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칸양 Dec 28. 2017

올해의 10대 사건, 그 중 하나

#4, 올 한 해 여러분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휴게소 가방분실 사건


해마다 그 해가 저물어 가면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그 해의 10 대 뉴스들을 정리하여 보도해 주곤 합니다. 문득 나도 올해 나에게 생긴 10대 뉴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건들이 줄줄이 꿰지다가 어느 순간에 멈추어 서게 되고, 다시 조금씩 흐르다 또 멈추어 서면서 지난 일 년이 흘러갑니다. 그러다가 한 장면에 이르러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내가 전에 이야기 했던가요?


지난 여름 아내와 보름 동안 동유럽을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비엔나에서 잘쯔부르그로 가는 도중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알프스 자락의 대단히 아름다운 곳에 놀랄만큼 풍요로운 먹거리들이 즐비한 신나는 레스토랑 같은 휴게소였지요.

나는 햇살이 바람을 타고 나부끼는 옥외 데크에 반했습니다. 얼른 커피 한잔과 불루베리 케익 한 쪽을 들고 밖으로 나가 내 마음을 그 빛나는 미풍 속에 실어 두었습니다. 한 10분 쯤 그렇게 즐겼을까요. 그리고 일행과 함께 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들어섰습니다.

들어서자 마자 나는 내가 그 아름다운 휴게소에 여권이 들은 작은 가방을 놓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가장 중요한 소지품을 두고 온 것입니다. 아주 난감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마침 가까운 IC가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차를 돌렸습니다. 가는 동안 커피를 산 영수증에 적힌 전화번호로 그 휴게소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행히 나는 휴대전화를 가져갔었지요.

나는 휴게소 직원에게 상황을 알리고 옥외 데크에 작은 검은 색 가방이 있는지 체크하여 보관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정말 다행으로 이미 그 직원은 내 가방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줌마가 가방을 열고 여권 속의 내 이름을 더듬더듬 읽어 확인해 주는 목소리가 그렇게 예쁠 수 없었지요. 그때 까지 진행된 몇 분은 참 드라마틱하고 황당하고 짜릿했습니다.

1 시간 정도를 되돌아 가 가방을 찾아 나오면서 그 휴게소 계단 앞에서 가슴 한 가운데 가방을 올리고 기념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여권가방 분실 미수' 사건이 발생한 다음부터 우리 일행들은 휴게소에 쉬었다 버스를 탈 때 마다 가슴에 손가방을 올리고 사진 한 장 씩을 찍어 댔습니다. 그리고 그때 마다 웃었습니다. 덩달아 웃었지만 그때는 우습기도 하고 놀림 받아 창피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일행들에게 좋은 포도주 몇 병을 쏘았습니다.



사랑아 너는 어찌 그리 아름다우냐


웃음은 황당함 속에서 창조되기도 합니다. 기쁨 역시 어려운 일이 잘 처리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전화위복의 보상이도 하구요. 

일 년이 웃음 속에서 잘 지나갔습니다. 아, 아직도 조금 남아있군요. 어제 밤 시를 읽다가 올해의 시로 내가 뽑아 둔 것이 있습니다. 아주 화려한 사람의 화려한 시입니다. 아가서 중에 나오는 ‘솔로몬 왕의 노래’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조금 변형하여 번역해 두었습니다. 


사랑아 너는 어찌 그리 아름다우냐. 

어찌 그리 화창한지 참으로 달콤하구나. 

네 몸은 종려나무 같고, 네 가슴은 포도송이 같구나. 

네 숨결은 사과향기 같고 

네 입은 내 사랑하는 이에게 부드럽게 흘러 내려 잠든 이의 입속으로 조용히 흘러드는 포도주 같구나. 

나는 내 사랑하는 이에게 속해있고, 너는 나를 사모하는구나. 


가자, 내 사랑하는 이여. 

들판으로 나아가 헤너에 둘러싸여 잠들자꾸나.

 아침 일찍 일어나 포도원으로 달려가 포도 움이 돋았는지 , 꽃망울이 터졌는지 살펴보자. 

거기서 내가 내 사랑을 너에게 주마. 


여러분들의 삶이 이렇게 달콤하길 바랍니다. 
한 해 여러분 덕에 즐거웠습니다. 


                             


                                                                                    - 구본형(변화경영사상가, 2006년 12월 29일) -






최근 '~덕분에'란 단어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할 때 '~때문에'란 단어 대신에 '~덕분에'로 바꾸니 말 전체의 느낌과 의미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이렇습니다.


'내가 도대체 누구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거야!' 란 생각을 하고 있다 가정해 보죠. 


이 문장에서 고생은 바로 누구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며, 그 때문에 나는 억울하고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 반드시 이 화를 어디엔가는 풀어야만 하고, 그 대상이 바로 누구가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문제는 이런 '~때문에'란 사고방식이 습관이 되면, 웬만한 힘든 상황들은 내가 아닌 타자에 의해 발생되는 것으로 치부되죠. 난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이번에는 문장의 '때문에' 대신 '덕분에'로 단어를 대체해 보죠. 그러면 문장이 이렇게 바뀌게 됩니다. 


'내가 도대체 누구덕분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거야!' 


문장의 문맥 흐름이 조금 어색하죠? 이렇게 바꿔야만 잘 어울릴 겁니다.


'내가 도대체 누구덕분에 이 호강(!)을 하고 있는거야!' 


어떤가요? 이젠 남의 문제가 아닌, 남의 탓을 하는 것이 아닌, 감사의 마음이 되죠? 짜증나고 화가날 일이 아닌 고마움의 사례를 해야할 것 같은 마음이 되죠? 이렇듯 우리의 생각은 단어 하나로도 확연히 바뀔 수 있습니다. 아무리 화가날 일도, 조금만 바꿔 생각하면 감사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바로 생각의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다사다난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위의 글을 읽으며 난 지난 1년간 얼마나 웃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몇몇 순간들이 떠오르지만, 그렇게 많은 시간들을 차지하는 것 같진 않군요. 웃고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할 시간들 대신 무의미하고 건조하며, 때로는 차갑고 과묵한 시간들이 자리잡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때문에'란 단어대신, '~덕분에'란 말을 더 많이 쓰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되고, 감사하게 되며 그로 인해 더 많이 즐기고 기뻐하며 웃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야 우리의 인생이 더 풍부해지고, 달콤해지지 않을까요?



지난 1년, 저 또한 저와 관련된 모든 분들 덕분에, 그리고 제 글을 읽어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내년엔 더 행복해지고, 더 많이 웃는 시간들로 일상이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여러분 덕분에 그럴 것이라 확신합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bonlivre.tistory.com/1076)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경제/인문 공부, 독서 모임



매거진의 이전글 치열한 것은 오래 남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