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애월 <그리고서점> 주인장 이야기
지난 11월 29일(금)부터 12월 2일(월)까지 3박 4일의 일정으로 뱅기타고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29일(금)에는 제주도 애월의 ‘그리고서점’이란 곳에서 제 책 <돈 걱정없이 잘 살고 싶다면>에 대한 강의가 있었고,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는 온전히 제주도 여행을 즐기다 왔습니다. 소위 강연여행이라 할까요? 아내도 함께 한 덕분에 꽤나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처럼만의 여유있는 여행이기도 했고요.
제주도에서의 강의라니... 어찌보면 그야말로 행복한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도 기업 강의가 아닌 조그만 동네 책방에서 진행하는 강의였죠. 사실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저처럼 인지도도 낮고 유명도나 브랜드도 대단치 않은 저자를 초청한 강의라니 말이죠. 이는 둘 중의 하나라 볼 수 있습니다. 서점 주인장이 잠시 뇌의 오류가 발생해 생각을 잘못 했거나, 아니면 주최측의 감춰진 꼼수(?)가 있거나.
10월 중순쯤이었나 봅니다.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전 회사 후배로부터 말이죠. 잠시의 안부 인사 후 그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제주도에 와서 강의를 해줄 수 있냐고. 맞습니다. 그가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제주도 애월에서 그리고서점이란 동네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직접 가보면 알게 되지만 사실 규모는 서점이라 하기에는 작은 편입니다. 게다가 서점 임을 알리는 간판도 없고, 2층짜리 하얀 건물 바깥에는 ‘이음 문방구’라는 표시만 되어 있으니 처음오는 사람은 당황하기 일쑤입니다. 이뿐 만이 아닙니다. 독립된 공간도 아니고 교육협동조합의 1층 건물 한쪽에 책방을 차려 놓았기 때문에 SNS를 통해 어렵사리 찾아온 사람 중에는 ‘이게 서점이냐?’며 반문한 사람도 있었다 하네요.
아마 그리고서점을 방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과연 밥벌이는 될까, 하고 말이죠. 저도 궁금했습니다. 조심스럽게 물어봤죠. 그러자 솔직한 답변이 돌아옵니다. 서점만 해서는 절대적으로 밥벌이를 해결하긴 힘들다고 말이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정부에서 동네 작은 책방들을 지원하기 위해 진행하는 도서 입찰에서 2년 연속 운좋게 당첨(!) 되었기 때문에 그 돈으로 어느 정도 밥벌이가 가능하다 하네요. 뭐 그렇다 하더라도 풍족한 수준이 아닌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의 이름은 정현덕입니다. 그와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어느날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에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혹시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이냐며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어왔습니다.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홈페이지에서 제 글을 보고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네요. 기뻤습니다. 같은 류(類)의 사람을 한 회사에서 만날 수 있다니 말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저는 서울, 그는 부산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만남은 몇 달 뒤 그가 서울에 일이 있어 왔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저도 한 소심하지만, 그는 저보다 두, 세 소심 위였습니다. 말투도 느리고 어눌하기까지 했죠. 하지만 그의 눈과 마음은 맑고 투명했습니다. 청정구역에 사는 듯 느껴졌죠. 그는 책이 좋다고 했습니다. 책만 보면서 평생을 살면 좋겠다고 했죠. 그 이후로 가끔 그와 전화로, 혹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2개로 나뉘어지고 소속이 바뀌게 되면서 그와의 연락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객관적으로 볼 때 조직에 맞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뭐랄까요, 몸이 다 상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대단한 성과까지 내긴 했지만, 그것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더 나아보이게 만드는 재능이나 요령은 없었습니다. 너무 순수했다고나 할까요? 오히려 그의 성과나 노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주위에는 많았습니다. 그 결과 그가 조직으로부터 돌려받은 것은 칭찬이 아닌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상처였습니다. 공황장애와 교통사고까지 덤으로 얻었고요. 하지만 신기한 건 그가 아직도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는 점입니다. 서점을 처음 시작할 때 서점 한쪽에 라면(그는 조직에서 라면영업을 했습니다)을 팔까도 생각했다니까 말이죠. 아마도 그는 좋은 것만 기억하고 추억하는 듯 보입니다. 이 또한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서점은 아침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3시 반이면 문을 닫습니다. 일찍 문을 닫는 이유는 아직 아이들이 어린 까닭에 픽업을 해야하기 때문이라 하네요. 책방이 워낙 외딴 곳에 있다보니 하루에 찾아오는 손님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아침에 문을 열고는 책방에 앉아 직접 내린 커피(회사 퇴직 후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하네요)를 마시며 책을 읽는데, 그때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행복은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그의 삶은 윤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윤택해야만 할까요? 솔직히 경제적 여유로움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윤택함을 선택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선택은 본인의 몫일 겁니다. 하나를 포기하면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까요. 그러면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2년 전 회사에서 쫓겨났습니다. 소위 짤린 거지요.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회사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억대 연봉을 줄테니 오라고 해도 안갈 겁니다. 왜냐고요? 제게는 그 연봉 대신 자유가 생겼으니까요. 자유에는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그것입니다. 저는 첫 번째보다 두 번째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회사로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하고 싶지 않을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더욱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의 삶은 제가 꿈꾸는 미래가 아닙니다. 저는 큰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유유자적, 책을 읽고 사람들과 만나며 이야기하고 나누며 인생을 즐기고자 합니다. 어쩌면 한량의 삶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삶이 중요한 이유는 제가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24년간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회사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해온 수동적 삶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보잘 것 없긴 하지만 제가 가진 능력과 재능, 그리고 생산성을 통해 입에 풀칠하는 정도로만 살아도 좋습니다. 어차피 윤택함이 제가 원한 목표나 목적이 아니니까요. 이런 면에서 정현덕 그리고서점 주인장의 생각과 제 생각은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막 1년을 넘긴 그리고서점이 앞으로도 쭉 잘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기획하고 진행할 것입니다. ‘책이 좋아요’라고 했던 그의 꿈이 실현된 지금,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여러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서점에는 그의 꿈과 미래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넉넉함과 여유, 행복이 햇살을 받으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인연은 어디서든 다시 만나도록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공항에서 그와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 따스한 포옹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또 만날 겁니다. 그리고 계속해 인연을 이어가게 될 것입니다. 서로를 생각하는 따스함이 우리를 다시 또 만나도록 이끌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인생은 깊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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