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칸양 Mar 30. 2018

니가 어떤 모습일지라도

영화 <레이디 버드>를 보고



달리는 폭주기관차, 레이디 버드



크리스틴(Saoirse Ronan 분, 사진 왼쪽)은 미서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세크라멘토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천방지축의 18살 소녀입니다. 그녀는 인구 40만도 안되는, 작고 뻔할 뿐 아니라 지루하기까지 한 고향 세크라멘토에서 탈출하고 싶어하죠. 그래서 어서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만큼은 뉴욕과 같은 대도시로 가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성적이 따라주지 못하다는 게 함정이긴 하죠.


그녀는 자신의 이름인 크리스틴보다도 자신이 작명한 ‘레이디 버드’란 이름으로 불리기를 좋아합니다. 부모에게도 본명대신 그렇게 불러달라 요구하는데, 그걸로 인해 부모님, 특히 엄마와 충돌하는 경우가 잦죠. 말다툼 정도는 약과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엄마와 차안에서 말싸움을 하고는, 마음에 안든다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 버리는 그녀의 패기넘치는(?) 행동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수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죠.



집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학교에서도 가끔 대형사고를 저지르곤 하죠. 초청강사로 오신 분의 이야기를 듣기 싫다며 던지는 말은 그야말로 충격적입니다. 이처럼 그녀는 때로 통제불가능의 폭주기관차처럼 방향을 잃은 채 달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녀 스스로도 자신을 잘 제어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마음 속에서는 부모를 생각하고, 친구를 배려할 줄 아는 착한 마음이 숨어 있다는 겁니다. 다만 그 마음이 잔잔한 호수가 아닌, 높은 파도처럼 진폭이 크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거죠.




2가지 관점의 영화 <레이디 버드>


이 영화 <레이디 버드>는 2가지 관점을 가집니다. 하나는 세상을 크리스틴, 아니 ‘레이디 버드’의 눈으로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천방지축 ‘레이디 버드’를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두 번째 관점(엄마가 아닌 아빠긴 하지만)으로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게도 사춘기 시절을 보낸 딸이 있기 때문이죠. 뭐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니 다행히 ‘레이디 버드’ 수준은 아니었네요. 그렇게 큰 사고를 친 기억은 없었으니 말이죠. 다만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딸 키우기가 결코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특히 공부에 관심이 없어 학교를 가고 싶어하지 않던 딸과의 밀당은 그야말로 전쟁과도 같았죠. 아침에 학교를 간다고 나갔는데, 점심 때쯤 학교 담임으로부터 얘가 등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야말로 혈압이 솟구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담임이 더 이상은 안되겠다며 전학이야기를 꺼낼 때는 정말 미칠 것 같더군요. 당시 제 마음 속 바램은 딱 하나, 제발 딸이 고등학교만 제대로 졸업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딸은 대학 진학 대신 메이크업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더불어 화장품 회사 판촉사원으로 일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집으로부터도 독립해 조그만 원룸을 얻어 살고 있습니다. 사실 딸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계속해서 독립하겠노라 주장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부의 반대로 인해 실행에 옮기진 못했죠. 그러나 약 1년의 시간이 흐르고, 취업해 돈을 벌며 점차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딸을 보니, 더 이상은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딸은 자신만의 보금자리로 독립해 나갔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이후로 하루에 한번은 꼭 전화 통화를 한다는 겁니다. 꼭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이런 저런 하루에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죠. 그러다보니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거의 자기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대화자체도 상당히 적었거든요. 오히려 집을 떠난 이후 더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듯 싶습니다. 게다가 가끔 집에 오면 더 반갑게 맞을 수 있으니, 딸과의 관계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니가 어떤 모습일지라도



파티에 갈 드레스를 고르며 크리스틴은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그러자 엄마가 대답하죠.     


“나는 네가 최고의 모습이기를 기대해.”     


그러자 크리스틴이 말합니다.     


“지금 이 모습이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제가 답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딸아,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널 사랑한다.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없다. 네가 무엇을 잘하고, 어떤 성과를 내고 못 내는 것과 상관없이 너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너는 소중한 나의 딸이기 때문이란다. 네게 바라는 건 몇가지 되지 않는다. 그저 아픈 곳 없이 건강하고,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아준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 너를 평생 사랑하고 아껴줄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행복하게 살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를 키운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네가 잘 살아주는 것이 이 부모에게 줄 수 있는 기쁨이자 행복이란다. 너를 만나 함께 살아온 것 자체가 내겐 행복이고 큰 감사란다. 사랑한다, 딸아. 내 분신아.”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4978


* 이 영화 감상문은 <브런치>에서 준비한 시사회를 본 후 작성한 것입니다.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브런치>에 감사 드립니다.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경제/인문 공부, 독서 모임



※ 공지사항 한가지!

지난 3월 26일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차칸양이 출연했습니다. 최근 근황, 책과 경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에코라이후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bang1999/338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리틀 포레스트(작은 숲)>는 무엇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