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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Jul 30. 2015

9년전 나는

균형 찾기 #16

지난 7월초의 토요일 오전. 매주 쓰는 마음편지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켰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메시지가 뜹니다. 시간설정이 과거로 되어 있으니 다시 조정하라는 내용이었죠. ‘어, 이상한데?’하며 시간을 살펴보니 세상에나! 현재 시간이 <2006년 9월 26일 화요일 오전 12시 16분 09초>로 되어 있네요. ‘아무래도 노트북이 오래되다보니...’란 생각을 하며 시간을 조정하는데 갑자기 머릿 속에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9년전 이맘때 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시는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던 시기였습니다. 회사에서는 운 좋게도 꽤 괜찮은 부서로 이동함으로써 의기충천해 있었죠. 그때 다이어리에 이렇게 써 둔 것이 기억납니다. 입사 12년차로 앞으로 2~3년이 내 회사생활의 가장 중대한 전환점이 될테니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한다고요. 자기계발 측면에서는 중국어를 시작했었습니다. 회사가 중국진출을 본격화하여 다양한 인력들을 중국으로 보내던 시기였기 때문에, 중국어 공부는 저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한 투자일 수 있었죠. 중국어 학원 첫 수입일, 뇌와 혀가 동시에 마비(?)될 정도로 사성(四聲)에 대해 배우던게 생각나네요. 최소 2주에 1권 정도는 읽자는 각오로 독서도 나름 열심히 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읽었던 책 중에 김규환 명장의 <어머니, 저는 해냈어요>와 속옷 브랜드 비비안의 전 CEO 김종헌님의 <남자 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한다>가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취미활동으로 사회인 야구에 미쳐있던 시기였습니다. 2001년 회사 야구부 창단멤버로 사회인 야구를 시작했고, 2주에 한번 꼴로 있던 시합을 위해 몸도 마음도 온통 야구에 빠져있었죠. 그야말로 제게 야구는 마약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해에는 감독직까지 맡음으로써, 감독 겸 선수로 종횡무진(?) 활약하던 시기였습니다. 제 집은 용인, 시합장소는 인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용인-인천을 수도없이 왔다갔다하던 그 열정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듯 싶네요. 이런 말이 생각납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만 보면 나름 알차고 즐겁게 보내던 시기였지만, 한편으로 고민도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39세. 불혹을 코 앞에 둔 시기. 제 머리 속에는 계속해서 이런 질문이 떠올려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지만 위 질문이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부서도, 일도, 취미활동도 거의 모든게 무난하던 시기였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해였습니다. 부서의 팀장이 바뀌었는데, 저와는 극과 극의 성향을 가진 팀장이 왔습니다. 그때부터 회사생활은 최악으로 치달았죠. 하루하루 출근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습니다. 정말 다 때려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소심한 탓에 그러지도 못했죠. 1년간 매일매일을 고통스럽게 지내면서 회사와 현실 그리고 미래의 삶에 대한 고민은 본격화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9년이 흘렀습니다. 당시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여전히 월급을 받으며 기존의 직장에 다니고 있고, 미래는 불안하기만 합니다. 중국어는 개인사정으로 1년정도 배우다 그만두었고, 열정의 사회인 야구 또한 노쇠화(?)로 은퇴했습니다. 확실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9번의 떡국을 더 먹었다는 정도 뿐이니, 이 정도라면 제 인생에 별다른 변화는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보여지는 결과는 그럴지 몰라도, 과정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2008년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4기 연구원으로 1년을 독하게 수학한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꿈 중의 하나였던 책을 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를 거듭하며 2~3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2012년 『소심야구』와 2013년 『불황을 이기는 월급의 경제학』을 출간함으로써 노력에 대한 작은 결실은 맺을 수 있었죠. 또한 회사에서 배운 도둑질(?), 즉 자금업무에 개인적인 경제 공부를 더함으로써, 그 결과물인 1년 과정의 경제/경영/인문의 균형 찾기 프로그램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를 런칭한 후 지금까지 3년째 운영하고 있고, 게다가 <에코독서방>까지 함께 하고 있음은 제 스스로 생각해도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거기에 더해 이렇게 매주 ‘마음편지’를 쓸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행운이라 할 수 있고요.     


여전히 미래는 불안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무언가 제 인생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내 스스로를 꾸준히 전진하도록 만드는 힘이 존재함을 알고 있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2008년 이후 2~3년 동안은 무척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전심을 다한 노력은 했지만 그야말로 매일매일이 오리무중인 상태. 어떤 이들은 최선을 다 하다보면 길이 열릴 것이라 말했지만,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듯 했습니다. 살짝 마음만 접으면 삶이 보다 편해질 것만 같았고, 얼마든 타협은 가능해보였습니다. 그때 제게 큰 힘이 되주었던 문구가 있었습니다. 파커 J. 파커의 수필집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에서 노인 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 앞에서 길이 열린 적은 없었다네. 반면에 내 뒤에는 수 많은 길이 닫히고 있다네. 이 역시 삶이 나를 준비된 길로 이끄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네.


이미 돌아갈 길은 닫혀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 그렇게 살 수 없다는 절실함이 저를 계속 걷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외형상 변화는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계속 걷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할지, 그리고 또 다른 변화가 어떻게 찾아올지 혹은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뒷길이 계속 닫히고 있기 때문에 저는 전진해야만 합니다. 제 삶이 제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 싶습니다.

      

‘걷고 또 걸어라, 그게 너의 인생이니.’     


걷다보면 다시 9년의 시간이 흐를 것입니다. 그때는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제가 길 위에 서 있으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9년전 여러분과 지금의 여러분은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달라지셨나요? 잘 모르시겠다면, 지금이라도 짬을 내어 종이 위에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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