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들이 저축보다 소비를 해야만 경기가 살아난다고요?
경제학에 등장하는 용어 중에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2 더하기 2는 4. 맞죠? 하지만 그 답이 2나 3으로 나온다면 이를 ‘합성의 오류’라 부를 수 있습니다. 즉, 각각의 것을 더하거나 합쳤을 때, 객관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수치나 능력이 나오지 않는 것을 말하죠. 이의 반대는 시너지(Synergy)라 할 수 있습니다. 예상되는 수치나 능력이 더 나오는 경우인거죠. 4가 아닌 5나 6이 나오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이 합성의 오류에 대해 ‘각각의 올바른 행위가 전체적으로 모았을 때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라 말했죠.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전세계 최고의 축구클럽은 어디일까요? 아마도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 혹은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퍼거슨 감독 이후 격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일 겁니다. 일단 MSN(메시, 수아레즈, 네이마르)의 삼각편대가 활약하고 있는 바르셀로나라고 해보죠. 이 팀과 대항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가장 축구 잘하는 사람들만 뽑아 올스타 월드팀을 구성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월드팀은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이런 현상을 바로 ‘합성의 오류’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죠. 아무리 아름다운 미인이라 할지라도 신체의 모든 부위가 완벽하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누구의 눈, 누구의 코, 누구의 입 등 이런 식으로 아름다움의 순위를 매기곤 하죠. 자,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미인들의 부위들만 빼내어 한 여자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 그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 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지요? 그렇다면 아래의 사진을 보고 판단해보시죠. 어떤가요? 과연 전 세계 최고의 미인이라 할 수 있나요?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이 또한 ‘합성의 오류’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경제학에서 이 합성의 오류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는 ‘저축의 패러독스’가 있는데요, 먼저 <자본주의 4.0>의 저자 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의 이야기를 들어보죠.
근검 ․ 절약의 역설은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대 사이의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가장 중요한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일 것이다. 한 가정이 저축액을 늘리면 돈은 금융시스템으로 유입되었다가 투자처로 이동하여 개인과 사회의 부를 증가시킨다. 그러나 수백만의 가정이 동시에 저축을 늘리면 이들의 결정 때문에 투자 총량이 줄어들 수 있고, 그 결과 경제성장도 줄어든다. 따라서 저축이 늘어나면 나중에 투자가 줄어들 수 있고 사회전체의 부도 줄어들 수 있다.
한 직장인이 월급을 받아 대부분을 은행에 저축한다고 가정해보죠. 은행에서는 이 돈을 받아 투자를 원하는 기업에 대출의 형식으로 빌려주게 됩니다. 개인은 저축의 댓가로 이자를 받고, 은행은 이자를 주는 대신 기업에게서 더 많은 대출이자를 챙김으로써 그 차익을 얻게 되죠. 그리고 기업은 대출받은 금액을 투자하여 사업을 확대, 번성시킴으로써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게 됩니다. 이러한 순환 시스템으로 보았을 때 개인의 저축은 본인뿐 아니라 은행, 기업까지 모두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조금 바뀌어 불황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때 수많은 직장인들이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너도나도 소비는 하지 않은 채 저축만 하게 된다면 경제는 위와는 반대로 침체의 길로 빠지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저축액이 늘어남으로써 은행에 자금여력은 많아지겠지만, 소비가 줄어들게 됨으로써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될 수 밖에 없죠. 그렇게 되면 투자는 물론 향후 구조조정까지 허리띠를 졸라 매게 됨으로써 경제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듯 개인이 소비를 하지 않고 저축만 하게 됨으로써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저축의 패러독스’라 하는데요, 영국의 고전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1931년 “당신이 5실링을 저축하는 건 누군가의 하루 일거리를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로 ‘저축의 패러독스’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흔히 정부를 포함한 언론에서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비가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축의 패러독스와도 동일한 맥락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데요, 어떤가요, 여러분도 이 의견에 동의하시나요?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의 통화정책도 중요하겠지만, 개인들이 무분별한(?) 저축보다는 적극적인 소비를 해야만 경기가 살아날 것이란 주장이 타당하다고 보시나요?
일부는 맞다고 봅니다. 소비가 줄어든다면 기업 또한 타격을 받을테니까요.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저축이 늘어난다고 해서 경기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일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단면적 생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3가지 통계를 통해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먼저 아래의 그래프를 보시죠.
