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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Jun 14. 2017

하루라는 타임루프 속,
세 남자의 기구한 운명과 숙명

영화 <하루>를 보고


한 남자의 절규가 떠오르다


딱 10초를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깜빡 잊고 온 것이나 바로 전 못한 일이 생각날 때 등 순간순간 아주 유용하게 활용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바로 자신의 눈 앞에서.     


만화 <타이밍(강풀 원작)> 중에서


비오는 새벽 출근길. 사랑스런 아내와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는데, ‘쾅!’하는 엄청난 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급하게 뒤를 돌아보니 자신의 집에 가스폭발이 났고, 그 폭발로 인해 아내와 아이가 창밖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절대절명의 상황. 그는 자신의 초능력을 활용, 10초 전으로 상황을 돌린 후 아내와 아이를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하나? 그의 선택은 아이였습니다. 추락했을 때 어른보다는 아이의 충격이 더 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죠.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하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숨이 목까지 차오르다 못해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뛰고, 또 뛰는 데도 아이와 아내는 자신의 눈 앞에서 죽어 갑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절규합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영화 <하루>를 보며 만화 <타이밍(강풀 원작)>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애절하며 가슴 먹먹한 절규가 떠올랐습니다.     



딸과 아내의 죽음을 막아야만 한다


영화 <하루>의 주인공이자 의사 준영(김명민)은 3년 간의 외국 전쟁지역 봉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언론에서는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언급할 정도로 그의 업적을 치하하죠. 하지만 그의 마음은 사랑스런 자신의 딸 은정(조은형)을 만날 생각에 온통 쏠려 있습니다. 기자회견 후 서둘러 딸과의 약속장소로 가다 준영은 도로 위 사고현장과 만나게 됩니다. 그 곳에서 피투성이가 된 택시 운전사를 응급조치하며 의사로써의 본분을 다하죠. 하지만 그 곳에선 또 다른 사고 피해자가 있었는데, 바로 자신이 그렇게도 만나고 싶어했던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딸은 차가운 주검이 되어 있는 상태였고요. 망연자실 딸의 갑작스런 죽음에 오열하던 찰나, 그는 다시 자신이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꿈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도 생생했고, 빨리 잊고 싶은 꿈이었죠. 하지만 꿈 속에서와 같은 현실이 반복되자, 그때부터 준영은 강풀의 만화 <타이밍>의 주인공처럼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합니다. 어떻게든 딸의 사고가 나기 전에 도착하고자 죽음조차 각오하고 차를 몰아 보지만, 그럼에도 맞이하는 건 딸의 싸늘한 주검뿐이었습니다. 어떻게든 현실이 달라지지 않음에 그는 절망하고, 또 절규합니다.     



이때 누군가 그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 챕니다. 그러면서 귓전이 터질 정도로 소리칩니다.     


“당신 뭐야? 다 똑같은데 왜 당신만 달라? 왜 다르냐고!”     



같은 사고로 준영은 딸을 잃었지만, 민철(변요한)은 아내를 잃었습니다. 민철 또한 딸을 살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죠. 두 사람은 동병상련을 느낍니다. 그리고 딸과 아내를 살리기 위해 힘을 합칩니다. 하지만 더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게 되고, 마침내 딸과 아내를 죽음의 현장에서 벗어나게 하죠.      


그렇게 끔찍했던 하루의 무한반복은 해피엔딘으로 끝이 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준영에게 의문의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서 말이죠.          



세 남자의 기구한 운명과 숙명 그리고 당혹감


영화 <하루>는 죽음으로부터 어떻게든 딸과 아내를 살리고자 하는 두 남자의 처절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두 남자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애절함, 그리고 안타까운 사투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번 손에 들어간 긴장이 영화 말미에야 풀렸습니다. 그만큼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두 남자의 악전고투는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이 영화는 타임루프를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기존 영화와 차별되는 점은 타임루프를 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안에 담긴 세 남자의 기구한 운명과 어쩔 수 없는 숙명이 만들어낸 안타까움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 사람은 3년 전의 한 사건을 계기로 서로 물고 물리는 악연을 가지게 되며, 그로 인해 바로 오늘, 하루동안의 타임루프에 갖히게 됩니다. 이 안에서 한 남자는 딸을, 다른 남자는 아내를 그리고 또 다른 남자는 그들의 딸과 아내를 죽이고자 하는 일을 무한반복하게 되죠.      


하지만 이러한 삼각구도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관객에게 큰 당혹감을 안겨주고 있는데, 이는 사건의 범인 또한 이와 같은 끔찍한 일을 벌릴 수도 있겠다는 당위성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것을 운명과 숙명으로 절묘하게 엮고 있는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마치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딸을 유괴한 한 유괴범이자 살해자(비록 사고였지만)인 청각 장애인 류(신하균)에게 죽음으로 복수하는 동진(송강호)의 그 마음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류나 동진, 두 사람 모두 선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운명이 그리고 숙명이 서로를 안타까운 죽음으로 몰고 가죠.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의 한 장면


다행(?)스러운 것은 영화 <하루>에서는 모두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라는 타임루프를 통해 해결책을 찾고 최종적으로는 관계를 회복한다는 점입니다. 다소 신파스러운 결말일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마무리가 무척 다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범인과 민철이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는 너무 짧고 단순하지만, 그러면서도 이 영화의 모든 결말을 함축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며, 소중한 하루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더불어 가족의 사랑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 이 영화 감상문은 <브런치>에서 준비한 시사회를 본 후 작성한 것입니다.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브런치>에 감사 드립니다.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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