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대한 인식 변화의 역사
현대의 우리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직장인이든 사업가든 자영업자든 일을 한다는 것은 생물이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 되었다. 반대로 일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마치 인간이 해야 할 제 구실을 못하는 듯 비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수많은 직장인들은 일을 하기 위해 지금의 직장에 들어왔다. 누가 시켜서 혹은 등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성 들여 작성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그리고 치열한 면접을 거쳐 높은 경쟁률을 뚫고 기쁨의 합격 통지서를 손에 쥔 것이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하고 본격적인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이것이 일에 대한 직장인들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과연 과거에도 일이 지금처럼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을까? 또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치 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을까? 사실 그렇지 않다. 일은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이는 일이라고 하는 단어의 어원에서도 알 수 있는데, 여기에는 생각보다 부정적인 의미가 많이 담겨 있다.
* 일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파노스(panos)’는 분쟁, 처벌과 동의어이다. 또한 슬픔을 뜻하는 라틴어 ‘포에나(poena)’의 어원은 ‘파노스(panos)’에서 유래되었다.
* 성경의 히브리서에서 ‘일’을 나타내는 단어와 ‘노예’를 나타내는 단어는 동일하다.
* 일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트라바이유(travail)’는 라틴어 ‘트리팔리움(tripalium)’에서 유래했는데, ‘트리팔리움’은 말의 발에 편자를 박기 위해 말의 다리를 묶어 놓는 세 개의 기둥을 뜻한다.
* 아르바이트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독일어 ‘아르바이텐(arbeitien)’은 원래 ‘고통’과 ‘분쟁’을 뜻하는 단어이다.
* 영어의 ‘노동(lavor)’이란 단어는 16세기 이후에는 출산의 고통을 묘사하는데도 사용되었다.
정리해보면 일이 의미하는 것은 고문, 처벌, 분쟁, 노예, 슬픔 등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과거의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일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어 왔을까? 그 역사의 흐름을 쫓아가 보자.
먼저 아래의 문장을 읽고 누가 한 말일지 유추해 보자.
"재산(땅과 노예들)을 소유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야말로 인간적인 삶의 기본이다. 우리 삶에서 진정한 일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일뿐이다."
놀랍게도 이렇게 말한 사람은 기원전 약 400년 고대 그리스 시대의 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자, 인문·사회·자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서양 철학의 근본을 세운 사람이었다. 게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책까지 썼을 정도로 인간의 덕, 정의, 우애, 행복에 대한 관심 또한 대단한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아리스토텔리스와 같은 대 철학자가 위와 같이 말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성품이나 의식과 관계없이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일이란 그야말로 미천한 노예들이나 하는 것에 불과하였으며, 귀족들에게는 금기시되는 것이었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삶이란 얼마나 잘 먹고, 놀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뒤이은 로마시대 또한 그리스 시대와 유사했으나 중세시대에 들어와서는 2가지 측면에서 상황이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왕족 대신 교회(가톨릭)가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으며, 두 번째로는 기존의 왕족·귀족과 일반 백성·노예(하인)의 이분적 계층 구조에서 상인(셰익스피어의 걸작 <베니스의 상인>이 나온 것도 이 시기이다)이라고 하는 새로운 계층이 대두되며, 새로운 사회 계급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은 여전히 미천한 계급이 하는 것에 불과했다. 상위계급인 성직자·왕족·귀족들에게 일은 터부시 되는 것이었다. 일은 대물림되었다. 아니 계급(신분)이 대물림되었기 때문에 하급 계층들은 일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이후 가톨릭의 부정부패가 심해지자, 유럽 전역에서는 새로운 종교를 갈망하는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마르틴 루터의 루터교, 장 칼뱅의 개혁파 교회 등이었다. 이들은 교회의 교리를 엄격히 지키며 생활할 것과 몸과 마음이 절대 청결해야 함을 강조했으며, 이러한 내용들을 토대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노동윤리를 내세웠다. 이때부터 비로소 일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마르틴 루터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선하고, 일하지 않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라고 외쳤으며, 더 나아가 장 칼뱅은 일이 ‘은총의 상징’이자 ‘구원의 수단’이라고까지 주장하였다. 이들은 모든 종류의 일과 모든 노동자들을 똑같이 존중하라고 가르쳤으며, 일을 통해 삶의 의미와 보람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로소 일에 관한 한 평등의 시대가 열린 것으로, 이렇게 되기까지는 무려 1,500년(기원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시간이 흘러 19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다. 산업혁명의 위력은 전 세계 경제 더 나아가 사상체계까지를 뒤바꿔 놓게 되는데, 먼저 거대 산업을 배경으로 한 자본가(부르주아)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자본을 통해 공장을 짓고 싼 임금으로 노동자(프롤레타리아)를 모아 대량으로 공산품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저렴한 공산품들은 날개 돋친 듯 팔리게 되고 큰돈을 벌게 된 자본가들은 다시 그 돈을 투자하여 새로운 공장을 짓게 된다. 대 자본가, 소위 거대 기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21세기. 자본주의는 굳건해진 상태이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본가 밑에서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산업혁명이 만들어 놓은 포맷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선택의 자유도 있다는 것이다. 원한다면 자본(자기 자본이든 타인자본이든)을 조달하여 자신 만의 사업을 벌일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산업혁명이 소위 굴뚝 산업으로 대변되는 제조업 위주 산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면, 지금은 서비스와 IT가 주도하는 미래 산업형 체제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지금은 약간의 자본과 아이디어만 가지고도 사업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과거의 일이 하위 계층에 부과된 벗어날 수 없는 족쇄와도 같은 고통, 괴로움의 의미에 머물렀다면, 종교개혁과 산업혁명을 거쳐 현대에 다다른 일의 변화는 남녀노소 누구나 다 일을 한다는, 일에 관한 평등의 시대를 이끌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의 적성, 강점에 맞추어 자신의 할 일을 정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은 물론 일에 대한 보람과 의미까지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일을 통한 자기 성장, 자기실현의 성취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되었다. 일, 보람, 의미, 자기 성장 이러한 것들이 사실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일의 인식 변화의 시대적 흐름을 잘 살펴본다면,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역사의 선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 이 글은 현대케피코 사보(18년 11월+12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Corbis Bettman/ Bettmann/ CORB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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