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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Jun 28. 2019

아버지의 보물

#56, 그때 그 시절 소녀의 일탈


이번 주말 저 혼자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엄마가 수술 받고 누워계신 병원에 병문안을 하러 간 것입니다. 그 병원은 제가 다녔던 모교 옆에 있었습니다. 병원을 찾아가며 기억은 자연스레 여고 때로 돌아갑니다. 학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지만 학교 주변은 이전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바뀌어 있습니다. 분식집 하나, 문방구 하나, 서점 하나 있었던 그 옛날의 골목이 제 눈에 선합니다. 음식점이며 까페며 주점이며 번잡하게 들어선 학교 앞을 보며 어느 새 저는 혀를 끌끌 차고 있습니다. 학교 앞은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열을 내는 저는 영락없는 대한민국 학부모의 모습입니다. 일탈을 갈구했던 열일곱 소녀는 어느새 중년의 어머니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픽’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열일곱 살 그 때의 일탈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학교 앞 면학 분위기가 잘 조성되었던 예전 그 시절에도 몇몇의 소녀들은 세상이 두렵지 않은 듯 온갖 놀이들을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야자(야간 자율학습) 금지 시범 학교였던 제 모교는 4시 반만 되면 모든 수업이 끝이 났습니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원에 가고 과외를 받는 아이들은 과외를 받으러 갔지만 저처럼 갈 데 없는 아이들은 그저 학교에 남아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등굣길 저는 검은 비닐 봉지에 소주 한 병을 싸 가곤 했습니다. 학교 정문 앞 화단 키 작은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 선 그 자리에 그 봉지를 쏙 밀어 넣어 둡니다. 수업을 마치고 한 두 시간이 지나 어둑어둑해질 무렵 빈 물병을 들고 나와 학교 정문 앞에 숨겨 두었던 소주를 그 물병에 담아 학교로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일탈의 욕구가 목까지 차 오른 친구들과 함께 저녁 도시락을 먹으며 한 모금씩 홀짝홀짝 나눠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통하는 몇몇 소녀들의 일탈은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그 때 그 일탈들이 생각 나서 저는 피식하고 웃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저는 일탈을 갈구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그 갑갑했던 고교 시절을 다시 보낸다 해도 저는 또 다른 일탈거리를 찾아낼 것 같습니다.



- 한 잔 쭉 마셔라.

성인이 된 딸과 아버지는 대화가 없습니다. 딸과 아버지의 대화는 항상 그랬던 것 같습니다. 뭐가 그렇게 어색한지, 어디서부터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작은 잔에 소주가 넘치도록 가득 따라 주시며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과 아버지가 만나면 언제나 그렇게 잔을 부딪히며 밤이 새도록 소주를 마셨습니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자세 한번 흩뜨리지 않고 새벽까지 부어라 마셔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와 딸의 대화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버지는 술 한잔 하실 수가 없습니다. 병원에 계신 엄마의 병간호를 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딸은 병원 근처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무슨 말을 먼저 시작해야 할지 어색하기만 합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시작하십니다.


- 용돈 많이 보내지 마라.

제가 용돈을 많이 보낸 것도 아닌데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는 아직 엄마를 잘 부양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신경 쓸 거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도 입을 엽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십일조를 하듯 저도 그렇게 십일조를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말씀 드립니다. 행여라도 부담스러우실까 봐 사위하고는 상관없이 딸이 수업하고 받은 수업료에서 십일조처럼 얼마씩 떼어 보내드리는 거라고 구구절절 말씀 드립니다. 제가 가난한 아버지 걱정을 하듯, 아버지는 부실한 제가 항상 걱정이신 모양입니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갑자기 아버지께서 말씀하십니다. 엄마가 수술을 받던 날 아버지는 오래되어 낡은 엄마의 옷들을 다 태워버렸답니다. 창고의 짐들을 정리하다가 아버지는 뜻밖의 보물을 되찾았다고 하시며 연신 싱글벙글하십니다. 글쎄 그 보물이 무엇일까요? 갑자기 대화가 흥미진진해집니다. 오래 전에 잘 싸두었으나 시골로 들어가시면서 어디다 둔지 몰라 안타까워하셨다는 아버지의 그 보물!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 물건을 찾고 너무 좋아서 작은 딸인 저에게 보내려고 하셨다가 꾹 참았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그 물건은 저보다 아버지께 더 소중한 물건인 것 같고 또 저에게 보내 봤자 아버지만큼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라 판단하셨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손녀들에겐 얼른 자랑하고 싶어 명절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물건은 다름아닌 제가 학창 시절에 받아왔던 상장들이었습니다. 받아 오는 족족 사라지는 그 상장들이 도대체 어디로 가는 지 그 시절의 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달 월례고사에서 또 받을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찾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상장을 받아도 칭찬 한번 시원하게 해 주지 않으셨던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인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계실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누렇게 빛 바랜 종이 상장들은 창고에서 먼지를 맞고 습기가 차서 눅눅하고 지저분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 상장들을 마른 수건으로 일일이 먼지를 떨어내고 마루에 한 장 한 장 깔아 말려 습기를 제거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상장들을 정리하시면서 제가 언제 개근을 했으며 또 언제 반장을 했는지 성적은 얼마나 좋았었는지 보시며 아버지께서는 한없이 흐뭇해 하셨답니다. 학교에서는 평균 97점 이상이 되면 종이 상장 대신 페난트라고 불리는 깃발 형태의 상장을 주었습니다. 페난트를 받았다면 도대체 얼마나 성적이 좋았던 것이냐며 아버지께서는 감탄하셨습니다. 지금은 까마득하지만 체육, 무용 등 실기 과목에서 실점을 많이 받았던 것을 감안해볼 때 전 과목 만점을 받아야 가능한 점수였던 것은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제가 도대체 어떻게 페난트를 받을 수 있었을까 지금의 저로서도 상상이 안 되긴 마찬가지입니다.


