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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Apr 20. 2017

아름다움이란 결국,
자신을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12, <금빛 기쁨의 기억>, 한국인의 미의식에 대한 고찰


<금빛 기쁨의 기억>

한국인의 미의식


강영희 지음/일빛






1. '저자에 대하여'



● 강영희


그녀는 대한민국 1% 미만의 수재들이나 갈 수 있다는 서울대 출신이다. 한마디로 똑똑하다는 이야기다. 그 서울대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했다. 여성들이 거의 선호하지 않는 학과다. 독특하다. 그리고 덧붙여 국문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동양역사와 한국어? 언어를 통한 역사연구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그 후 다시 동국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영화학을 전공하였다. 전혀 엉뚱한 경로다. 동양역사, 한국어 그리고 영화. 그렇다면 이 세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할 때 그것은 문화다. 문화야말로 역사와 언어 그리고 영화를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 개념의 영역이다. 그녀 또한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그녀는 문화평론가가 되었다. 비록 처음은 연극평론부터 시작하였지만, 종국에는 문화평론으로 영역을 넓혀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관심은 문화다. 그것도 서양의 문화가 아닌 동양의 문화, 그 중에서도 콕 집어 한국의 문화, 우리의 문화다.


그렇다면 그녀가 생각하는 문화란 어떤 것일까? 그녀가 생각하는 문화는 그리 간단치 않다. 우리가 평소 쉽게 생각하는 문화가 아니다. 특히 한국인 고유의 문화란 우리가 반드시 되찾아야만 하고, 새로이 정립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역설한다. 조금 길긴 하지만 월간문화예술에 실렸던 그녀의 글 “공간인식 되찾는 것이 우리 문화의 정신 되살려 내는 것”을 같이 한번 읽어 보자.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한 여행길에 대전에 들른 적이 있다. 역앞 광장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곳의 강렬한 인상이 오랫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설렁탕에 딸려 나온, 고춧가루를 잔뜩 뿌린 굵다란 깍두기와 어딘가 비슷한, 엄청나게 큰 빨간 글씨의 초(超)대형 간판들이었다. 그렇게 커다랗고 빨간 글씨로 쓰인 간판은 그때껏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낯설고 불편한 느낌으로 남은 빨간 초대형 간판의 기억은, 팔십년대 초반 새로 개발되어 북적이는 강남의 먹자골목을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이번에는 낯익은 불쾌함으로 되살아났다. 돌아보니 ‘군화발 장단과 새마을 노래의 곡조에 맞춰’ 조국 근대화에 몰두하던 칠십년대의 내면풍경이, ‘칼라티비의 영상과 디스코 장단에 맞춰’ 선진조국을 구가하던 팔십년대의 내면풍경과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얼마전 휑하니 넓혀진 동네 길가에 새로 들어선 가게들에 내걸린 예의 빨간 대형간판과 맞닥뜨린 나는, 이번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불쾌감 대신 수치심 비슷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역전의 뜨내기 음식점이나 흥청거리는 신흥 번화가의 먹자골목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의 전통적인 주택가임을 염두에 둔다면, 이제 그것은 다른 누구의 탓으로도 돌릴 수 없는, 우리들 마음 속의 굳은살로 자리잡은 것일런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문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여유로운 자기중심 되찾기 위한열쇠


누군가 반문할런지 모른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뭘 그러느냐고. 그렇다면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바로 그 먹고 살아야겠다는 말이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안중에 없어도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뒤집으면 결국 ‘자신에 대한 반성’이 되기도 할텐데 말이다.


인간의 삶은 시간이라는 길다란 좌표와 공간이라는 넓다란 좌표가 4차원적으로 겹쳐지면서 굴러간다. 시간의 화살 위에 올라탄 인간이 잡담 제하고 일직선적 목표의식에 몰두한 채 앞만 보고 나간다면, 공간의 치마폭에 싸인 인간은 반성적 성찰의 시선으로 이모저모 주변을 둘러본다. 앞의 것이 개체적인 경쟁을 지향한다면, 뒤의 것은 공동체적인 상생(相生)으로 귀결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사회의 생명 에너지란 것을 가정한다면 그것은 언제부턴가 시간 좌표쪽에 지나치게 강박된 반면 공간 좌표쪽에는 반대로 그만큼 무감각해졌다. 앞서 말한 바, 자신에 대한 반성이자 타인에 대한 배려가 놀랄 만큼 결여되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빨간 초대형 간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것이야말로 이같은 사실을 입증한다.


