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였던 한 남자의 좌충우돌 인생 이야기
그의 첫 인상은 흡사 날이 잘 선 도끼 같았습니다. 게다가 체구는 얼마나 좋은 지 한 눈으로 쓱 봐도 운동 깨나 한 티가 났죠. 그뿐 아니라 목소리까지 쩌렁쩌하니 아마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분명 장수 한자리는 차지했을 겁니다. 그는 학창시절 자신을 '날라리'였다 말합니다. 그의 정의에 의하면 '날라리'란 본인한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만 놀기도 잘 놀고, 약간의 탈선과 비행도 할 줄 아는, 그러면서도 주변의 사랑까지 받는 그런 존재라고 하네요. 일반적 정의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현재 그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작년 10월말, 에코라이후 5기 상견례에서 였습니다. 그는 지원사유에 대해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모임이 있는 지도 몰랐고(!), 단지 장모님의 강력한 권유(강요?)로 급하게 지원하게 되었다고요. 웃음이 나왔습니다. 지원한 이유가 단지 장모님의 권유때문이라니. 알고보니 장모님은 책도 쓰시고, 강의도 자주 나가는 분이시라네요. 그렇다면 아마도 둘 중 하나였을 겁니다. 장모님의 힘이 아주 세거나, 아니면 그가 장모님을 엄청 따르든가.
얼마 전 오프수업을 통해 그가 살아 온 인생에 대해 자세히 들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기 소개서를 통해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육성으로 직접 들어 본 그의 삶의 궤적은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습니다. 절대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혹은 현재의 사회적 위치나 환경만으로 지레짐작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죠.
올초부터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유명 제약회사 법무팀에서 일했고요. 그는 로스쿨을 이수한 변호사이자 로펌에서 근무한 경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보좌관, 변호사, 로펌, 법무팀... 엘리트의 향기가 진하게 풍기죠? 하지만 그가 살아온 인생은 그 스스로 1막, 2막, 3막 등으로 표현하듯이 마치 다양한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합쳐 놓은 듯 했습니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꺼내 보겠습니다.
날라리 학창시절을 마칠 즈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살짝 고민도 했지만, 그의 마음 속엔 이미 진로가 정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군인이 되길 바랬습니다. 군인의 길이 자신과 가장 잘 맞을 뿐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써 사명감, 책임의식을 다할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직업관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학창시절 월요 아침조회가 시작할 즈음에 울려퍼지는 애국가를 따라 부르거나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할 때면 어찌나 가슴이 뜨거워지던지 조국을 수호하는 군인이 되는 것 만이 제게 주어진 천명이라 생각한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생각한 직업관은 오직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과 내 가족의 안전을 위해 국가방위에 최선을 다하는 멋진 군인으로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군인이 되기 위해 학업과 운동에 열중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 정예 장교를 육성하는 육군사관학교에 무사히 입교할 수 있었습니다. 멋진 군인이 되기 위한 1차 관문을 통과한 겁니다. 그러므로써 당연히 대한민국 육군장교로써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운명이 그를 군인의 삶에서 벗어나게 만든 걸까요? 3학년 때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동기생 6명과 나온 휴가, 동기 중 한 명이 취객과 시비가 붙었다가, 그 사실이 경찰에 신고되었고 결국 6명 모두 퇴교조치 되고 말았습니다. 멋진 군인의 삶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인생 1막이 끝나는 시점이었습니다.
퇴교 후 제일 먼저 군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예비장교의 신분에서 졸지에 부사관으로 강등, 3년 6개월간의 군 복무를 할 수 밖에 없었죠. 사회로 나온 26살의 그는, 그저 군 복무를 마친 고졸 출신의 백수일 뿐이었습니다. 막막했죠. 그는 먼저 자기 앞가림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고졸 출신이 할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처음 시작한 일은 모 제과회사의 창고업무였고, 이후 영업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해도해도 떨어지는 목표량은 끝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만 둔 후 영어 학습지 교사로 일을 바꿨습니다. 매일 새벽부터 뛴 결과 최단기간 팀장이 되었고, 전국 4등이란 실적까지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학으로 공부했고, 마침내 대학 졸업장을 품에 안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2막이 마감되었습니다.
이제는 대졸 학력으로 중소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공장관리 업무를 맡아 최선을 다해 일했고, 오래지 않아 오너 2세의 눈에 들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곳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중국 세관과의 문제가 터지며 졸지에 회사는 풍지박산, 자신까지 중국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망자의 신분으로 네팔, 태국까지 도피했다가 어렵사리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고작 30세, 하지만 벌써 인생 3막이 마무리되는 시점이었습니다.
폐인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부모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네가 하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나는 믿는다. 내 아들이니까 나는 믿는다.”
힘을 얻은 그는, 법을 모르면 앞으로도 인생을 살며 어려울 수 밖에 없으리란 생각에 과감히 로스쿨에 진학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2013년, 드디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합니다. 인생 4막에 이르러 그간의 생고생을 딛고 인생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시점이었습니다. 이후 로펌과 모 제약회사 법무팀에 근무했다가, 작년말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을 바라보며 다시 ‘내 생명 조국을 위해’ 올해초 국회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겨 그야말로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그는 인생 5막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제 고작 36세(!)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2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무엇이 그의 운명을 이리 파란만장하게 만든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무사히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면, 지금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했던 군인의 길을 걷고 있었을까요? 글쎄요, 그럴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현재까지 그의 삶을 돌아볼 때 또 다른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다른 하나는 사실 독학으로 대학 졸업장을 따고, 더 나아가 변호사 자격증까지 따고야 마는 그의 도전정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한번 한다면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그의 도전정신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걸까요? 그리고 이런 도전의식을 통해 그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까요? 5년 뒤, 10년 뒤의 그의 모습이 정말 기대가 됩니다.
그를 옆에서 바라본 지 이제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딱 한가지만 부탁했으면 합니다. 그는 전형적인 목적형 인간입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불나방처럼 뜨거운 남자입니다. 젊으니까 이루고자 하는 것이 많고, 또 성취함으로써 큰 만족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좀 스스로를 돌아보고, 한 템포 쉬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걸음을 늦추고 혹은 잠시 멈춘 채 주위를 둘러보며, 삶의 이유와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또한 가족을 포함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온전히 사랑하는 시간을 가지며, 맘껏 웃고 즐거움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시간들로 일상을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삶이 꼭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 아닌, 삶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가 지금보다 더 풍요롭고 풍성한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펼쳐 질 그의 멋드러진 인생 6막을 기대합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97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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