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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Mar 12. 2018

사유의 확장을 위한 <열한 계단> (1편)

#21, 채사장의 <열한 계단>을 읽으며



채사장의 <열한 계단>


최근 책 한권을 읽었습니다. 채사장의 <열한 계단>이란 책입니다. 사실 채사장이란 작가를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베스트셀러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란 책이 너무 위험하다 생각했기 때문이죠. 뭐랄까요, 세상의 이치를 참고서처럼 딱딱 틀에 맞추어 나눈다 할까요? 사고가 성숙된 사람이 읽는다면 참고할만 하겠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오히려 그 사고를 단순 주입시킬 수 있는, 다소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연히 접하게 된 이 책 <열한 계단>은 반대로 사고의 확장을 도와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학, 종교, 철학, 과학, 이상, 현실, 삶 등의 11가지 개념들을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더불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성인에게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비교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사고의 확장이 필요한 청년들 특히, 대학생들에게는 인생을 어떤 관점을 가지고 바라봐야 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만들어 줍니다. 저는 제 대학생 아들에게 이 책을 읽은 후 꼭 독후감을 써두라 했습니다. 아들이 이 책을 읽고 생각의 범위가 조금 더 넓어졌으면 하는 바램 때문입니다.


앞으로 3~4편의 칼럼은 이 책의 흐름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글을 읽다가 마음이 끌리시면 직접 읽으셔도 좋을 듯 합니다.



첫 번째 계단 - 문학


한 조용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공부에 대한 관심도 없이, 그저 무기력한 일상을 지내던 그에게 우연히 책 한권이 다가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등장인물도, 이야기의 흐름도 잘 파악되지 않아 읽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보름 만에 그 책을 다 읽어 냅니다. 그러자 무언가 변화가 찾아옵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죄와 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나의 무기력한 일상은 산산조각이 났다무한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칠흑같은 내 영혼의 골방엔 깊은 균열이 생겼다빛이 새어 들어왔다나는 무엇인가 잘못 건드렸다는 걸 강하게 느꼈다.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죄와 벌>의 주인공인 로쟈처럼 인간은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존재이며,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맞기 위해서는 결연한 의지와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죠.


당시 고생학생이던 소년은 이를 계기로 국문과 진학을 결심합니다.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서였죠.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얘기해주지 못했던 삶의 비밀에 대해 문학은 답을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겁니다. 그는 대입 시험을 준비하며, 한편으로는 <전쟁과 평화>, <이방인>, <폭풍의 언덕>, <데미안> 등 다양한 문학의 숲을 여행합니다. 그렇게 그는 문학이라는 인생의 한 계단에 올라서게 됩니다.



두 번째 계단 - 기독교


하지만 준비가 다소 부족한 탓이었을까요? 그는 대입시험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게 됩니다. 재수학원을 다니다 지칠 때면 그는 언제나 고전을 펴고 그 세계로 침잠해 들어갔습니다. 마음의 안식과 함께 삶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문학을 통해 삶에 대한 간접적인 경험은 할 수 있었어도, 그의 본질적인 의문을 해소시킬 순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죄와 벌>에서 자신의 죄로 고뇌하던 로쟈가 연인 소냐를 찾아가 <신약성서>의 한 부분 중 죽은 라자로가 부활하는 내용(요한복음 11장)을 읽어달라 요청하던 내용을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생각하죠. 왜 하필이면 <신약성서>였을까? 그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신약성서>가 알려줄 지도 모르겠다고. 이를 계기로 성경을 읽기로 결심합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신에게 물어보기로 말이죠. 그는 성경을 통해 다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나의 질문을 멈추게 했다세속의 그 어떤 논리와 비판도 그의 삶이 보여준 압도적인 숭고함을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초월적인 거대함 앞에서 오히려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나는 의심을 멈추고 그의 품에 안겨 쉬기만 하면 되었다.


그는 그렇게 기독교라고 하는 인생의 두 번째 계단에 오릅니다.



세 번째 계단 - 붓다


다음 해 그는 원하던 국문과에 입학합니다. 대학에 진학함으로써 자유를 만끽하게 되죠. 더불어 머릿 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싹트게 됩니다. 신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는 것 또한 그 중에 하나였고요. 그는 본격적으로 신에 대해 공부하며, 철학과 과학 또한 접하게 됩니다. 그러며 한편으로는 차츰 종교와 믿음에 대한 회의가 내면으로부터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하죠.


그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수동적인 존재인가? 기독교에서는 믿음만 있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구원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내 삶의 구원을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현실에서의 인간의 삶이란 무엇일까? 주체적인 도덕성, 자기 극복의 의지, 저항의 가치, 이 모든 것들은 단지 인간이 자만한 결과일 뿐이며, 이러한 가치들은 그렇게 하찮은 것일까? 인간은 그렇게 초라한 존재인가? 스스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일까?


자신이 자신의 등불이 되어라자신이 자신의 의지처가 되어라진리를 등불로 삼고진리를 의지처로 삼아라모든 생겨난 존재는 없어지게 되어 있다부지런히 정진에 힘써라.”


그는 우연히 이 문장을 접하게 됩니다. 바로 그가 찾던 대답이었죠. 구원이 반드시 타자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에 의한 깨달음도 가능하다는. 그는 붓다를 만남으로써 보이지 않는 하늘 위 그 무엇인가를 쫓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붓다라고 하는 세 번째 계단에 오르게 된 겁니다.


 

☞  사유의 확장을 위한 <열한 계단> (2편)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경제/인문 공부, 독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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