하지만 인간의 행복한 삶에 있어 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상 시간에 대한 인식보다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다. 따지고보면 시간이란 추상적인 것이며 설사 시간의 흐름을 순간적으로 거머쥔다 해도 그것은 연속해서 변태(變態)를 거듭하는 거푸집의 자취로만 남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넘쳐나는 생생한 실체로서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능성은 바로 공간이라는 언덕에 기대서 전개되는 것이다. ‘사람이란 공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얼핏 평범해 뵈는 말이, 어쩌면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 자신의 문화(文化), 즉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여유로운 자기중심을 되찾기 위한 열쇠가 되리라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 여기 있다.


자연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는 전통적인 공간인식


서구열강의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시작된 19세기 이래, 서양의 근대(近代)를 따라잡기 위한 안간힘으로 시작된 시간 편향은 갖가지 조급증과 강박관념을 낳으며 우리를 불행한 자기부정의 늪으로 밀어넣었다. ‘하면 된다’, ‘속전속결’, ‘남부럽지 않게’ ‘새벽종이 울렸네’와 같은 말들에 등떠밀리면서 저들(서구)의 피안(彼岸)을 넘겨다보는 시간축의 경쟁에 비끌어매인 결과,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에 뿌리내린 풍요로운 공간감각을 우리 자신으로부터 거세해버리는 비극을 경험해야 했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것은 뭘까.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기실은 주변의 집과 거리뿐 아니라 초목이나 산천과 같은 자연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는 전통적인 공간인식이다. 그것은 김정희의 ‘대동여지도’로 대표되는 조선시대의 옛지도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는데, 구체적으로는 인간이 산천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자연을 산맥(山脈), 수맥(水脈)처럼 유기체적인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자연과 그 속에 사는 인간을 동종의 기(氣)를 주고받는 호혜적인 관계로 여기는 생각이다.


진정한 문화의 영혼이 깃드는 곳 필요


개인이 차지한 공간을 주변과 단절된 고립된 영역으로 파악하고 이에 따라 개인을 기계적으로 분리가능한 원자와 같은 무엇으로 파악하는 서구적인 공간인식이란, 본질적으로 사회, 자연과 같은 주변의 공간을 자신과는 무관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본래적인 공간인식을 서구의 그것으로 바꿔치기 당한 것은 엄밀하게 말해 또다른 무엇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저 기존의 공간인식을 싹둑 잘라내버린 형국이랄 수 있다. 따라서 잃어버린 우리의 공간인식을 되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어느새 빈칸이 되어버린 공간인식의 부재 자체를 치유하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의 공간인식 상실은 언젠가부터 우리로 하여금 오래된 유적이나 오래된 집, 오래된 가구와 가재도구를 거추장스러워 하면서 주변에서 몰아내도록 부추겼다. 이같은 것들이야말로 공간과 시간이 만나서 이룩하는 진정한 문화(文化)의 영혼이 깃드는 곳인데도 말이다. 따라서 우리의 공간인식을 되찾는 것은 결국 우리 문화의 정신을 새롭게 되살려내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빨리 이 곳, 문화의 영혼을 박제해버린 문명(文明)의 상징인 건조한 시멘트의 숲을 벗어나야 한다. ‘빨리빨리’라고 쓰인 완장을 찬 시간(時間)이란 독재자에게 볼모로 잡힌 우리의 자화상이 어른거리는 곳, 새빨간 초대형 이정표들이 끔찍한 악몽속의 한 장면처럼 삐죽하게 고개를 내미는 그런 곳에서 말이다.



결국 우리가 최근 활용하고 있는 시간관리의 개념은 ‘빨리빨리’를 조장하는 서구의 것으로써 우리의 유전자와는 선천적으로 맞지 않는 이형적 성질의 것이라는 말이다. 직선적이며, 한면만을 강조하는 서구의 사상개념으로는 공간적이며, 자연과의 상생, 조화를 추구하는 한국의 고유 사상을 포용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그녀가 주장하는 문화는 서구의 직선적 사고와 한국의 공간적 사고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것으로써, 그것이야말로 바로 참된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잊고 살던 우리의 주변 공간들인 오래된 유적, 오래된 집, 가구, 가재도구와 같은 것들을 되찾음으로써 공간인식을 회복하는 것만이 결국 우리 문화의 정신을 새롭게 되살려 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결론을 그녀는 모신문사의 인터뷰에서 한마디로 정리하고 있다.


