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외식업의 비전은, 외식업을 빠져 나오는 것
‘음식 장사는 할것 없으면, 마지막에 하는거야’
3년전 음식장사 시작하는 내게, 사촌형은 이야기했다. 그는 고깃집을 운영중이다. 나이가 50이 넘고, 시집 보낼 딸이 있다. 장사 현장에서는 그도, 애취급 당한다.
'어이, 사장, 일루와'
이런 말 들으면, 형은 참 괴롭다고 한다. 음식점 사업, 그 중에서도 고깃집은, 마음 수양하는 사업이다.
음식 장사가 너무 많아서일까? 아니면, 음식장사에 대한 한국인의 관념이 고정되어있기 때문일까? 온순하신 분들도, 음식점에서 직원을 대할때는 고압적인 태도가 된다.
이런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순대국집을 운영한다. 60대 되시는 남녀분들이 술을 들고 계셨다. 한분이 본인의 점퍼를 옆자리에 놓았고, 같은 라인 테이블에서 다른 손님들이 곱창전골을 주문했다. 어느 순간 점퍼 손님이 자기 옷을 보더니, 목 주위가 불에 그을렸다는 것이다. 본인이 판단하기에, 곱창전골을 써빙할때 순간적으로 닿았기에 탔다는 것이다.
눈을 부라리며, 쥐잡듯이 어머니를 다그쳤다. 당장 물어내라며, 호통이다. 일제 시대 고등계 형사도 이렇게 기고만장할까? 연락을 듣고, 내가 가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이것은 직접 라이터불로 지지고 한참 있어야 꺼멓게 타서 부스러집니다. 순간적으로 냄비 바닥에 스쳤다고 이런식으로 타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누가 보나 상식이었다. 점퍼 손님이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너는 누군데’ 라고 말씀하셨다. ‘사장’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허허 사장이 둘이야. 당장 영업신고증 가져와.’ 주위를 둘러보더니, ‘영업 신고증, 사업자 등록증 안붙어 있네. 이놈들 잘걸렸다.’
경찰을 불렀다. 내가 경찰을 부른 것은 상식을 상식이라고 3자의 입장에서 말해줄 사람이 필요해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시비를 가려주지 않았다. 사건경위를 듣고는, 어떻게 처리해주길 바라냐며 물을 뿐이다. 노련해 보이기만하는 경찰의 말에 나는 짜증이 났다. 점퍼 손님도 경찰까지 부른 모습에 한층 흥분했다.
‘그렇다면, 제가 잘못했으면 점퍼를 물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도 영업 방해하신 것에 책임을 지세요’라고 나는 말했다.
그들은 ‘영업 방해’라는 말에 또 뒤집어졌다.
경찰 둘중 젊은 사람이 다가왔다. 잠깐 보잔다.
‘사장님 지금 이렇게 큰 소리칠때가 아니에요. 저 사람들 걸고 넘어지면, 몇백만원 벌금 나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찰들도 귀찮고 짜증나는 것이다. 어서 빨리 그들도 이 국면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돈주면 빠르고, 깨끗하게 끝난다.
점퍼 손님은 점퍼 수리비로 60만원을 불렀다.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온다. 울상을 짓자, 선심 쓰듯이 30을 불렀다.
‘선생님, 제가 5만6천원 팔고, 30만원 물어주면, 제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15만원 드릴테니, 각서를 쓰시라고 했다. 쓰긴 하겠는데, 대신 이름 석자는 못쓰겠단다. 150만원도 아니고, 기껏 15만원에 자기 이름을 쓰냐는 것이다. 옆에 같은 편 여자분이 어서 15만원 찔러주라고, 눈에 뛰게 귀뜸해주셨다. 찔러주자마자 그는 갔다.
초로의 어머니는, 이 광경에 발을 동동 구르며 우셨다. 그녀는 장사 경력 30년이다. 15만원을 벌려면, 순대국을 얼마 팔아야할까? 참, 살기 싫어지는 순간이다.