명절에 손녀들이 오면 아버지께서는 그 상장들을 하나 하나 보여주시며 엄마인 제가 얼마나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는지 알려주실 거라 하십니다. 처음 보는 아버지의 아이처럼 신난 모습에 저도 덩달아 신나기도 했지만 반대로 덜커덕 겁도 났습니다. 아이들이 그 어마어마한 상장들을 본다면 엄마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번듯한 직업도 없이 골골대는 지금의 엄마 모습에서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엄마의 어린 모습을 찾기는 어려운 일일 텐데요. 게다가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도 나중에 커서 엄마처럼 된다고 상상해 본다면 아이들은 어쩌면 공부할 맛이 뚝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지금의 제 모습에서 어떤 기대도 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제 어린 시절의 모습에 아버지의 기억이 머물러 있는 것 아닌지 제 마음이 쓸쓸해지기도 했습니다.



그 때의 그 소녀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 시절 검은 비닐 봉지의 그 소녀들은 모두 성적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각자 말 못할 고민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졸업 후 제 부실한 몸으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제 일생일대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다른 소녀들은 대부분 부모와의 관계에 있는 문제가 큰 고민거리인 듯 했습니다. 저는 어렸지만 나름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 시기를 제 삶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한 때라고 기억합니다. 같은 시절을 두고 저는 검은 비닐 봉지 속 소주가 떠오르는 반면, 제 아버지께서는 제가 받았던 상장들을 기억하십니다. 제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고민하며 저는 항상 일탈을 갈구했으면서도 저를 믿고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열심히 생활하곤 했습니다. 그 시절에 만약 아버지가 제 상장보다 제 일탈에 비중을 두어 근심하고 저를 믿어주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그 일탈의 길로 영영 가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과거에 제가 남긴 행적으로 누군가 기뻐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어쩌면 그 인생은 잘 산 인생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제 삶이 저 자신에게 기쁨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기쁨이 된다면, 이 또한 잘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라고도 말입니다.



                                                                              2014년 11월 2일


                                                              -- 김정은(변화경영연구소 10기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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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입시 철, 한 대학교에 응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림이 이어지던 어느 날, 저는 목욕을 하기 위해 집 근처 목욕탕에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누군가 저를 급한 목소리로 찾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왜? 당연한 의문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앞에 두고, 아버지는 상기된 얼굴로, 그리고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재우야, 합격했다.


뭉클했습니다. 사실 발표 전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궁금증이 커졌던 아버지는 학교에 전화를 했고, 합격했다는 소식을 먼저 들었던 겁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기쁜 축하의 말을 전한 후 집으로 돌아가시고, 저는 두둥실 행복한 기분을 만끽하며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목욕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SKY도 아니고, 그저 서울의 한 대학에 불과했지만 그렇게 기뻐해주신, 그래서 목욕탕까지 찾아오신 아버지의 행동, 말씀, 표정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변화경영연구소의 마음편지 필진으로 4년간 활동할 때, 제 글의 첫 독자는 항상 아버지였습니다. 매주 화요일 아침 6시(예약기능을 활용했습니다)에 업로드되는 글을 기다렸다가 읽곤 하셨죠. 아버지는 글을 읽고 종종 제게 편지를 보내 오셨습니다. 가끔 오자도 잡아주시고, 제가 생각지 못했던 다른 의견도 주셨죠. 그러던 그러던 어느 날 일이 생겨 마음편지를 평소보다 늦게 올린 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버지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런 것인가? 사실 어제 아침에는 걱정이 되어 자주 마음을 나누는 편지를 들여다 봤다. 8시가 되어도 편지가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물론 화요일에 올리기만 하면 되는 글이기는 하지만 평소에는 아침 일찍 올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던 판이라 혹시?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었다. 전화라도 할까? 생각했지만 공연히 놀라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참고 계속 게시판만 노려보았었다. 식사후에 다시 살펴보니 명품이란 자본주의 게임의 경품이란 이름으로 글이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반가웠다. 글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글 자체가 반가웠었지.

아하, 별 문제가 없구나..하고. 평소에 10시가 넘어서 글을 올리는 습관이 있었다면 10시가 되어도 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세상을 살자니 별 걱정을 다 하면서 살아가는구나.. 싶어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오늘도 날씨가 몹시도 덥다는데 더위 먹지 않도록 조심하고 앞으로 일주일후면 말복이다. 잘 지내기 바란다. 안녕! 

                                       

                                                                  2015. 8. 5. 원주에서 효빈이 할아버지가... 



이랬던 아버지... 보고 싶네요. 하늘에서 편히 쉬고 계시겠죠?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있어, 저는 오늘도 하루를 더 열심히 살아갑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안녕히.


아.버.지.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차칸양 아지트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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