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칸양 Sep 06. 2017

'서툰 인생', 그것이 인생이래요

영화 <우리의 20세기>를 보고



미래는 언제나 늘 빨리 다가올 뿐 아니라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앨빈 토플러 -     


영화 <우리의 20세기>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인용구로 시작됩니다. 미래(未來)란 아직 오지 않은 시기를 뜻합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땅이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먼저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것이 미래입니다. 앨빈 토플러는 이런 미래가 언제나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가진 채 찾아 온다고 말합니다.



다섯 남녀의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




이 영화 <우리의 20세기>는 20세기, 그 중에서도 1979년(굳이 1979년을 선택한 이유는 마이크 밀스 감독의 유년시절과 관련이 있다고 하네요)을 살아가는 다섯 남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에게 미래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며,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오로지 제 각기의 관점과 방식으로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 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엄마 도로시아(아네트 베닝)는 1924년생으로 55세입니다. 이혼한 싱글맘으로 아들 제이미를 키우며 살고 있죠. 그녀의 유일한 소망은 사춘기 아들 제이미가 조금 더 착실하게 잘 크는 것이며, 자신의 행복보다 아들의 행복을 더 바라는 전형적인 엄마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담배를 너무 많이 피는 것만 빼면 좋겠더군요... 물론 흡연이 그녀의 스트레스 푸는 방법 중 하나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도로시아의 아들 제이미(루카스 제이드 주만)는 1964년생으로 15세의 사춘기 소년입니다. 그는 방황 중입니다. 안에서 솟구쳐 오르는 뜨거움을 주체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때문인지 알 수 없어 매사에 좌충우돌하죠. 또한 여자, 특히 친구 줄리를 향한 욕망때문에 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제이미의 친구 줄리(엘르 패닝)는 1962년생, 17세로 제이미보다 2살 많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소꼽친구입니다. 그녀 또한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주변의 남자들을 사귐으로써 내면의 불안감을 없애려 해보지만, 자신의 앞날은 여전히 두렵고 깜깜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역설적이며 자조적으로 읊조리곤 하죠. ‘난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고요.


도로시아 집에 묵고 있는 하숙생 애비(그레타 거윅)는 1955년생으로 24살입니다. 재능있는 사진기자죠. 그녀는 병원에서 자궁의 문제로 인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판정을 받습니다. 그녀의 현재도 혼란스럽습니다. 어떻게 젊음을 살아가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죠. 그래서 사진과 음악 그리고 춤에 몰두합니다. 또 다른 하숙생 윌리엄은 자동차 정비공입니다. 그는 손재주가 많습니다. 그래서 도로시아의 오래된 집을 수리해 줍니다. 윌리엄(빌리 크루덥)은 다소 수동적이지만, 상대의 말을 잘 들어 주고 따라 줍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그의 현재 또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왜 이리 삶이란 쉽지 않은 것일까?


이 다섯 명은 하나의 공간, 하나의 시간대 안에서 서로 얽히고 설키며 살아 갑니다. 어떤 때는 자연스런 인과관계처럼 마음을 주고 받고 하다가도, 때로는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거나 혹은 아파하기도 하며, 그렇게 현재를 살아 갑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세대 간, 남녀 간, 그리고 서로의 상황과 감정에 따른 예기치 못한 오해와 갈등이 발생합니다.


이들 중 특히나 엄마 도로시아는 아들 제이미의 방황이 못내 걱정됩니다. 사랑스런 아들이지만, 그의 행동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잡아주려 하지만, 아들은 자꾸 엇나가는 듯 느껴집니다. 엄마의 이런 행동을 제이미는 간섭이라 여깁니다. 엄마가 대공황(1929년~39년까지 약 10년간 지속된 세계 경제의 극심한 불황기) 세대라서 현실에 대한 걱정만 많다 생각하죠.



마침내 도로시아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애비와 줄리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제이미를 바로 잡아 달라고 말이죠. 애비는 문제아(?) 제이미에게 밴드 음악도 들려주고 클럽에도 데리고 다니며 인생공부를 시켜 줍니다. 그러면서 생각하죠. 제이미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고요.