* 개인순저축률 = (개인순저축 ÷ (개인순조정처분가능소득 + 연금기금의 가계순지분 증감)) × 100
위의 그래프는 1953년부터 2015년까지 대한민국 개인의 순저축률 추이인데요, 흐름을 간단히 살펴보죠. 1953년 대한민국의 (순)저축률은 4.6% 였습니다. 1960년대 초반 마이너스로 떨어지긴 했지만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며 저축률 또한 10%를 넘는, 그리고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무려 20%를 넘는 고공행진을 보여줍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로 봐도 이 당시는 거의 10%에 육박하는 경제성장률을 보여주던 시기라 할 수 있는데요, 국민들의 높은 저축성향이 기업들의 투자로 이어지고, 그 투자가 다시 큰 성과를 가져오던 선순환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저축률은 조금씩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다만 1998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다시 반짝 20%를 넘기게 되죠. 이는 당시 IMF의 강요에 따라 은행들이 20%를 넘는 고금리 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극복하며 은행금리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그에 맞춰, 아니 그 보다 더 빨리 저축률은 하강곡선을 그리며 마침내 2002년에는 1%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3~7%대의 꾸준한 저축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위 그래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한가지 사실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97년까지 무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한민국의 저축률은 평균 두자리수 이상을 기록했으며, 이와 더불어 높은 경제성장 또한 병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개인들이 저축한 많은 금액이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에 공급되었으며, 기업들은 이를 기반으로 투자에 성공함으로써 높은 성과를 냈다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볼까요? 만약 당시 개인들의 저축률이 높지 않았다면, 두자리수에 육박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보긴 힘들겠죠? 이는 케인즈가 주장한 ‘저축의 패러독스’와는 상반되는 하나의 증거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두 번째 예를 살펴보죠. 이번에는 대한민국 저축률을 외국의 저축률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단위 : %
무려 20년이 넘게 제로금리(심지어 작년부터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한)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을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들의 저축률이 꽤 높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나 스웨덴은 2008년부터 계속해서 두자리수 저축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독일, 호주, 프랑스 또한 10%에 육박하는 저축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또한 금융위기 전보다 저축률이 더 올라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저축률과 경기가 무관함을 보여주는 2번째 예시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들여다보죠.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개인 순저축률과 1인당 실질 민간소비지출액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1991년부터 우리나라의 민간소비 지출액은 보시는 바와 같이 IMF 외환위기였던 1998년을 제외하고는 줄기차게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2001년에서 2002년에는 인터넷 등 IT 벤처 붐에 힘입어 큰 폭의 증가세를 보여주었죠. 이러한 증가세는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의 1인단 소비지출은 계속해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하겠습니다.
반대로 저축률은 심한 변동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4년까지 20%대를 기록했던 저축률은 IMF 금융위기를 겪으며 반짝한 후 2002년의 1%대까지 급격하게 하락했죠. 하지만 그후 2005년까지 7%를 넘는 상승세를 보였다가, 다시 3%대로 서서히 하강한 후 2012년까지는 3~4%대를 유지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조금씩 증가하기 시작하여 2015년에는 7%대까지 올라가 있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저축의 패러독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소비와 저축률이 상반된 관계라 한다면 위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저축률이 증가한 2002년~2005년과 2013년~2015년에는 소비지출이 줄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소비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반드시 저축률이 경기를 좋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1970~1990년대 사례처럼 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자, 정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저축의 패러독스는 일부 맞는 부분도 있지만, 전적으로 옳은 주장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어찌보면 언론에서 저축의 패러독스를 빗대어 소비를 강조하는 이유는, 현재의 극심한 불황을 개인들의 책임으로 전가함과 동시에 경기부양을 위해 개인들의 얇디얇은 주머니를 탈탈 털어라 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죠. 오히려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저축률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것은 과연 국민들이 쓸 것 다 쓰고 여유가 있어서 일까요? 현재의 생활이 힘들고 팍팍할 뿐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는 더 어려울 것 같기에 한푼이라도 아껴 저축하려는 것 아닐까요? 만약 저축 대신 그 돈을 다 아낌없이 소비했다고 치죠. 그렇다면 그 후에 닥쳐올 각종 곤궁함은 과연 누가 책임져 줄까요? 정부가 그럴 수 있을까요? 기업이 감당해 줄 수 있을까요?
이런 불황기일수록 개인들은 ‘저축의 패러다임’에 대한 걱정은 고이 접어두고 적극적으로 저축을 통해 미래를 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국가에서 다양한 정책을 통해 불경기를 빨리 극복함으로써 모든 국민들이 경제적인 걱정없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럴 고민조차 할 필요도 없겠지만, 지금까지 보아 온 정부의 행태로 봐서는 국민의 안위까지 챙길 정도로 능력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개인 스스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자립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유일한 방법이 바로 ‘저축’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저축을 통해 개인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이 글은 핀테크기업 '레이니스트'의 온라인 매거진 <뱅크샐러드>에 수록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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