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가수지망생 김형민, 그가 계획이 없는 이유
“저는 24살 김형민이라고 합니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버스킹(거리공연)을 하고 있어요. 저는 김광석의 노래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오늘 첫 곡으로 들려드릴 노래는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입니다.”
늘씬한 키에 노랗게 물들인 머리, 조용조용한 말투, 약간은 수줍어 보이는 눈길과 행동들 그리고 잘 생긴 외모. 저뿐 아니라 그날 모임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가 영낙없는 아이돌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청포도의 풋풋함이 온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지난 21일에 있었던 변화경영연구소 함성 부활모임에 그는 초대가수(지망생)이자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음악토크쇼의 주인공으로 참석했습니다. 첫 노래를 부르기 위해 준비를 하는 그의 모습은 차분하다 못해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드디어 노래의 반주가 흘러 나오자 그는 약간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약간은 경쾌한 멜로디, 김광석의 노래지만 조금은 더 젊고, 그러면서 약간은 농익지 않은 그런 음색이 흘러 나왔습니다. 하지만 실내라 조금은 긴장했던 걸까요? 미세한 떨림과 함께 고음에서 뭔가 조금은 막히는 듯 느껴졌던 건 저만의 착각이었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노래가 끝난 후 그가 말을 꺼내네요. 원래 배가 비어있는 공복의 상태에서 노래를 해야 목소리가 더 잘 나오는 편인데, 오늘은 하도 배가 고파 주최측에서 나누어준 김밥을 먹었더니 조금 목이 메인다고 말이죠.^^ 변명하는 모습 또한 참 귀여워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나이가 들긴 든 모양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두 번째 노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헉, 이런 애절한 노래를 하다니... 가수 김광석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다들 이 노래를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가사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시죠. 가사만으로도 사랑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히 배어 나오니까요.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앞에 앉으면 / 눈물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 지울 수 있을까...
어느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 쓸쓸한 사람 되어 고개 숙이면 /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하루 바람이 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길 / 그립던 말들도 묻어 버리기 / 못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24살이 부르기엔 너무 감성적인 노래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듣다보니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참 괜찮더군요. 생각했던 것보다 그의 음색이 김광석의 노래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른 즈음에>,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어쩌면 그의 나이대에 가장 공감을 할 수 있는 노래라 할 수 있는 <이등병의 편지>까지, 계속해서 주옥같은 노래들이 이어졌습니다. 아,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김광석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습니다. 풋풋함과 떨림, 그리고 음색만으로는 나이대를 가늠키 어려운 매력이 그의 목소리에 담겨 있었습니다. 점점 그의 노래에 빠지고 있는 제 자신을 느낄 수 있었죠.
5곡이나 들은 후 토크쇼가 이어졌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궁금한 질문은 그가 왜 가수를 하려는지에 대한 이유겠지요. 그는 중고등 학창시절에도 노래를 좋아하긴 했지만, 숫자를 다루는 것도 좋아해 관광경영학을 전공으로 선택해 대학에 진학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어쩌다보니 경영학이 아닌 원치않는 관광쪽으로 진로가 바뀌게 되었고, 그로인해 평상시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가수의 꿈을 실현해 보자는 결심을 굳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시험을 봐서 실용음악과로 입학했고요.
물론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반대가 거셌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겠지요. 그야말로 바늘구멍을 뚫어야 하는 가수의 길, 그 고난과 배고픔의 길을 어느 부모가 선뜻 응원할 수 있을까요? 이때 누군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었냐고요. 그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웃음이 터졌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자식을 키우고 있지만, 절대 마음대로 안되는 게 자식 일이더군요. 어렸을 때야 어르고 달래 어떻게든 부모생각대로 할 수 있지만, 사춘기때부터는 그야말로 천방지축, 어디로 튈지 모르는게 자식의 생각과 행동 아닐까요? 그러다보니 스스로 무엇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때가 있고, 더 나아가 열심히 하면 절로 응원의 마음까지 생기는 것이지요. 실제로 그의 어머니 또한 그가 버스킹을 할 때면 항상 따라와 아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고 합니다. 과거 안티에서 이제는 열성팬이 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버스킹(busking)은 '길거리에서 공연하다'라는 의미의 버스크(busk)에서 유래된 용어로,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에서 자유롭게 공연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가 이런 버스킹을 시작한 지는 조금 됐는데, 혼자서 한 건 몇 개월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럿이 같이 하다 혼자하려니 조금은 쑥스럽고 민망하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네요. 그는 버스킹의 매력이 음악을 통한 소통에 있다고 말합니다. 만국의 공통어, 만인의 공감어라 할 수 있는 음악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는 가수의 꿈을 꾸며 어떤 장르를 해야하는 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최근의 트렌드라 할 수 있는 힙합, R&B(리듬 앤 블루스)의 경우는 너무나 잘하는 사람이 많기도 했지만, 자신과는 딱 맞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포기했고, 락이나 재즈, 소울 그리고 댄스 또한 그다지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8090의 옛날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부르다보니 자신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스스로도 만족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김광석의 노래를 필두로 한 옛 감성노래들을 부르게 되었다고 하네요. 버스킹을 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성과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난 달 한 아트홀의 초대로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는 단독 콘서트 무대를 가졌다고 하니, 그가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입은 듯 싶네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이렇게 답하더군요. 없다고요. 응? 계획이 없다고? 순간 모두가 당황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부연설명을 합니다. 가수의 길을 가는데 있어 계획을 세운다 할지라도 계획대로 될 가능성은 제로이기 때문에 사실 무의미할 수 밖에 없다고요. 그래서 무계획이 계획일 수 밖에 없으며, 다만 한가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즉 매일 열심히 노래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힘차게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그의 잘 생긴 얼굴이 더 환히 빛나는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그가 정말 이름있는 가수로 성공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래가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매일 그 일을 열심히 해보겠노라고 다짐하는 그가 너무나 듬직하고 이뻐 보였습니다. 안도현의 시 <연탄재>처럼, 성공여부를 떠나 그가 가진 열정만큼은 그 무엇보다 뜨거움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성공과 건투를 빕니다.
하나. 가수(지망생) 김형민이 부르는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둘, 그가 조금 더 궁금하다면 페이스북에서 ‘김형민 버스킹’을 입력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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