“마흔이 되고서야 나를 키운 8할이 내가 태어나 살았던 서울 북촌 기와집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이처럼 문화에 대한 생각을 재정의하고, 자신 안에 내재된 ‘내 안의 한국인’을 찾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프랑스의 마티스와 샤갈 미술관관에서 우연하게 찾아왔다. 그녀는 그 계기를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다.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선비정신의 세례라고는 받은 적이 없는 제가 푸른 기 도는 순백자나 탈속(脫俗)의 해학이 넘치는 ‘골코름한’ 철화백자 앞에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영혼이 말갛게 씻기는 상쾌함을 맛본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자신의 개인사를 하나하나씩 양파 껍질 벗기듯이 찾아 들어갔고 결국 기억의 한편에 고이 숨어숨어 있던 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태어난 ‘서울 북촌의 조선식 기와집’과 ‘외할머니’의 존재였다. 이 발견으로 인해 그녀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한국인들이 서구의 사상으로 인한 한국 고유 문화에 대한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음을 인식하고, 이 큰 병이자 장애물로부터 벗어나고자 서양사상부터 시작하여 동양 풍수, 음양오행 등 많은 연구를 해 오고 있다. 그리고 2004년 발간한 저작, <금빛 기쁨의 기억>은 그러한 노력에 대한 결과물이자, 병치료를 위한 진단치료서이기도 하다.


저자 강영희는 이 책 <금빛 기쁨의 기억>을 쓰기 전에 1994년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란 문화평론집을, 1998년에는 인터뷰집 <우리는 자유로에서 만났다>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올해 초 <여기 그대 곁에>란 시집을 출간했다.




2. 이 책을 읽고


이 책은


무엇보다도 궁궐의 청홍문을 배경으로 한 표지 디자인이 특이하다. 푸른 색 대문에 굳게 잠긴 문과 쉽게 열리지 않을 듯해 보이는 자물쇠. 작가는 이 사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잃어버린 기억의 회복은 일상과 취향의 변화가 문화와 예술의 변혁으로 이어지는 한 판의 반전으로 전개될 것이다. 일상과 취향의 변화가 출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마음 속의 빗장을 열어젖혀야 한다.”(227P)


자자 강영희는 먼저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을 회복해야만 함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 기억 속의 심상 속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 옛것에 대한 기억을 회복하여 변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연후에야 우리다움, 한국인 본연의 미의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급선무는 우리 스스로를 막고 있는 마음의 빗장 즉, 서구화, 근대화,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타의적으로 만들어진 마음의 빗장을 열어제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말하고자 모든 것을 표지의 배경사진인 굳게 닫힌 대문과 자물쇠로 함축하여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즉 사진의 청홍문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우리가 우리다움, 한국적 미의식을 찾아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할 일차적 관문인 것이라는 것이며, 그 관문을 넘어서야만이 우리 본래 고유의 잃어버린 미의식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야나기 무네요시


그는 누구인가. 그가 누구길래 저자는 책 속에서 무려 1부라는 많은 분량을 배분하여 논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한국의 예술에 어떠한 역할을 했길래 못마땅하여 그가 써 놓은 책들의 조목조목을 인용하며 반박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그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자.


야나기 무네요시(宗悅)는 1889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난 일본의 대표적인 민예연구가이자 미술평론가였다. 동경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종교철학을 연구하여 유럽 유학까지 마쳤지만, 미술에 더욱 관심이 많아 그 이후에는 예술방면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그는 한국의 일제 식민시기에 한국 도자기를 보고 그 매력에 빠지게 되어 한국예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또한 그 한국의 미의식에 대해 연구를 거듭하여 많은 저서를 발간하였다.


