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지금 당신의 역사는 어떻게 만들어 지고 있나요?
[나는 이 탑이 보이는 왼쪽 공터에 퍼질러 앉아 한 나절쯤 넋 놓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김밥을 까먹기도 하고 막걸리 한통 들고 가도 좋다. 누웠다가 앉았다가 어슬렁거리기도 하다가 볕이 좋은 날에는 오수를 즐기기에도 좋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언제나 조용한 곳이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2009]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 허파는 바람이 든다. 찬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 무성한 나무들을 발가벗기는 때에 이르면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된다. 자명종이 내장된 가슴은 때가 이르렀음을 어김없이 알려준다. 이 때가 되면 나는 홀린 듯 서라벌로 스며든다. 이것은 내 의지가 아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중독’이라고 한다면 나는 긍정하겠다. 계획하고 찾는 걸음이 아니니 목적한 바 있을 리 없다. 그저 본능처럼 당기는 곳으로 녹듯이 스며들 뿐이다. 나는 ‘역사가 있는 풍경’을 언제나 그리워했다. 투명한 자연의 풍광이라 해서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내겐 의미가 되지 못했다. 역사는 사람이 머문 흔적이다. 사람의 향기를 품은 풍경은 따뜻하고 소박하며 사유가 있다. 나는 늘 이런 풍경을 동경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처럼 말이다.
[이곳은 삼릉으로 알려진 곳이다. 저 다리 너머에 경애왕릉이 있다. 이곳에 오면 항상 남편이 죽은 날 점령군의 우두머리와 동침을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 한 여인을 생각한다. 역사는 흐를 뿐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는다. 경주, 남산, 삼릉 숲, 2010]
본능처럼 찾는 곳이지만 저절로 말머리가 향하는 몇 곳이 있다. 배리 삼릉은 남산 기슭 울창한 솔숲을 품고 있다. 두꺼운 새벽에 닿으면 이곳엔 선경이 펼쳐진다. 한참 서성거리다가 경애왕릉에 이르러 처절한 운명의 한 여인을 생각한다. 견훤에게 서라벌이 함락당하고 경애왕은 자결을 강요당한다. 왕비는 견훤에게 급간당하고 후궁들도 부장들에게 나눠졌다. 정복자의 권리였을 것이다. 이렇게 서성거리다 탑곡에 들어 막걸리 한잔한다거나 한 시간 남짓 발품을 팔아 칠불암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고개를 들어 절벽을 조금 기어오르면 깎아지른 절벽에 육감적이고 아름다운 부처님 계신다. 신선암 마애불이다. 나는 이 미소가 언제나 황홀하다.
[한 시간 남짓 발품을 팔아야 만날 수 있는 부처님이다. 나는 육감적이고 아름다운 이 부처님이 너무 사랑스럽다. 탐스런 볼은 손을 가져다대면 따뜻한 체온이 전해져 올 것만 같다. 천년 전 서라벌에는 이토록 아리따운 여인이 있었을 것이다.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불, 2014]
또 가끔은 말머리를 더 몰아 감포 앞바다로 향한다. 이곳에 가면 장군의 기상이 넘치는 우람한 두개의 탑을 만날 수 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다. 이 탑은 그대로 ‘장대하다.’ 여러분들은 돌덩이가 말을 걸어오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무언가 속삭이는 듯해서 동작을 멈추고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되는 그런 경험이다. 아차 하고 돌아보면 휑한 바람만이 너른 들로 몰아쳐 지나간다. 명작은 따로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탑의 피부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튼실함이 그대로 내 힘줄로 전이되는 느낌은 오르가즘이다. 그 그늘에 들어 오뉴월의 굵은 땀을 식힌다.
[이곳은 언제가도 기운이 넘치는 곳이다. 장군의 형상을 한 근육질의 두 탑 때문일 것이다. 기운 빠져 허우적거릴 때 찾으면 좋다. 지근거리에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던 무열왕의 수중릉과 이견대가 있다. 경주, 감은사지, 2009]
그러나 이 모든 곳을 압도하는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황룡사터다. 이곳은 황량하다 못해 황당한 허허벌판이다. 바닥에 기둥을 얹었던 몇 개의 주춧돌과 석물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분황사와 벽을 함께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발길조차 뜸한 곳이다. 관심을 가지고 지나지 않는다면 이 곳이 동양에서 가장 큰 절집이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곳을 바람이 잔잔해진 봄날이거나 칼바람 몰아치는 한 겨울에 스며드는 것을 좋아한다. 허허로워 견딜 수 없거나 너무도 막막하여 아득할 때 눈물처럼 찾기 위해서 아껴두는 곳이다. 황량한 고졸함속에 적막한 바람이 싫어오는 이야기를 겨드랑이 사이로 느끼는 즐거움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지 빈약한 사유는 결국 적당한 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말았다.
