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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Apr 30. 2018

이제 가는 길은 달라도

전 직장 동기들과의 만남을 통해 얻은 작은 생각들


전 직장 동기들과 만나다


지난주 월요일 오후, 핸드폰의 진동이 울리고 있었습니다. 누구지? 전 직장의 동기네요. 웬일일까? 전화를 받으니 저의 근황이 궁금하다며 한번 보자네요. 겸사겸사 용인권에 사는 동기들도 함께 말이죠. 그렇게 해서 동기 4명이 지난 금요일 저녁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두 명은 현역이고, 한 명은 회사의 계약직 대리점장, 그리고 또 다른 한명은 하얗고 뽀얀 백수, 바로 저였죠. 모임을 주선한 현역 동기는 지점장입니다. 10년 전 용인에 집을 사두었으나, 발령이 대구, 부산 등으로 나는 바람에 계속 지방근무만 하다가 올해 강북지점장으로 발령나며 모처럼 집에서 출퇴근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또 다른 현역 동기는 중앙연구소의 센터장입니다. 원래는 양평의 전원주택에 살다가 최근에 동탄으로 이사를 왔고요.


두 현역 동기는 제 근황이 궁금했나 봅니다. 만나자마자 어떻게 지내냐 묻는 것을 보니 말이죠. 잘 놀고 있다 하니 그 다음 질문이 이어집니다. 6월에 있을 대리점 신청할 거냐는. 그러면서 덧붙입니다. 너가 대리점 신청을 안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사실이냐고 말이죠. 딱 부러지게 답했습니다. 응, 전혀 할 생각 없어. 백퍼. 그러자 곧장 다음 질문이 이어집니다. 재취업할 곳이 정해져 있는 건지, 아니면 부모님이 물려줄 재산이 많은 건지, 그도 아니라면 최근 집 시세가 많이 뛰었는 지 등등. 모두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로 쳐다 봅니다. 분명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을 안하고 있을 거란 표정이네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을 하던 와중에 이야기가 다른 주제로 넘어갑니다. 다른 동기들의 근황,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 회사 정책에 대한 불만들이 물 흐르듯이 이어집니다. 두 현역 동기는 현재 대리점장을 하고 있는 동기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현 수입은 얼마나 되며, 어떻게 해야 수입을 더 올릴 수 있는 지. 그리고 어느 곳에 위치한 대리점을 받으면 좋을지 등등. 올해가 현역으로써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퇴사 후 대리점장 일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현 듯 제가 회사를 떠난 지 꽤나 오래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지? 고작 4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죠. 아마도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이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길이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일까요? 아니 그보다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 보는 게 맞을 듯 합니다. 제가 이미 발을 들여놓은 길은 전 직장에서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또한 저 혼자의 힘으로 헤쳐나가야만 하는 그런 길이기 때문이겠죠. 동시에 동기들의 관점에서 보면 제가 ‘이방인’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대리점을 안 하는 2가지 이유


9시를 넘겨 술도 깰 겸 차 한잔 하자며 근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제 얘기를 하는 게 좋을 듯 싶었습니다. 오해의 소지를 남기는 건 동기들에게도 미안한 일이니까요. 65세 ‘최경자’(최소한의 경제적 자유)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연금 100만 원, 하고 싶은 일에서 50만 원 그리고 투자를 통해 50만 원. 그렇게 월 200만 원+α를 벌 수 있도록 경제 시스템을 만들고 있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대리점을 안하려 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제 얘기를 들은 동기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냅니다. 다 좋은데 그럼에도 월 수입이 적어도 500~600만 원은 되는 대리점과 병행하며 준비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요. 맞는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제 성향 상의 문제입니다. 저는 멀티 플레이를 하지 못합니다. 만약 두 가지 일을 병행하게 될 경우, 두 가지 모두에서 제대로 된 성과도 못낼 뿐 아니라 스트레스만 두 배가 되고 말 겁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도저도 아니게 될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죠.


다른 하나는 제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지난 24년 간의 직장생활을 돌이켜 봤을 때, 스스로에게 ‘과연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당연히 아니라는 답변이 나옵니다. 돈을 벌기 위해, 경제적 독립을 위해 하기 싫어도 해야만 했던 것이라 할 수 있죠. 이제 제 나이도 오십을 채웠습니다. 앞으로 건강히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잘 해야 20년 정도가 될 겁니다. 이 시간만큼은 하기 싫은 일대신, 제가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어차피 한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이니까요.


모르겠습니다. 동기들에게 어디까지 제 생각이 어필되었는 지 말이죠.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인생은 각자도생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인생의 반환점을 돈 지금, 삶을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주관대로 나머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저대로, 동기들은 동기들대로 말이죠. 저도 잘 살아야겠지만, 동기들도 건강히 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인생에 정답이란 없으니, 각자의 인생관, 가치관대로 생의 나머지 시간들을 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풍요롭게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경제/인문 공부, 독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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