그는 한국예술품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건축을 위해 상징적 건물인 광화문의 철거가 논의되었을 때 일본 신문에 철거를 반대하는 논문을 싣는 등 적극적인 반대활동을 통해 결국 철거를 없었던 일로 되돌리는데 성공하기도 하였다. 또한 한국의 예술품들을 보존하기 위하여 직접 한국에 “조선민족미술관”이란 미술관을 건립한다. 그는 그 후에도 한국의 공예등의 수집에 열성을 기울이고, 이를 모아 한국과 일본에 전시하게 된다.


그는 1961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많은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아 그가 죽기 전인 1960년 1월에 ‘아사히신문사‘에서 제정한 “조일상(朝日賞)”을 수상하였으며, 그가 죽고 나서 20여년이 흐른 후 한국정부에서도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1984년 9월에 한국정부가 “보관문화훈장”을 하사하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야나기가 자신의 책을 통해 언급한 한국의 미의식이라는 것이 식민사관으로 무장된 일본인의 편협된 관점으로 해석한 옹졸하며 치졸하기까지 한 변형된 미의식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또한 그 말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의 책에서 해당문장을 인용하여 조목조목 따져들어가고 있다. 때로는 격분하기도 하며, 때로는 냉정하게 반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명백한 건 잘못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 잘못을 조선이 어려운 시기에 조금의 따스한 시선을 주었다고 해서 야나기란 일본 예술가, 아니 민예가를 칭송하고 떠받들어 그의 말이 무조건 다 옳은 말이며 잘한 행동이라고 보는 관점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을 한번 들어보자.


“우리는 그의 글 속에 들어 있는 경애의 태도에 귀를 기울일 뿐만 아니라 폄하의 태도에도 눈길을 주어야 한다. 식민지 조선에 대한 제국 일본의 근대적인 우월감을 배경으로 해서 조선 예술을 ‘잡기적인 민예’로 깍아 내린 폄하의 태도는 물론이요, 조선 예술을 일본 국학의 타고난 자연스러움을 실현한 ‘예술적인 명물’로 높여 올린 경애의 태도 모두 조선 예술의 참얼굴과는 무관하다. 도대체 남이 억지로 들이댄 잘못된 근거에 따라 나를 터무니없이 깍아내릴 까닭도 없으며 반대로 터무니없이 높여올릴 까닭도 없다. 이제는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착잡하게 덧칠된 지난 세기의 서글픈 자화상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124P)


그렇다면 무엇이 옳을까. 저자의 글을 잃다보면 흥분하게 되어 있다. 피가 끓는다. 한국의 예술을 말아먹은 대표적 케이스가 바로 야나기 무네요시로 생각된다. 그는 한국예술적 관점에서 보면 철천지 웬수다. 정말 나쁜 놈이다. 책을 읽던 중 나도 모르게 흥분하여 쓴 내용이 있다.


차칸양 왈, “가만 보니 야나기란 자식, 나쁘다 못해 교활한 놈이구만. 뒤에서 까는 것도 아니고 면전에서 갖은 비꼼을 다 보여주면서 깔껀 다 까는, 고단수 악질이구만. 근데, 왜왜왜, 훈장을 줬지? 그가 비꼬는 걸 모르고 표면적으로만 해석을 해서? 그리고 한국의 예술가들은 설마 지금도 그에 대해 칭찬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훈장 반환 운동은 안 벌이는가? 왜 그러고 있는거지? 응응응?”


이 책이 출간된 후 한국 예술계에서는 한국의 미의식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그와 더불어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한 인물에 대해 다시한번 조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과연 무엇이 옳은가. 그는 과연 저자 강영희가 말하는 것처럼 대단히 나쁜놈인가. 식민사관을 이용하여 한국 문화를 내리 깔아버린 교묘한 고단수의 일본악질인가.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겉만 본채 그에게 훈장을 줬다는 말인가.


먼저 무엇이 옳은지 알아보기 위해 야나기 무네요시가 광화문 철거반대 운동을 벌일 때 일본 신문에 올렸다는 사설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오오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웅대하여라,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너의 왕국의 강력한 섭정대원군(攝政大院君)이 불굴의 의지로써 왕궁을 지키고자 남쪽으로 명당자리에 너의 주춧돌을 굳게 다졌다. 여기에 조선이 있노라 자랑하듯이 으리으리한 여러 건축들이 전면 좌우에 이어지고, 광대한 수도의 대로를 직선으로 하여 한성을 지키는 숭례문과 멀리 호응하고, 북은 백악으로 둘리고 남은 남산에 맞서 황문(皇門)은 그 위엄 있는 위치를 태연히 차지하였다.” 