[한 겨울 칼바람 불 때 나는 이 황량한 벌판에 서 있길 좋아한다. 몇 분도 견디기 힘들만큼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곳이다. 반면 선선할 때 찾으면 바위나 잔디를 쓰다듬으며 한 동안 음미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언제 가더라도 찾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한갓지게 어슬렁거릴 수 있다. 경주, 황룡사터, 2010]
나는 이 너른 공터에 서서 천년의 시공을 더듬는 것을 좋아한다. 손바닥을 가만히 초석에 올리면 따뜻한 시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볕이 좋은 늦은 오후 따뜻하게 데워진 돌덩이에 엉덩이를 붙이거나 등을 기대어 머리를 놓으면 녹는 듯 스며들어 저절로 눈이 감긴다. 시공을 넘어 오늘을 도닥여주는 이 편안함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인지 나는 늘 궁금하다. 아비지의 눈물이 아직 다 마르지 않은 것인지 염불하는 스님들의 엉덩이 체온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한 겨울 삭풍에게 말을 걸어본다. 이 바람은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 귀가 떨어질 듯한 칼바람이 잠시도 쉬지 않고 불어대는 날엔 이런 풍한을 버티고 이겨내지 않고서는 세상으로 한 발짝도 내 디딜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뜬금없는 곳에서 황룡사 9층 목탑의 원형을 만날 수 있다. 전문가적인 식견이야 내게 있을 리 만무하다 만 아무리 봐도 이 조각에서는 막걸리 냄새가 안 난다. 이국적인 냄새가 살짝 풍기는 이곳에서 서성이길 나는 무척 좋아한다. 경주 남산 탑곡마애조상군, 2014]
황룡사터 이곳은 오래전 불국정토를 꿈꾸던 한 국가의 역량이 모두 모였던 곳이다. 진흥왕 14년에 처음 짓기 시작(553년)하여 17년 만에 담장을 쌓아 완성했으며, 장륙존상을 만든 것은 이로부터 22년 후인 574년, 금당은 32년 후인 584년, 9층 목탑을 준공한 것은 92년 후인 645년이다. 장장 한 세기에 걸친 대 역사를 통해 이룩된 것이다. 대종이 완성된 것(754년)을 마지막 완성으로 본다면 황룡사를 완공하는데 장장 이백여년이 걸린 셈이다. 상상하기 힘든 인내의 시간이다. 우리 시대 누가 있어 세기 후에 열매를 맺을 나무를 심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사 모든 것은 필멸의 운명을 가진 바 이 장대한 염원 역시 이 운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오백여년 장대하게 우뚝하던 위용은 1228년 몽고와의 전쟁 통에 탑과 절 그리고 장륙존상과 건물들이 모두 불에 타고 말았다.
“나는 들었네. 황룡사 탑이 불타던 날 번지는 불길 속에서 한 쪽은 무간지옥을 보여 주더라고”
일연은 이날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적멸의 불국정토와 지옥은 한 곳에 있었다.
2014년 5월 18일
-- 정수일(변화경영연구소 10기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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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쉬는 모든 것이 역사입니다. 꼭 지나온 시간만이 역사는 아닙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또한 역사의 한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에겐 지금까지 살아온 역사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 역사가 바로 그 사람 자체라고 할 수 있죠.
재래시장에 간 적이 있습니다. 장날이었죠. 물건을 파는 사람들과 사려는 사람들로 시장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있던 중,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이 많은 사람들을 그저 대중의 무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한사람 한사람이 지내온 역사의 시간들로써 보게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20~30년의 역사가 열 댓명, 40년의 역사가 약 30명, 50년의 역사는 대략 40명, 그리고 60년 이상의 역사가 최소 3, 40명. 아무리 못잡아도 5,000년 이상의 시간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었습니다. 그 엄청난 시간도 시간이지만, 만약 이들이 살아오며 겪었던 삶의 희노애락들을 펼쳐놓는다면, 이 얼마나 대단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될까. 그 어떤 드라마, 영화보다 더 위대하지 않을까. 한사람, 한사람이 달리 보이고 위대해 보였습니다. 각자가 자신 만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또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니까요.
우리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오랜 역사의 현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곳을 대개 유적지라고 부르죠. 다만 아쉬운 것은 그 곳에서 더 이상 당시의 사람들을 직접 만나볼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지은지 무려 1,500년이 넘어가는 황룡사터가 더 공허한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 황룡사는 얼마나 활기찼으며, 사람냄새 가득한 삶의 현장이었을까. 또 얼마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을까.
역사는 흐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역사 또한 흘러 갑니다. 시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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