이날 나는 두가지를 결심했다.
하나는 천직으로 생각했던 외식업을 천직으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외식업은 나름 매력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부터 외식인이 아니다. 지금은 얼떨결에 화장품을 판다. 이 장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손님이 사장인 나를 조금은 어려워해주신다는 것이다. 화장품 매장의 분위기가 그렇다. 손님이 마음대로 땡깡 부리는 여건이 아닌 것이다. 만약 손님이 음식점에서 하는 대로, 판매사원을 쥐잡듯이 쏘아붙인다면 그 손님은 쪽팔릴 것이다.
음식점 사장에서, 화장품 사장으로서 나는 경영마인드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손님은 나를 다르게 봐준다. 사람 이미지를 이렇게 바꿀 수가 있을까?
두번째는, 몸으로 때우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인건비 아낄려고, 내가 몸으로 때우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20세기는 창조의 시대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창조’는 디즈니 영화처럼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윤을 붙들고 늘리고자 애쓰는 모습이다. 창조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매우 무섭다. 그들은 24시간 회계장부와 법적 항목을 꼼꼼히 살피며, 완벽한 계약서를 만든다. 이런 세상에 대응하기 위해선, 사장인 내가 낮은 부가가치에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된다. 홀이 바쁘면, 사람을 하나 더 두자. 인건비 아낀다고, 사장인 내가 직접 뛰면 평생 홀써빙만 하다가 끝날 것이다.
외식업의 비전은, 외식업을 빠져나오는 것이다. 삼성이 지금도 설탕만 팔고 있다면, 세계 기업이 될까? 현대가 여전히 쌀만 팔면, 오늘의 현대가 있었을까?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건, 종자돈을 모아서 다른 사업을 하건, 어쨌든 외식업은 시작일뿐이다.
한가지 더, 외식업은 사람을 단련시켜준다. 외식업에서 온갖 손님을 대해본 사람은, 어떤 산업에서도 거뜬히 대응할 수 있는 면역력이 생긴다.
점퍼 사건을 처리하고, 화장품 매장에 돌아왔다. 구입한 품목이 바뀌었다며, 한 손님이 컴플레인을 하셨다. 눈을 부라리며 잡아먹어버릴듯한 인상의 점퍼 손님과 대조적이다. 너무나 소프트해서 감사할 지경이었다.
2011년 2월 6일
-- 김인건(변화경영연구소 6기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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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관계에는 '갑'과 '을'이 존재합니다. '갑'은 '을'에게 서비스를 제공받고, 대신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합니다. 그렇기에 '을'은 그 댓가를 받기 전까지, 그래서 최종 거래가 완료될 때까지 '갑'의 마음에 드는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합니다. 만약 그 서비스가 '갑'의 성에 차지 않는다면, 언제든 '갑'은 그 계약을 철회하게 될 것이니까요.
우리는 '갑'이 되기도, 혹은 '을'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으러 식당에 갔을 때는 '갑'이 되겠지만, 내가 무엇을 팔아야 한다면 '을'의 입장이 되겠지요.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하지만, 갑과 을의 관계에서는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종종 마치 자신이 영원한 갑인양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물론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 이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이 상식을 벗어난다면 그건 다른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사실 갑과 을이란 관계, 서비스와 댓가를 주고 받는 관계라는 점을 제외시킨다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그저 어디서나 만나게 되는 평범한 이웃일 뿐입니다. 부모님뻘, 삼촌뻘, 친구뻘 혹은 동생뻘이나 자식뻘 같은 사람들이죠.
직장인이 직장을 다니는 이유도, 장사하시는 분들이 장사를 하는 이유도 결국은 잘 살기 위함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겠죠.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겠지만, 사회적인 관계를 통해서도 행복을 얻으려면 서로 간의 작은 관심과 배려가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조금씩만 더 관심을 갖고, 조금씩만 더 배려의 마음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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