                                                        -- <사라지려하는 한 조선 건축을 위하여>중에서 --


이어서 야나기가 조선민족미술관을 건립하면서 했던 건립사를 한번 훑어보자.


“내가 이일을 서두르지 않으면 기회를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민족의 고유한 아름다움마저 마침내 과거의 것으로 묻혀버릴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미술관을 도쿄에서가 아니고 경성에 세우고자 한다. 특히 민족이나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조선의 작품은 영원히 조선 사람들 속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땅에서 태어나고 만들어진 것은 그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것들을 조선 가옥에 넣어두기 위해서나 수집의 편의를 위해서도 경성은 선택된 땅이라 생각된다. 북한산은 수도를 지킴과 동시에 그 예술을 영원히 자기 밑에 두고 지키고 싶어 할 것이다.”


야나기는 그 시대에 한국의 편을 들게 되면서 일본에서도 다소 배척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광화문 철거반대 운동을 한 이후로는 한동안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는 등 일본 내에서도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고 하니 일본 정부의 후원을 받으며 예술계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공예수집을 위한 자금마련을 위해 가수였던 아내의 공연 수익금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가 개인적인 사리사욕이나 단지 일본문화 고양만을 위한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한국문화의 수준을 폄하하거나 낮추려고 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어떤 주장이 좀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한국문예협동조합연합회 전무이사인 문옥배씨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 야나기의 사상을 옹호하고 있다. 즉 한부분만을 보고 그를 한국미를 곡해하는데 앞장선 일본인의 시각으로만 보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비애란 신의 마음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신은 위로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신의 마음은 슬퍼하는 자에게 이끌리는 것이다. 슬픔이 어찌하여 미를 낳는가. 또한 슬픔의 의미가 어찌하여 그렇게도 사람을 매혹시키는가. 그것은 신이 생각하고 있는 슬픔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힘이 있는 자는 자연에 산다. 그러나 슬퍼하는 자는 신에게 산다. 예술의 미가 비애의 미를 통해 선명해지는 것은 그것이 보이지 않는 신의 무한한 따뜻함으로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저 셸리의 유명한 시구(詩句)가 진실이라면 그것은 미의 극치인 것이다. ‘가장 슬픈 생각을 노래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시가(詩歌)다’라고 그는 말하지 않았든가.”


그는 이렇게 ‘비애의 미’가 미(美)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미임을 주장하면서 당시 조선의 미가 거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우리의 예술과 공예에 대한 최고의 찬사와 극치를 애써 강조하고자 이런 표현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을 놓고 과다한 이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서 억지 논리를 펴는 등의 오해가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우리의 예술을 폄하하여 깎아 내리려는 의도가 없는 순수한 그의 애정의 표현을 애써 부정할 필요가 있는가. 오직 우리는 그 사람이 가진 우리 공예에 대한 열성과 애정만을 기억하였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야나기에 대한 옹호론에 대해 좀 더 길게 언급한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쨌든 간에 야나기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그의 저서에 언급된 내용들은 옳바르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미에 대한 시각자체가 편협된 것도 사실이고,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자유로이 한국의 예술품을 보지 못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도자기나 공예품에서 매력을 발견하고 그 미를 찾기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내가 생각하는 결론은 이렇다. 이것은 관점의 차이다. <컬처 코드>의 저자 클로테르 라파이유가 본 것처럼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시각을 만들어 낸다. 한국인에게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시각이 있는 것이며, 일본인에게는 일본인만의 독특한 시각이 있는 것이다. 야나기 그가 아무리 한국을 수십번 왕래하며 보고 느끼고 하였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가 한국인만큼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을까. 이것은 문화 관점상의 차이다. 문화가 사람을 만든다. 거기에 더해 역사가 그 사람의 배경을 형성한다. 한국인은 한국인일 뿐이고, 일본인은 일본인일 뿐이다.


더 이상 야나기 무네요시란 사람자체에 대해 논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미 이 시대 사람도 아닐뿐더러 이 세상 사람도 아니다. 명백히 그의 관점은 잘못되었다. 그의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나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것 또한 시대착오적 오해일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그이고, 우리는 우리인 것이다. 더 이상 사람에 대해 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단지 저자 강영희의 말처럼 이제는, 기억상실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리의 한국미를 찾아 발전시켜 세계 속에서 빛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우리의 할 일이라 하겠다.



