생각해 보시죠. 1마리를 주문해 먹을 때, 예전보다 양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반면에 가격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고요. 이상하죠? 마치 제과업체의 과자 중량은 줄고 있는데 반해, 가격만큼은 계속해서 올라가는 것과 유사하지 않나요? 아, 양도 늘고 있긴 하네요. 넉넉한(?) 질소가스와 각종 포장의 양 만큼은 말이죠.
그렇다면 왜 한국의 닭은 이리 작을 수 밖에 없을까요?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제대로 된 성인 닭이 되기 전에 일찍 도계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외국 닭은 약 3개월 정도를 키운 후 시장으로 보내는데 반해, 한국은 그 1/3밖에 되지 않는 30일만에 도계를 하게 됩니다. 뭐랄까요, 그 기간이라면 아직 제대로 된 닭이 되었다 보기 어렵죠. 한마디로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어린 닭이기 때문에 닭의 크기가 작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둘째,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죠. 영계(?)가 맛있다는. 정말 그럴까요?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이 말은 전혀 근거없을 뿐 아니라 아예 틀린 말이라고 합니다. 닭고기가 보다 맛있어 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성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체조직 내 단백질등이 체화됨으로써 닭고기 특유의 풍미를 낼 수 있다고 하죠. 하지만 어린 닭은 그런 풍미자체가 생길 틈이 없기 때문에 맛이 없는 겁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아직 영계(?)가 맛있을 것이라는 틀린 속설이 존재하며, 이 때문에 어린 닭이 유통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죠. 또한 닭 자체의 맛이 없기 때문에, 한국의 닭은 절반 이상을 튀기거나 양념을 입히는 형태로 판매되고 있는 겁니다.
세 번째로는 양계농가의 사육환경 때문이기도 한데요, 어쩌면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 볼 수 있을 겁니다. 최근 한국 양계농가의 대부분은 닭을 무창계사(無窓鷄舍)에서 키우고 있는데, 무창계사란 창문이 없는 폐쇄형 계사로 내부의 온도, 환기, 점등 등 여러 가지 환경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 고밀도 사육에 유리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양계농가는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협소한 공간에 최대한의 닭을 몰아넣은 후 키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밀집, 밀실사육되는 닭들은 당연히 여러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런 환경에서 한달을 넘길 경우, 빨딱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걸릴 가능성은 더 커진다고 하죠. 그래서 농장주인들은 닭이 작더라도 30일 만에 서둘러 시장으로 유통시키는 겁니다. 한마디로 각종 질병에 걸리기 전에 빨리 도계시키는 것이죠. 웬지 화나지 않나요? 우리가 먹는 닭이 건강한 닭이 아닌, 질병(아직 발병 전이라 해도)을 가득 품은(?) 닭이라니요...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조류독감. 어째 해가 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생각 들지 않나요? 올 겨울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고요. 물론 정부 방역시스템의 문제뿐 아니라 조기 대응 실패에 따른 문제점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처럼 한국 양계농가의 사육환경에 대한 문제점이 더 크다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양계 농장주들이 이런 환경을 개선하면 조류독감이 줄어들 수 있을까요? 물론 어느 정도는 그렇겠죠. 하지만 여기엔 또 다른 문제점이 있습니다. 하림, 마니커, 체리부로와 같은 육계 대기업들이 이들 대부분의 양계 농가들을 다 계약농가로 수직계열화시킴으로써 자신들의 마음대로 부리고 있기 때문이죠.
다음 편에서는 이런 육계 대기업과 농가 간에 얽혀 있는 먹이사슬 구조와 그에 따른 횡포,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문제점들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hollyexley.blogspot.kr/2011/06/chicken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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