줄리 또한 제이미를 돌보려 하지만, 자신의 상황이 더 안 좋습니다. 오히려 그런 그녀를 제이미가 도와주죠. 줄리에게 제이미는 편안한 안식처라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집보다 제이미와 그의 방이 더 편하다보니 그와 함께 잠까지(오로지 잠만!) 잘 정도니까요. 이런 다소 비상적인 상황을 모습을 도로시아가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이른 아침 아들의 방에서 나오는 줄리를 보게 되는 거죠. 도로시아는 서둘러 줄리를 쫓아가 자초지종에 대해 물으며, 문제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그러자 줄리는 이렇듯 당돌하게 말하죠.



“문제의 시작은 늘 엄마잖아요.”


이후 도로시아와 제이미의 갈등은 제이미가 줄리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하며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됩니다. 한마디로 대형사고를 쳐버린 겁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제이미와 줄리 또한 모텔에서 서로의 마음이 맞지 않아 싸우게 된다는 겁니다. 제이미가 뛰쳐 나간 후 줄리는 어쩔 수 없이 도로시아에게 SOS를 칩니다. 전화를 받은 도로시아는 애비와 윌리엄과 함께 서둘러 줄리가 묵는 모텔로 찾아옵니다.


좁은 모텔방에 모인 다섯 사람.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방안의 공기는 숨이 막힐 듯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때 도로시아가 라디오를 켜고 음악을 틉니다. 그리고 흐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그러자 모두가 일어나 함께 춤을 춥니다. 한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피자, 그 미소는 웃음으로 환하게 번집니다. 음악과 함께, 춤과 함께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으며 서로가 서로를 보담습니다. 제가 느꼈던 이 영화의 최고 장면이었습니다.




그것은 인생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힘들다 할지라도 어쩌겠습니까.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며, 그 갈등까지도 안고 가는 수 밖에요. 그게 바로 인생이니까요. 아무리 잘 살아간다 할지라도 한번 밖에 살 수 밖에 없는 “서툰 인생”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인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도로시아가 아들 제이미에게 던지는 한마디는 꽤나 가슴을 울리며 다가옵니다.     


“얘야, 우리가 인생을 이해할 날이 올 지는 모르겠어.”     


이해를 못하면 어떻습니까. 그저 이렇게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고, 더욱이 부모가, 연인이, 친구가, 나를 알아봐주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 가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말이죠. 그렇지 않나요?^^ 영화의 배경이 된 1979년이나 현재 2017년이나 무려 40년에 가까운 간극이 있지만, 여전히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비슷한 듯 느껴집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이게 바로 삶이니 수긍하고 그저 “서툰 인생”을 감사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게 곧 우리의 숙명이자 운명이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본 후 오래된 노래 한곡이 떠올려 졌습니다. 제목과 가사가 이 영화와 잘 어울리는 듯 싶네요. 가사를 음미하며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인생>이라 하네요.



그것은 인생(1983년)


박건호 작사/ 김재일 작곡/ 최혜영 노래


아기때는 젖주면 좋아하고 아하 / 아이때는 노는걸 좋아하고
저 가는 세월속에 모두 변해 가는것 
그것은 인생
철이들어 친구도 알게되고 아하 / 사랑하며 때로는 방황하며
저 가는 세월속에 모두 변해 가는것
그것은 인생
시작도 알수없고 끝도 알수없네 / 영원한 시간속에 잠시 서 있을 뿐
우리가 얻은것은 진정 무엇이고 / 우리가 잃은것은 과연 무엇인가
저 가는 세월속에 빈손으로 가는것
그것은 인생

어릴때는 엄마가 필요하고 아하 / 커가면서 애인도 필요하고
저 가는 세월속에 모두 변해 가는것
그것은 인생
부딛치는 갈등과 갈등속에 아하 / 숨겨있던 자신을 발견하며
저 가는 세월속에 모두 변해 가는것
그것은 인생
시작도 알수없고 끝도 알수없네 / 영원한 시간속에 잠시 서 있을 뿐
우리가 얻은것은 진정 무엇이고 / 우리가 잃은것은 과연 무엇인가
저 가는 세월속에 빈손으로 가는것
그것은 인생  



                      



* 이 영화 감상문은 <브런치>에서 준비한 시사회를 본 후 작성한 것입니다.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브런치>에 감사 드립니다.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경제/인문 공부, 독서 모임


매거진의 이전글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 맨땅에 헤딩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