화려한 수식, 다양한 단어, 풍부한 감성


전체적인 문장을 보면 문화평론가 답게 화려하며, 풍부하고, 다양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마치 예술사의 문학적 표현이라고나 할까. 화려하다 못해 사치스럽기까지 비춰지는 문체의 향연이다. 그만큼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에는 다소의 장벽도 느껴진다. 즉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느껴지고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도록 만들어 주는 좋은 책이다.


또한 책을 읽으며 구본형선생님의 향기를 느꼈다. 한권의 낯선 책에서 낯익은 남자의 향기를 느꼈다? ^^; 글을 풀어가는 과정, 글의 문체가 일면 구본형표 글과 유사한 점이 보였다. 화려한 수식, 다양한 단어, 풍부한 감성 그러면서도 폐부를 정확히 찌르는 논조. 이것은 사부님의 책 속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형식들이다. 판이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문장이 좀 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독자들의 내용이해를 함에 있어서 다소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문장이 조금 길다는 것만 뺀다면 그리고 내용의 반복 경향만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면 전체적 글들이 매우 훌륭히 보인다.



재미있는 옥의 티


종사하는 분야가 그렇다 보니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옥에 티가 눈에 확 들어왔다. 저자는 책에서 세계의 발효음식을 언급하며 불가리아에서는 야쿠르트가 유명한 발효음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흐흐. 눈에 확 띠지 않는가. 야쿠르트는 요구르트(Yogurt)의 오기다. 똑똑한 문화 평론가도 용어를 잘못 쓰는 것을 보면 역시나 대단한 야쿠르트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여기서 참고로 야쿠르트에 대해 알아보고 넘어가자. 상식은 많이 알아도 비만에 걸리지 않는다.


야쿠르트(Yakult, 일본어:ヤクルト, Yakuruto) : 일본에서 발명한 유산균 발효유를 의미한다. 야쿠르트란 이름은 에스페란토의 요구르트를 뜻하는 “요구르트”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야후르토”에서 따온 이름이다. 정식 학명은 “요구르트(Yogurt)"가 맞으며 "야쿠르트(Yakult)"는 일본기업에서 유산균 발효유 상품에 붙인 상품명이자 회사명이기도 하다. 한국에도 야쿠르트를 생산하는 한국야쿠르트란 기업이 있으며, 이 회사외에 다른 기업에서 생산하는 유산균 발효유는 모두 ”요구르트“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마무리


“백의민족의 이미지는 풍요로운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취향을 빼앗은 대신, 척박한 강박의 틀거리를 덮어씌우는 이데올로기를 떠안겼다. 따라서 취향의 해방을 위해서는, 풍요로운 성찰을 토대로 한 진정한 저다움을 위해서는, 먼저 백의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표상과 결별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어느새 친근한 벗인양 우리 곁에 자리잡고 있는 백의민족의 표상을 향해 ‘백의민족이여 안녕, 그동안 겪어내야 했던 뼈아픈 이십 세기여 안녕, 이십 세기의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이데올로기여 안녕, 역사의 갈피 속으로 영원히 안녕!’이라는 단호한 고별사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223P)


국악을 사랑하는 것. 우리 것을 살리는 것. 결국 옛 것을 현대에 복원시킨다는 의미는 그 안에 들어있던 ‘우리다움’을 살려낸다는 것이다. 형(形)은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대로 세계적인 것을 받아들여 현대적으로 탈바꿈시킨 퓨전형식을 도입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象)은 우리 기억 속의 심상처럼 우리의 옛정신을 되돌릴 수 있는 구심점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형은 세계화의 입맛에 맛도록, 그러나 상은 우리의 정신을 그대로 보존시킬 수 있는 예술, 문화의 재창조, 재발견. 이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며, 우리가 가야할 방향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이 구본형선생님이 그의 저서 <코리아니티 경영>에서 힘주어 역설한 코리아니티가 될 것이다. 해묵은 민족성, 전통성이 아닌 현대적 차원의 재창조, 재정립만이 우리가 만들어갈 코리아니티인 것이다.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www.koreahouse.or.kr/ko/report/gallery/)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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