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찾기 #17
인간의 수명을 약 80세 플러스 알파로 본다면, 우리는 인생의 시간들을 어떻게 채워야만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행복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본격적인 얘기 전에 먼저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고 가죠. 우리가 발을 디딘 채 생활하고 있는 이 사회는 자본주의를 기본 토대로 운영되고 있으며, 자본주의란 논리에 의해 모든 체계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자유 민주주의란 정치 이념에 따라 국가 운영이 되고 있을지라도,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결국 기저에 깔려진 사상은 자본주의라 할 수 있죠. 즉 자본주의 경제논리가 이미 모든 사람들의 머리 속에 뿌리 내려져 있다는 의미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힘이자 권력이며 종교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 성공의 완전체인 ‘부자’가 되기를 갈구합니다. 과거 한 카드회사 광고의 “부자 되세요~”로 대변되는 카피 문구나 광풍처럼 휘몰아쳤었던 재테크로 10억 만들기 열풍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부자’란 노골적인 표현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성공’이란 말로 대신합니다. 자신의 사업을 크게 하고픈 사람들이나 전문가로써의 자리를 확고히 다지려는 사람들 또는 직장에서 임원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쉼 없이 달립니다. 이들에게 목표의 달성은 곧 ‘성공’을 의미하며, 이러한 ‘성공’은 대개 자본주의의 꽃인 ‘돈’까지 소유할 수 있음을 뜻하죠.
'부자'가 되거나 '성공'에 이를 가능성은?
‘부자’가 되거나 자신의 일을 통해 ‘성공’에 이르는 것, 두 가지 모두 좋습니다. 둘 중의 하나만 이루게 되면 경제적으로 곤궁하게 살 일은 전혀 없으며,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한 삶을 누릴 가능성이 크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IMF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부자’가 되거나 ‘성공’에 이를 가능성이 아주 줄었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1년 정기예금 금리가 채 2%가 되지 않고,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에서 과거처럼 돈을 벌기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소위 재테크 실종의 시대가 돼버린 겁니다. 또한 경기가 최악을 걷는 상황에서, 수많은 기업들은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실시하며 많은 인원을 줄이고 있습니다. 과거 직장인들의 경우 임원의 자리에 오르는 ‘성공’을 목표로 했건만, 이제는 기업에 오래 붙어 있기만 하면 ‘성공’이란 말이 공공연시 되고 있습니다. 사업, 장사 또한 마찬가집니다. 그저 적자보지 않고 현 상황만 유지할 수 있다면 나름 ‘성공’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환경과 삶은 피폐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 맞춰 과거 몇 년 동안(어쩌면 지금까지도) ‘힐링’이란 단어가 방송가와 출판계를 도배하다시피 한 적이 있습니다. 힐링이란 한마디로 ‘삶에 지친 영혼이여, 이리 와 내 어깨에 기대어 쉬라! 너의 상처를 치유하리라!’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사회적으로 힐링이란 단어가 유행했을까요? 그만큼 삶이 힘들고 각박하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힐링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왜 그럴까요? 위로는 위로에 그칠 뿐, 결국 자신의 삶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아무리 누군가가 힘을 내라며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여준다 할지라도 직접 움직여 무언가를 성취해내지 못한다면 내 삶은 여전히 힘겹게 멈춰서 있을 뿐이니까요.
삶의 기쁨, 즐거움, 행복 또한 스스로 찾아내고 얻어내야 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행복이란 파랑새가 저 멀리가 아닌, 바로 우리 주변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죠. 눈을 크게 뜨고, 온몸으로 느끼려는 열린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행복은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아주 다행스러운 점은 인간의 뇌가 행복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큰 행복이든, 나른한 오후 향기 그윽한 커피 한잔을 누릴 수 있는 사소한 행복이든, 뇌는 다 똑같은 하나의 감정으로 느낀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성공, 예를 들어 큰 돈을 벌거나, 목표를 달성했을 경우를 따로 구분하여 행복이라 명명한다면, 행복은 조건부일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라 행복은 자연스레 느끼는 것이 아닌 쟁취해야만 하는 또 하나의 높은 목표가 되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